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非) 레디-메이드로 가자

우리가 자주 가는 술집의 메뉴판에는 소주와 맥주가 주로 올라 있다. 가끔은 청주도 있고 또 어떤 곳에서는 막걸리도 내지만, 밥집에서도 반주의 개념으로 쉽게 찾을 수 있는 주종은 소주와 맥주뿐이다. 그래서 기자는 외국어로 된 술을 마셔야 할 때면 조금 불안해진다. 메뉴판 속에도 없고, 가격대도 높으니 양주, 와인, 사케 따위의 술은 기자에게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었다.

생소함의 연장선에서도 쓴 맛 안 난다는 특징 하나로 익숙한 술도 있다. 선명한 색과 화려한 데코레이션이 연상되는 '칵테일'이 그것인데, 이 술이 주는 달콤한 순간을 언제까지고 놓칠 수는 없어서 신촌 '조커이즈'의 최경일 사장님과 함께 칵테일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술썰 두 번째 이야기, 칵테일 편이다.

소주는 곡류를 증류해서 만들고, 맥주는 보리를 발효해서 만든다. 이렇듯 술은 재료와 가공 방식으로 구분된다. 그렇다면 칵테일은 대체 무엇으로 만드는 걸까?

경일: 어원은 명확하지 않지만, 칵테일은 '섞는다'는 말이야. 과일들이 섞여있는 걸 후르츠 칵테일이라고 부르지? 칵테일도 똑같아. 여러 종류의 술과 다양한 재료를 혼합한 거지. 그래서 소맥도 엄연한 의미에서는 칵테일이야.

칵테일은 주로 양주를 기반으로 만들어지지만, 어쨌든 혼합주라는 데 그 의미의 방점이 찍혀 있다. 기자가 즐겨마시던 통칭 '한입잔'은 소주와 맥주를 1:1의 비율로 섞은 술이므로 본인의 칵테일 제조 실력은 알고 보면 수준 이상이었던 것이다. 사장님은 말씀을 끝내고 '수진'이라는 이름의 자두 베이스 칵테일을 내 주셨다. 조커이즈에서만 판매하는 칵테일인데, 자두 과육이 알차게 씹히면서도 진한 알코올 향을 전하는 것이 특징이다. 칵테일을 느끼려고 입을 대면 표면에 올라간 장식용 꽃의 향이 진하게 넘어오면서 자두의 새콤달콤한 향과 어우러진다. 술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달달했다.

 

경일: 칵테일에도 종류가 있어. 재료들을 섞지 않고 층을 이뤄 만드는 플로팅 칵테일, 얼음을 갈아 만드는 프로즌 칵테일, 몇 가지만 툭툭 넣어 만드는 이지 칵테일…. 그런데 만드는 사람이 워낙 많고 그 레시피 또한 다양하다 보니까 이 범주 안에 속하지 않는 칵테일도 많아.

기자가 찾은 술집 조커이즈에서는 단골손님을 대상으로 '손님만의 칵테일'을 만들어줄 정도로 다양한 칵테일의 종류를 보유하고 있었다. 한 시간 안에도 몇 가지 종류의 새로운 칵테일을 내놓을 수 있다는 사장님의 말을 들으면서 칵테일 세계의 방대함을 가늠할 수 있었다.

 

경일: 그래서 칵테일을 많이 먹어보는 게 중요해.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에게 맞는 바(Bar)를 찾아 경험해보길 권해. 고급스러운 칵테일을 원한다면 한남동이나 청담 등지의 '클래식 바'를, 개인이 만드는 다양하고 창의적인 칵테일을 원하면 여기 같은 '칵테일 바'를, 다양한 쇼를 원한다면 간단한 주스류의 칵테일을 내놓는 '웨스턴 바'나 '플레어 바'를 찾아봐.

사장님의 분류대로라면 조커이즈는 바텐더가 직접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 판매하는 칵테일 바에 속했다. 사장님이 이후에 내어주신 칵테일의 이름은 '태량'으로, 달달한 과일 사탕 맛이 났다. 아주 진한 파란색의 술이었는데, 과일 리큐르가 들어가 있어 과일 향이 느껴졌다. 앞서 마신 '수진'에 비해서는 알코올 향이 진하게 나는 편이었다. 이처럼 조커이즈에서는 창의적이고 신선한 메뉴를 접할 수 있었다. 기자는 여기서 더 나아가서 어떤 바에 가서도 주눅 들지 않고 주문할 수 있을 만큼 더 자세한 칵테일 정보를 부탁드렸다.

 

경일: ‘블루 사파이어’는 재료도 많이 들어가고 레시피 편차가 크지 않아 어딜 가도 실패하지 않을 거야. 실제로 파인애플을 으깨 넣는 곳은 거의 없겠지만 달콤한 초록색 칵테일일 ‘준벅’도 꽤 괜찮지. 다만 코코넛 맛을 싫어한다면 피하는 게 좋아. 달달한 걸 좋아하면 엔젤스 티어, 프렌치 키스, 피치크러시를 추천해. 셋 중에는 프렌치 키스가 가장 다양한 맛을 느끼는 데 적격이지. ‘마가리타’는 바마다 편차가 좀 심해서 그렇게 추천하지는 않아. 취하고 싶을 때는 도수가 좀 높은 ‘롱 아일랜드 아이스티’가 제격이야. 아이스티 색을 띤 칵테일이지.

사장님의 설명을 듣다 보니 기자의 궁금증이 더해갔다. 바에서 보통 우리는 왜 칵테일만 먹거나 김 같은 간단한 안주만을 곁들인다. 칵테일과 어울리는 안주는 없는 걸까?

경일: 달달한 칵테일과는 차돌박이나 얇은 소고기 같은 담백한 안주가 잘 어울려. 마티니 같은 드라이 칵테일에는 양꼬치 같은 향이 강한 안주가 어울리지.

사장님은 말을 끝내고 럼, 피치트리, 그레나딘 시럽, 스윗 앤 사워믹스가 들어간 엔젤스티어와 구운 소시지를 내주셨다. 복숭아와 석류 등 새콤한 과일향이 주류를 차지하는 달달한 맛의 엔젤스티어와 소시지를 같이 입 안에 넣으면 처음에는 소시지 맛이 나지 않을 만큼 단 맛이 강하게 감돈다. 칵테일 끝 맛에서 알코올 향이 느껴지려 할 때쯤 소시지 맛이 등장해 깔끔하게 한 입을 마무리한다. 소시지가 많이 짜지 않았기 때문에 담백한 안주가 달달한 칵테일에 잘 어울린다는 말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칵테일은 공장에서 찍어져 나오는 기성품이 아니다. 그 날 술을 마시는 사람의 기분과 날씨와 상태와 취향에 따라 맛과 도수를 고를 수 있다는 게 칵테일의 매력이다. 이 때문에 같은 이름의 칵테일이라도 어떤 바텐더가 어떤 바에서 만드느냐에 따라 맛과 향이 완전히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다. 고유함이라는 칵테일의 매력은 바(Bar)와의 호흡을 통해 진정으로 전해진다. 취향 따라 고를 수 있는 칵테일의 세계를 경험해보자.

 

글 유채연 기자
imjam@yonsei.ac.kr

사진 하은진 기자
so_havely@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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