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삼오오 모이자, 한씨네 대포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신촌. 이런 신촌에도 8년간 뚝심 있게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게가 있다. 이른 저녁 가벼운 반주를 하거나 마신 술이 약간 부족할 때 발길이 닿는 곳, ‘한씨네 대포’다. 부족한 술, 고픈 배를 달래줄 우리들의 아지트, 한씨네 대포의 한영조 사장을 만나봤다.

Q. 간단한 자기소개와 가게소개를 부탁한다.

A. 8년간 이 골목(연세로 11길)에서 ‘한씨네 대포’를 운영하고 있는 60세 한영조다. 원래 미국 항공사를 다녔는데 음식 하는 것을 좋아해 직장을 다닐 때부터 식당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직장을 그만두고 요리를 공부해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땄다. 우리 집 식구들이 먹을 음식을 한다는 마음으로 가게를 열었고, 지금까지 장사를 하고 있다.

 

Q. ‘한씨네 대포’라는 이름이 독특하다. 이름을 짓게 된 배경에 대해 말해달라.

A. 일단 ‘한씨’는 사장인 내 성씨가 한씨라 붙인 거다. 그 뒤의 ‘대포’는 시골에서 자라며 자주 들은 “대포 한 잔 하고 가게”라는 말에서 따온 거다. 내가 자란 시골은 술집이 없었고, 어른들은 구멍가게에서 술 한 잔을 기울이는 게 전부였다. 동네가 가난했기 때문에 주전자로 술을 사 마시기보다, ‘대포’라는 큰 대접에 파는 술 한 잔을 마시는 경우가 많았다. 그 때의 정겨운 대포가 지금의 가게 이름이 됐다.

 

Q. 오랫동안 대학가에서 장사를 해왔다. 대학가와 관련된 특별한 일화가 있다면?

A. 손님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라 들은 소문이 많은데, 그 중 재밌는 에피소드가 꽤 있다. 가장 생각나는 것은, 연세대 모 학과에 우리 가게에서 미팅을 하면 좋은 결과가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는 이야기다. 재밌는 건 실제로 여섯 커플이 우리 가게에서 미팅을 통해 만났고, 한 커플은 결혼까지 했다고 하더라는 이야기다. 그 손님이 직접 찾아와서 그런 얘기를 했는데 왠지 신기하고 뿌듯했다.

 

Q. 주변에 학교가 많다보니 학교 행사들의 영향을 많이 받을 것 같다. 관련해서 특별한 일화가 있었는가.

A. 신촌에는 학교 행사가 많은 것 같다. 연고전도 그중 하나다. 매년 기차놀이를 하는 학생들이 찾아오면, 옥수수술과 오뎅탕을 내주고 있다. 재밌는 건 연고전이 신촌에서 열리면 자줏빛 옷을 입은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우리 가게를 점령한다는 것이다. 다 먹고 일어나는 친구들이 그냥 가지 않고 또 다른 고려대학교 친구들을 불러 이곳에 연세대 학생들이 발을 못 붙이게 할 거라는 이야기를 하더라. 이러한 행사들이 상당히 재밌고 젊음이 느껴져 좋다는 생각이 든다.

 

Q. 신촌이라는 공간은 프랜차이즈도 많고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럼에도 같은 골목에서 8년간 장사를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A. 가장 중요한 것은 음식 맛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맛과 관련해 많은 부분 신경을 쓰고 있다. 재료부터 영업용보다는 질 좋은 가정용 재료를 납품받고 선별해 사용한다. 그러다보니 가격대가 다른 곳보다 비싼 편인데도, 많은 손님들이 찾아주시는 걸 보면 정말 음식 맛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음식 맛이 좋으니까 한 번 들렀다가도 다시 생각나서 손님들이 또 오시는 것 같다. 학생 때 처음 방문을 했다가도, 음식 맛에 반한 손님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꼭 다시 찾아주더라.

 

Q. 가게 규모가 작은 편이다. 단체 손님이 많은 술집의 특성상 공간의 협소함이 불편할 수 있는데,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알려 달라.

A. 4인용 테이블 5개와 2인용 테이블 2개가 전부다 보니 확실히 규모가 작긴 하다. 가게가 작으면 서러운 점이 많다. 일단 가장 큰 건, 손님들이 많이 와도 테이블이 부족해 다 받을 수는 없어 항상 미안하다는 거다. 예전에는 많은 손님을 다 받으려고 시간대별로 가게 대관을 했었는데, 그러다보니 오히려 개인적으로 찾아오시는 분들을 받질 못했다. 이 점이 죄송해서 이제는 대관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개강총회나 종강총회와 같은 행사 때는 술을 어느 정도 마신 후에 한 잔 더 마실 정예 멤버들만 삼삼오오 모여 방문하는 곳이 우리 가게다. 이러한 분위기가 정착돼 이제는 큰 행사에 대한 부담은 덜한 편이다.

 

Q. 가게 추천 메뉴는?

A. 우리 가게에서 가장 유명한 건 옥수수술과 김치우동나베다. 옥수수술은 11도의 맑은 약주로, 달달해서 쓴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사람들도 쉽게 즐길 수 있다. 또 김치우동나베는 어묵에 우동 하나를 넣고 고명으로 김치와 파, 당근 등을 넣은 요리다. 배고픈 분들께는 든든한 한 끼 식사로, 고기를 먹고 나서 술을 마시는 분들께는 느끼한 속을 달래는 데 제격이다. 매운 것을 못 먹는 분이라면 두부김치를 추천한다. 술을 시키면 기본 안주로 두부 한 쪽이 나가긴 하는데, 두부 자체가 맛있어서 볶은 김치와 함께 먹으면 더 맛있다.

 

Q. ‘한씨네 대포’에게 신촌이란?

A. 내 삶의 터전이자 로망이다. 전쟁 직후 가난했던 시절의 58년생 개띠다 보니 대학에 가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 때문에 자라면서 늘 대학 문화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인근에 대학교가 많은 신촌에서 장사를 하며 연고전 기차놀이나 대학 축제 등 이런 로망들을 직접 경험할 수 있어서 정말 좋다. 다른 대학가에도 분점을 내는 것이 꿈이기도 한데, 일단 신촌에서 오래오래 가게를 운영하고 싶다.

 

취했다 싶으면 술을 더 팔지 않는다는 한씨. 아빠의 마음이 담긴 요리와 따뜻한 가게 분위기는 언제 들러도 참 반갑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몇 년이 지나고 다시 신촌 골목에 돌아왔을 때도 언제나 갓 나온 음식과 달달한 옥수수술을 맛볼 수 있도록, ‘한씨네 대포’가 지금 이 자리에 오래도록 있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 윤현지 기자
hyunporter@yonsei.ac.kr

사진 이수빈 기자
nunnunanna@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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