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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대학에서는 무엇을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가?
  • 우리대학교 사회학과 염유식 교수
  • 승인 2017.11.11 23:46
  • 호수 1801
  • 댓글 0
염유식 교수
(우리대학교 사회학과)

핼러윈 축제를 앞둔 2년 전 2015년 10월 28일, 예일대학교(Yale University)가 모든 학생에게 보낸 이메일 한 통으로 시작된 사건으로 예일대는 물론 미국 전체가 떠들썩해집니다. 과감한 생략과 의역을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핼러윈 축제는 우리 캠퍼스 공동체를 위해서 좋은 행사입니다. 하지만 일부 학생들은 남을 위한 배려나 고려를 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미국) 인디언이 쓰던 깃털 장식의 모자를 쓰거나 인디언들이 출정 시에 하던 페인트칠을 얼굴에 한다거나, 터번을 쓴다거나, 아니면 얼굴을 까맣게 칠하는 행동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특정 인종이나 종교를 경시하거나 소외시키거나 희화화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예일대의 Silliman College의 부사감(associate master of the College)이었던 Erika Christakis는 10월 30일 자정이 조금 지난 시간에 다시 학생들에게 이메일을 보냅니다(Yale은 영국의 대학처럼 전공과는 무관하게 모든 학생이 적어도 하나의 college에 속하게 되며 사감이나 부사감 모두 교수가 맡게 됩니다). 이 이메일의 내용을 다시 과감하게 줄여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핼러윈 복장 지침이 좋은 뜻에서 나온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금발 여자아이가 하루 동안 뮬란이 되고 싶다는 것에 뭔가 객관적인 잘못이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어떠한 개별 인물에 대해서 판타지를 가지는 것과 어떤 문화를 제멋대로 가져다 쓰는 것은 서로 다른 것이며 후자는 우리가 피해야 할 것으로 이는 미숙하고 남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입니다. 8살 때는 뮬란 복장이 되는데 18살 때는 안 되는 건가요? 이러한 질문에 저는 정확한 답은 모르겠습니다. 이게 제 주장의 핵심입니다. 나는 나 자신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핼러윈의 정신이나 기준을 강요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때 미국대학은 (당시 시대 기준으로 보면) 퇴행적이거나 심지어는 규범에 어긋나는 행동들도 실험해볼 수 있는 공간이었는데 이제는 갈수록 금지와 규정의 장소로 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게다가 이러한 금지와 규정은 여러분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겁니다! 우리 대학 사감(Master of the College)인 Nicholas가 말하기를, 만약에 누군가의 분장이 맘에 안 들면, 고개를 돌려 보지 않거나 아니면 그 분장은 무례하여 내가 상처를 입었다고 분장한 학생에게 이야기해주라고 합니다. 서로 터놓고 이야기를 하세요.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는 것과 무례나 불쾌함을 참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낼 수 있는 능력은 자유롭고 열린 사회의 고유한 특징입니다.’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밝히자면, Nicholas는 Erika 교수의 남편으로 예일대학의 사회학자입니다. 이후 Erika의 이메일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집회를 몇 달씩 하게 됩니다.

‘누군가의 분장이 맘에 안 들면 고개를 돌려 보지 말라고 했는데 이건 마치 우리의 문화나 민족을 비하하는 행위나 그러한 행위에서 유발되는 폭력을 우리가 방임할 수도 있다는 태도입니다. 이 이메일은 어떻게 서로 이해하고 토론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안을 제시해주지는 않으면서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을 정면으로 접촉하라는 주장입니다.’

결국, 사건 발생 약 6개월만인 2016년 5월 25일에 이 두 사람은 사감과 부사감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나게 됩니다(Nicholas Christakis는 교수직은 유지합니다). 

위 사건을 접하고 저는 대학에서 무엇을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지를 생각해봅니다. 특정한 지식이나 사실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은 대학만이 할 수 있는 대학 고유의 역할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대학 교육의 핵심은 서로 의견이 끝까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전제하고, 기존의 지식과 신념, 통념, 윤리, 가치 또는 기존의 모든 것을 (원칙적으로는) 아무런 제약 없이 오로지 논리와 증거만으로 검토하고 회의하고 뒤집어보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즉, 생각이나 사상이 다른 사람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주장을 이해시켜보고, (마음에 안 들기도 하고 이해하기도 싫지만)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사상을 이해하는 능력을 키워내는 것이 대학교육의 핵심이며 새로운 사상, 지식, 사회로 나아가는 출발점입니다.

이러한 논쟁의 대상이 기존 사회에서 신성시되는 것일수록 우리 변화의 폭은 넓고 깊어질 것입니다. 이러한 회의와 논쟁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과 다른 철학을 이루어 냈고, 파인만이 아인슈타인을 비판하면서 양자역학의 발전을 가져왔고, 천동설 시절에 지동설이 태어난 것입니다. 우리 인류 의식의 지평은 항상 기존의 사실이나 진실과 다른 발견이나 주장에 의해서 넓어진 것이지요. 따라서 대학에서 배움이란 수용과 이해보다는 논리와 증거에 바탕을 둔 논쟁과 토론에 가까워야 합니다.

이를 위해, 다음 학기에 학생들이 자신의 기존 지식이나 관념을 근본적으로 흔들만한 (그래서 취직에 도움은커녕 방해가 되는) 수업을 하나 정도는 수강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저도 사회학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 주제를 논의할 강좌를 하나 새로 제공할 예정입니다. 당연히 저로서는 수업에서의 여러 우월한 지위를 내려놓고 학생들과 동등하게 논쟁하고 토의할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대학교 사회학과 염유식 교수  chunch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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