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악한 환경과 빈약한 안전망

여성 노숙인은 취약계층인 노숙인 중에서도 약자다. 어떤 보호장치도 없는 길거리에서 여성 노숙인들은 각종 범죄에 노출돼 있다. 그러나 지난 2016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 여성 노숙인의 규모조차 제대로 집계되지 않을 만큼, 여성 노숙인에 대한 관심은 부족했다. 최근 정부가 전국적 규모로 노숙인 실태 조사를 실시함에 따라 여성 노숙인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개선돼야 할 부분은 남아있다.
 

여성노숙인,
그들이 거리로 나온 이유

 

▶▶ 지하철 역사 안에서 노숙하는 여성 노숙인

 

전문가들은 남성 노숙인들과는 다르게 여성 노숙인이 ▲가정폭력 ▲정신질환으로 인해 노숙을 시작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이야기한다. 서울시가 노숙인을 성별로 나눠 조사한 「서울시 노숙인 정책의 성별영향평가 보고서(2010)」에 따르면 여성 노숙인의 노숙 원인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약 46%였고, 가정폭력과 정신질환에 의한 갈등을 포함한 가족문제가 약 43%로 조사됐다. 이는 남성 노숙인의 노숙 원인 중 60%가 실직이나 사업 실패와 같은 경제적 어려움인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노숙인들의 자립과 인권향상을 위해 설립된 시민단체 ‘홈리스행동’ 관계자 A씨는 “남성 노숙인은 실직이 노숙의 주된 원인이지만 여성 노숙인은 경제적 어려움뿐만 아니라 가정폭력과 정신질환으로 인해 노숙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부분의 여성 노숙인은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었다. ‘2014 서울시 노숙인 실태조사’에서는 노숙인 요양시설에서 생활하는 노숙인을 조사한 결과 여성은 대부분 정신질환이 있었지만, 남성은 약 19%만이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던 것으로 조사됐다. 여성 노숙인들의 자활을 도와주기 위해 설립된 센터인 열린여성센터 김민아 사회복지사는 “노숙생활을 하면서 정신질환이 악화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그들이 마주한
‘폭력’과 ‘위생’

 

여성 노숙인들은 남성에 비해 물리적 힘이 약하기 때문에 거리에서 폭력에 노출되기 쉬우며, 월경을 처리하기 힘들다는 위생적인 문제도 함께 겪고 있다. 

여성 노숙인들은 폭력, 특히 성폭력 등에 노출돼 있기 때문에 남성 노숙인들처럼 거리에서 생활하는 것이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다. 보건복지부가 시행한 ‘2016년 노숙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남성 노숙인은 사기 및 금품갈취를 많이 당하는 반면, 여성 노숙인은 구타·가혹행위 및 성추행에 많이 노출됐다고 조사됐다. 이에 대해 김 복지사는 “실제로 여성 노숙인들은 폭력에 노출될까봐 건물계단, 지하철역 화장실, 병원로비 등에 숨어 지내는 경우가 많다”며 “때때로는 남성 노숙인들과 함께 다니면서 보호를 받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대부분 성을 거래한 경우다”라고 말했다. 김 복지사는 이러한 성적 거래로 인해 여성 노숙인들이 원치 않는 임신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여성 노숙인들이 노숙생활에서 겪는 또 하나의 어려움은 월경 처리다. 노숙  환경이 열악하다 보니 월경을 처리하는 것도 비위생적인 실정이다. 김 복지사는 “이전에 노숙인들을 일시적으로나마 보호하는 일시보호시설을 운영할 당시에는 여성 노숙인 분들이 월경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피범벅이 돼서 오는 경우도 많았다”고 말했다.

