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의선 숲길 편

어딘가로의 이동이 단지 목적지에 도착하는 위한 것이 아니라, 목적지까지 향하는 모든 순간이 의미라고 생각해보자. 비록 속도는 조금 더디고 체력도 힘들겠지만, 그 이동이 일상 속 자신에 대해 되돌아보고 새로운 영감을 얻는 의미 있는 이동시간이라면? 여기 핸드폰을 사용해 쉽게 대여할 수 있고, 싼 가격에 서울여행을 즐길 수 있는 이동수단이 있다. 바로 서울시 자전거 따릉이! 기자가 직접 따릉이를 타고 서울 여행을 떠나봤다. 직접 페달을 밟으며 지난 길이기에 더욱 소중한 나만의 여행을 『The Y』와 함께 떠나보자.

 

가을을 맞아 떠나는 여행: 경의선 숲길

텅 빈 하늘이 눈에 들어오고, 어느새 서늘한 바람이 옷깃을 스치는 가을이다. 텅 빈 하늘처럼 마음이 허해져 오는 가을, 그 빈자리를 책으로 차곡차곡 채워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떠났다, 경의선 숲길로! 철길을 따라 달리며 마음의 여유를 찾고, 경의선 숲길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책방을 찾아 따릉이에 올라탔다. 이번 여행은 서강대역 앞 경의선 숲길을 시작점으로 연남동을 지나 가좌역까지 향했다.

 

# 은은하게 이어져 온 것들

:서강대역 앞 경의선 숲길부터

여행의 시작은 신촌역 1번 출구. 나뚜루팝 앞의 붐비는 횡단보도를 지나, 서강대역 쪽으로 쭉 내려갔다. 바로 우회전을 하니 경의선 숲길의 입구가 나왔다. 경의선 숲길은 철길이 지하철화 되면서 옛 철길을 회상하기 위해 만들어진 작은 공원이다. 마침 날씨도 좋아서 곳곳에 돗자리를 펴고 도심 속 소풍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언뜻 보면 그냥 공원과 같아 보이지만 철도에 귀를 대고 있는 소년 동상과, 사람들에게 주의를 주는 철도 기관사 동상까지, 공원은 마치 하나의 박물관 같았다. 공원 한편에는 경의선의 대략적인 역사와, 경의선 숲길 일대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적혀있었다. 소개를 읽고 나니 경의선 숲길이 색다르게 보였다. 기차 차단기가 내려가는 ‘땡땡’ 소리 때문에 ‘땡땡 거리’라 불렸던 경의선 주변은 알고 보니 음악과 미술로 대표되는 홍대 문화의 발원지였다. 소개문 위에는 책을 읽거나 기타를 치는 사람들의 조각상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한가롭게 노래를 하거나 책을 읽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 했다.

다시 따릉이를 타고 달리다보니 숲길에 조성된 나무 계단에서 기타를 치는 사람들이 보였다. 가을 날씨를 즐기며 한가롭게 기타를 치는 그들이, 미래에 경의선 숲길 근처 뮤지션의 산 역사가 될 것이라는 게 신기했다. 과거에서 지금까지 이어진 철길처럼, 홍대의 자유로운 음악도 시원한 가을바람을 타고 은은히 이어져가고 있었다.

 

# 길 위에서 책에 빠지다

: 숲길 가운데 역사부터 책거리의 끝까지

노래하는 사람들을 지나쳐 도착한 곳은 경의선 역사를 재현한 굴다리 밑이었다. 생각보다 아담하고, 아기자기한 역사는 아이들의 놀이터가 돼 있었다. 민트색 벽에 회색 지붕을 씌운 간이역에는 허리를 굽혀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문이 달려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역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최근 페이스북에서 데이트명소, 사진 찍기 좋은 곳으로 소문이 나서인지 조용한 간이역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간이역 건너편의 벽은 액자로 가득 차 있었다. 액자에는 마치 영화 포스터처럼 책 포스터가 전시돼있었다. “오늘 당신과 함께 할 책은 무엇입니까” 라는 커다란 문구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깔끔한 디자인과, 궁금증을 유발하는 간단한 질문과 줄거리까지, 포스터를 보다보니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지나가는 사람들도 한 번씩 포스터를 보고 갔다. 잠시 멈췄다 가는 이 작은 공간에서 사람들은 책에 끌렸다.

