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박스 네트워크 나희선 대표를 만나다

▶▶ 샌드박스 네트워크 나희선 대표

 

많은 이들이 혁신을 강조하지만 그 혁신이 무엇인지 알기는 쉽지 않다. 혁신에 대해 알고 싶다면 여기, 187만 명을 사로잡은 유튜버 도티를 보자. 지난 7월 5일까지의 누적 조회수를 기준으로 그가 받은 광고 수익은 16억 원에 달한다. 우리대학교 동문이자 국내 최초로 다중채널네트워크기업 ‘샌드박스 네트워크’를 설립한 나희선(법학・05) 대표. 지난 2일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끼 많은 대학생 나희선, 우연히 도티가 되다

 

나 대표는 ‘우연’에서 많은 것을 찾았다고 말했다. 그가 방송인의 꿈을 꾸게 된 것은 군대에서였다. 나 대표는 우리대학교 재학 시절 중앙댄스동아리 하리에서 활동하며 무대에 서는 등 끼 많고 적극적인 학생이었다. 이런 그에게 느지막이 시작한 군대 생활은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군 생활에서 우연히 접한 문구 하나가 나 대표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나 대표는 “당시 생활관에서 자주 보던 CJ E&M의 슬로건 ‘문화를 만든다’가 너무 멋있어서 문화를 만드는 일을 해볼까 생각했다”며 “원래는 방송에 관심이 없었는데 이를 계기로 PD를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회상했다.

막연한 진로에 대해 고민할 무렵, 나 대표는 유튜브에 대해 알게 됐다. PD가 되고 싶다는 이유로 무작정 듣게 된 신문방송학 전공 수업에서 그는 처음으로 다중채널네트워크(Multi Channel Network, MCN)를 접했다. 나 대표는 “2013년 당시 처음 유튜브 방송에 대해 들었고 미디어 생태계에 대해 알게 됐다”며 “그 때가 싸이의 강남 스타일로 이 유튜브가 막 떠오르고 있던 시기였다”고 말했다. 나 대표는 당시를 회상하며 “타이밍이 좋았다”고 말했다.

나 대표는 고민 끝에 유튜브 채널 운영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PD가 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나 대표는 “크리에이터에 대한 꿈이라기보다 자기소개서의 독특한 한 줄을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그렇다보니 예명 역시 큰 의미를 담아 만든 것은 아니었다. 나 대표는 “도티라는 예명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이 역시 별다른 의미가 있지는 않다”며 “한창 워크래프트라는 게임을 많이 하던 때 길드 마스터*가 지어준 이름이 어감이 좋아 사용하게 됐다”고 전했다.

스펙 삼아 시작했던 크리에이터, ‘도티’가 직업이 된 것은 ‘덕력**’ 때문이다. 나 대표는 하나에 몰두하면 끊임없이 매달리는 성격이 방송활동을 계속하게 된 원인이라 꼽았다. 나 대표는 “대학교 때 김연아 선수에 한창 빠졌을 때는 국내 모든 아이스쇼를 찾아가고 주니어 시절부터 시니어 시절까지의 모든 영상을 모았었다”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몰입하게 된 중요한 계기 중 하나였다”고 밝혔다.

 

성공에는 ‘우연’이 없다

 

도티TV는 현재 유튜브 게임채널 1위다. 수많은 크리에이터들을 제치고 이 같은 명예를 얻게 된 것은 남들과는 차별화된 접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기존의 유튜브 영상클립과는 달리 자막과 여러 효과를 넣은 하나의 완전한 이야기를 가진 영상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대해 나 대표는 “라이브스트리밍 콘텐츠의 감수성과 유튜브에서 영상클립으로 소비되는 콘텐츠의 감수성은 조금 다르다고 생각했다”며 “도티TV는 유튜브 콘텐츠이기 때문에 긴 영상을 짧게 잘라 업로드하는 것보다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시트콤처럼 한 편 완결의 단편 영상을 만들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인기비결 중 하나는 나 대표의 철저한 분석이다. 평소 유튜브에서 콘텐츠가 어떻게 하면 최선의 방식으로 노출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던 그는 “Search-Engine Optimization(검색엔진최적화)과 같은 유튜브의 알고리즘을 분석하는 것이 채널 운영에 있어서 중요하다”며 “영상뿐만 아니라 영상의 메타데이터 즉 제목, 영상설명, 태그와 같은 부분들에 대해서도 굉장히 심도 있게 고민해서 작성했다”고 덧붙였다.