 

수면 위로 올라온 그들에게

 

▶▶ 서대문구에 위치한 여성 노숙인 자활센터인 ‘열린여성센터’

 

정부는 최근 여성 노숙인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 2016년 보건복지부는 처음으로 국내 노숙인 실태조사를 시행해 노숙인의 현황을 조사했다. 보건복지부의 ‘2016년 노숙인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6년 10월 기준 노숙인의 수는 1만 1천340명이었으며, 여기서 여성 노숙인은 약 26%를 차지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실태조사를 통해 정부는 이전에는 규모를 파악하지도 못했던 여성 노숙인의 수를 대략적으로나마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여성 노숙인들은 실내에 숨어 지내기 때문에 실제보다 그 수가 적게 집계될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일부라도 규모가 파악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실태조사를 통해 여성 노숙인의 규모가 대략적으로 파악되자, 정부는 여성 노숙인을 위한 정책 마련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 실제로 지난 2016년 12월부터 서울시는 SH 서울주택도시공사로부터 원룸형 매입임대주택 총 38호를 지원받아 ‘노숙인 지원주택’을 시범운영하고 있다. 일자리를 우선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남성 노숙인들과 다르게, 주거지원이 시급한 여성 노숙인들에게 해당 정책은 효과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복지사는 “여성 노숙인들에게 거리는 위험하기 때문에 보다 안전한 환경을 갖춘 실내 주거지를 우선적으로 마련하고 그 다음에 자활을 도와주는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의 주거지원은 긍정적이다”라고 평가했다.

뿐만 아니라, 최근 보건복지부는 일시보호시설에 여성 노숙인 전용 공간을 별도로 마련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자립지원과 배완복 사무관은 “여성 노숙인들이 남성 노숙인과 함께 시설을 사용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따라서 보건복지부는 여성 노숙인 전용시설을 확충하거나 남녀공용 시설에서 여성 노숙인만을 위한 공간을 별도로 마련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현재 정부는 여성 노숙인들의 자활 및 치료를 위해 운영되고 있는 센터들에도 지원을 하고 있다. 이러한 센터는 총 7곳으로, ▲여성 노숙인 자활 센터 ▲정신질환 치료 센터 ▲여성 노숙인이 아이와 머물 수 있는 모자 가정센터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여성 노숙인들은 이 센터들에서 최대 2년 동안 머물 수 있다.

 

아직 소외받는
여성노숙인

 

이전보다 여성 노숙인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 노숙인 보호를 위한 주거지원과 일시보호시설은 부족한 상황이다. 또한, 자활 및 정신치료를 맡고 있는 센터들의 역할이 경직돼 있어 여성 노숙인들을 원활하게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현재 여성 노숙인들을 위한 지원주택 사업은 서울시에서만 이뤄지고 있으며, 여성 노숙인들이 잠시나마 보호받을 수 있는 여성일시보호시설은 서울에서도 한 곳밖에 없어 부족한 상황이다. 여성 노숙인들의 경우, 남성 노숙인들 사이에서 생활하는 것이 어려울 수밖에 없어 여성전용 시설이 필요하다. 홈리스행동 관계자 A씨는 “서울시의 지원주택도 시범운영에 불과하며, 서울 외 지역에서는 거의 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태”라며 “게다가 여성일시보호시설은 전국에서 연희동 한 곳에서만 운영되고 있는데 이마저도 거의 만원 상태이기 때문에 여성 노숙인들을 모두 수용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신질환 치료 센터, 모자 가정 센터 등의 역할이 경직돼 있어, 여성 노숙인들의 입소가 원활하지 못하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정신질환 치료 센터의 경우에는 정신치료를 받아야만 입소가 가능하다. 이에 대해 김 복지사는 “보통 정신질환 환자들은 자신의 질환을 인정하지 않아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며 “때문에 여성 노숙인의 정신질환 치료 센터 입소가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복지사는 “정신질환과 아이가 함께 있는 여성 노숙인의 경우 정신질환 치료 센터에서는 아이가 있다는 이유로, 모자 가정센터에서는 정신질환이 있다는 이유로 거절당해 갈 곳이 없게 되기도 한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아직까지 부족한 사회적 안전망 속에서 부족한 주거지원과 여성일시보호시설이 늘어나야하고, 여성노숙인 관련 센터들의 역할이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홈리스행동 관계자 A씨는 “서울에서만 시행되고 있는 지원주택 사업은 정식사업으로 이어져 전국단위에서 시행돼야 한다”며 “특히 서울에 하나밖에 없는 여성일시보호시설의 수는 더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김 복지사는 “정신질환 치료를 주목적으로 하는 센터의 경우에는 정신치료를 받지 않는 여성 노숙인 분들을 우선 입소시키고 치료를 설득하는 방향으로 이뤄지는 등 보다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글 이영준 기자
zero6@yonsei.ac.kr

사진 하은진 기자
so_havely@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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