굴다리를 나와 바로 앞에 있는 책거리로 향했다. 경의선 책거리에는 7가지의 출판사가 다양한 책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작은 책방들이 있다. 분필로 시 한수를 적어놓은 ‘문학산책’부터 책 예술 공방인 ‘창작산책’까지, 각기 다른 테마의 책을 즐길 수 있다. 따릉이에서 내려 여러 책방을 일일이 들어가 보는 재미가 있었고, ‘여행산책’ 책방에서 진행 중인 사진 전시회를 보며 종강 후 여행을 꿈꾸기도 했다. 포스터 속 책이 사람을 끌리게 했다면, 책방은 책에 빠지게 했다.

 

# 연남동에서 만난 도심 속 여유

홍대부터 가좌역까지

다시 따릉이에 올라타 홍대입구역 방향으로 향했다. 한산한 숲길과 다르게 홍대입구역 부근은 사람들로 붐볐다. 조심스럽게 횡단보도를 건너 연남동으로 향했다. 빌딩 사이로 이어진 경의선 숲길과, 그 곳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여유로운 연남동의 숲길은 일상의 모습을 전시한 전람회 같았다. 정적인 사진처럼 길에 앉아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시간은 멈춰 있는 듯 했다. 길 한편에서는 외국인이 클라리넷을 연주했고, 거리는 이국적인 음악으로 가득 찼다. 연남동의 숲길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 이야기할 수 있는 편안한 공간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매끄러운 길을 따라 경의선 숲길의 끝으로 속도를 냈다. 출발할 때 밝았던 하늘은 서서히 저물고 있었다. 길옆으로는 시냇물이 흘렀고, 탁 트인 연남동 한복판과는 달리 높게 자란 풀밭길이 이어졌다. 흔들리는 갈대밭과 갈대 너머로 보이는 몇몇 루프탑 술집 불빛이 아른거렸다. 술집 안의 사람들에게서 저물어가는 주말을 즐기는 여유가 느껴졌다. 노을로 주황빛이 된 갈대밭 길과, 그 사이를 지나는 사람들의 얼굴이 인상적이었다. 은은한 자연과 저물녘의 여유는 갈대밭이 끝날 때까지 지속됐다.

 

조금 차가워진 날씨에 따라 생긴 마음의 공백은 그 자리를 채울 뭔가를 그리워하게 한다. 하지만 내리쬐는 가을 햇살과, 가득한 책, 그리고 흔들리는 갈대밭을 지나는 여유가 있기에, 마음이 더 넉넉해 질 수 있는 여행이었다. 바람이 서늘해지고, 바쁜 일상에 마음이 텅 빈 것만 같은 가을, 따릉이를 타고 숲길을 달려보는 건 어떨까?

 

 

하단 꿀팁 부분

따릉이를 반납해야 하는데 정류장이 꽉 차 있다면 우선 따릉이를 정거장 바로 옆에 세우자. 그리고 옆에 세워진 다른 따릉이 손잡이 왼쪽 부분에서 홀더를 빼서 반납할 따릉이 오른쪽에 끼우면 된다. 생각보다 홀더가 빡빡하니 조심하는 게 좋다.

따릉이를 대여하는데 카드가 없다면 어플리케이션의 ‘대여소 선택 대여’ 항목을 누르거나 따릉이 정거장의 QR코드를 찍어 대여하는 방법이 있다. ‘대여소 선택 대여’를 할 땐 대여소 번호를 보고 검색하면 훨씬 편하니 대여소 주변을 잘 살펴보자!

 

글 이가을 기자
this_autumn@yonsei.ac.kr

사진 천건호 기자
ghoo111@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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