나 대표의 이러한 전략은 유튜브 본사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그는 “유튜브 코리아 담당자가 나에게 플랫폼을 활용하는 방법을 가장 잘 아는 크리에이터라고 말씀해 줬다”며 “유튜브 글로벌 본사에서도 플랫폼을 업데이트 한다거나 개선을 할 때 제가 대표로 가서 인터뷰를 했다”고 말했다.

그의 성실성 또한 성공의 중요한 요소다. 1인 미디어의 특성상 영상기획부터 제작, 편집, 유통까지의 모든 과정을 한 사람이 소화해내야 한다. 나 대표는 “처음 방송을 하며 1년 6개월 동안 하루에 5시간 이상 자본적이 없었다”며 “24시간이 모자란 일상을 1년 넘게 매일매일 살았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게임 콘텐츠의 경우 대부분의 채널이 매일 영상을 업로드한다. 나 대표는 “단 하루도 쉴 수 없고 공휴일과 방학에는 사람들이 많이 보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이 업로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혀 새로운 도전, 국내 최초 MCN 기업을 설립하다

 

나 대표는 이필성 공동대표와 함께 국내 최초의 MCN 기업, 샌드박스 네트워크를 설립했다. 하지만 ‘최초’라는 타이틀에는 언제나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었다. 선례가 없어 모든 기틀을 닦아야 했기 때문이다. 나 대표는 이 상황을 마치 “결승선이 보이지도 않는 레이스를 하는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이런 불안정성은 자칫하면 사업을 실패로 돌릴 수 있었다. 그렇기에 설립까지는 많은 고민이 있었다. 더군다나 이 대표는 구글이라는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굳이 내려놓을 만한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나 대표는 이 대표를 꾸준히 설득했다. 설득에 힘을 더하기 위해, 나 대표는 이 대표를 LA에서 열린 온라인 비디오 컨퍼런스에 데려갔다. 그들은 전시회장에서 디지털미디어의 생태계가 변화하고 있는 것을 목도했다. 이런 흐름이 곧 한국에 도달할 것이라고 생각한 그들은, 귀국편 비행기에서 회사의 이름을 고민하며 앞으로의 청사진을 그렸다. 이 대표는 사표를 냈고, 나 대표는 유튜브에 채널을 개설할 수 있는 권한을 요청하는 등 창업에 박차를 가했다. 그 결과, 샌드박스 네트워크는 정직원이 50명에 달하는 건실한 회사로 성장했다.

나 대표는 샌드박스 네트워크가 추구하는 디지털 엔터테인먼트의 신조로 ‘공감’을 꼽았다. 시청자에 공감하고, 시청자도 공감하는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비교적 넓은 시청자 층을 대상으로 하는 기존의 미디어와는 달리 특정 시청자 층의 취향을 ‘저격’하는 콘텐츠를 만들려면 공감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 대표는 “이런 공감을 통해 미디어의 지형을 바꿀 전무후무한 회사가 되고 싶다”며 포부를 전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나 대표는 미디어 직종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기성 언론에 들어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렸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그는 “원하는 일을 적극적이고 신나게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최근에는 디지털 미디어의 가능성을 보면서 달려가는 회사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서 “샌드박스 네트워크에서 같이 디지털 ‘한류’를 만들어 보자”라는 장난 섞인 말을 덧붙였다. 아무리 성공한 방송이어도 계속해서 변화하려는 노력이 없으면 도태되기 마련이다.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도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가 있었기에 지금의 도티가 있고, 지금의 샌드박스 네트워크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길드 : 인터넷에서 똑같은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모임

**덕력 : 마니아를 지칭하는 일본어 ‘오타쿠’의 공력을 나타내는 신조어

 

김민재 기자
nemomemo@yonsei.ac.kr

윤현지 기자
hyunporter@yonsei.ac.kr

천건호 기자
ghoo111@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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