천진우 교수 (우리대학교 화학과)

심장마비로 쓰러진 환자가 위급한 상황이다. 의사는 ‘나노로봇’을 주사해 막힌 혈관을 발견한다. 나노로봇은 의사의 지사에 따라 혈전용 해약물을 주사해 환자를 살려낸다. 작업을 마친 로봇은 분해돼 노폐물로 배출된다. 나노기술의 발전으로 영화 속 한 장면과 같은 이러한 일들은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와있다. 

‘나노’란 10억 분의 1을 나타내는 단위를 말한다. 나노기술은 원자나 분자 수준에서 물질을 가공하거나 조립해 새로운 물질로 만들어내는 기술을 뜻하는데, 이는 단순한 소형화와는 다르다. 나노기술을 이용해, 물질을 나노 크기에 이를 정도로 계속 작게 만들면 신기하고 새로운 특성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황금빛의 금이 수십 나노미터가 되면, 어느덧 그 빛나는 색이 없어지고 빨간색으로 변하는 것이 한 예이다. 나노과학을 이용하면 ▲기존보다 50배정도 강해지면서 가벼운 강철 ▲에너지 소모가 거의 없는 컴퓨터 ▲혈관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몸속을 청소해주는 초소형 나노로봇 등이 실현된다.

최근 본인이 속한 나노의학연구단(IBS-Center for Nanomedicine)에서는 몸속 질병 정보를 자기공명영상(MRI) 신호로 알려주는 나노로봇 기능이 탑재된 ‘나노 MRI 램프’를 개발하였다. 이 나노 MRI 램프는 평소에는 신호가 꺼져 있지만, ▲질병과 연관된 유전자 ▲단백질 ▲금속 이온 ▲화학 분자 등 특정 생체 인자를 만나면 신호가 밝게 켜지도록 설계되었다. 연구팀은 기술을 바탕으로 암전이 관련 효소(MMP-2)를 MRI 영상으로 검출하는 데 성공했다. 나노 MRI 램프를 사용하면 관찰하고자 하는 병든 조직을 최대 10배까지 밝고 선명하게 볼 수 있다. 기존 MRI 조영제의 밝기 한계를 극복한 나노 MRI 램프는, 마치 어두운 밤에 램프를 켜는 것과 같아 질병을 보다 더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진단할 수 있게 해준다. 

앞서 소개했듯이 나노 기술은 ▲화학 ▲물리학 ▲생물학 ▲재료 과학 ▲의학 등 다양한 학문이 밀접히 융합되어 우리가 상상 속에서만 그려왔던 일들을 실현시킬 수 있는 미래 학문이다. 이는 2016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처음 언급된 ‘4차 산업혁명(융합과 연결을 통해 디지털과 바이오산업, 물리학 등의 경계를 허무는 기술 혁명)’과 그 맥락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클라우스 슈바프 회장 역시 나노기술과 생명과학기술의 기하급수적 발전과 융합으로 사회의 질적 변화가 도래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러한 세계적 흐름에 대응하기 위해 2015년 우리대학교에서는 융합 과학을 통한 세계적 수준의 연구를 목표로 하는 ‘기초과학연구원(IBS, Institute for Basic Science) 나노의학연구단(CNM, Center for Nanomedicine)’을 설립했다. 기존의 틀을 벗어나 다각화된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안목, 그것이 우리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는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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