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라거와 에일의 차이를 안다

술을 많이 마시지만 술은 잘 모른다. 얼마나 아이러니한 말인가? 지난 학기 기자는 한 주도 거르지 않으며 열심히 술을 마셔댔지만, 정작 술과 안주의 궁합이나 술 자체의 맛에는 오히려 둔감해졌다. 값이 싸거나, 양이 많거나, 맛이 자극적이면 맛있는 안주라고 생각하기로 했고 술이야 원래 쓴 액체니까 어떤 맛이든 겸허히 받아들였다.

그런데 신촌 거리를 지나가면서, '대동강 페일에일'이라고 쓰인 포스터들이 곳곳에 붙어있는 것을 봤다. 대동강, 페일, 에일이라는 생소한 단어의 나열과 기자 본인의 술에 대한 '일자무식'을 보면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실수록 더 모르는 술의 세계를 이제는 조금 알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가 혼자 술을 공부하기는 어려운 일이기에 ‘술 전문가’들을 모셔 함께 알아가기로 했다. 알고 마시는 술썰, 그 첫 번째 이야기는 '맥주' 편이다. 맥주에 대해 둘째가라면 서러운 맥주 전문가, 신촌 '맥주바다'의 이은숙 사장님과 함께했다.


기자는 '대동강 페일에일'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내야 했다. 우선 '에일'이 뭐냐고 사장님께 물었다.

"에일은 맥주의 한 분과야. 에일이냐 라거냐로 맥주를 크게 분류해. 분류기준은 발효 방법이야. 상온에서 발효하는 상면발효를 택하면 에일이고, 저온에서 약하게 발효하는 하면발효를 택하면 라거라고 불러. 보통 우리가 마시는 카스나 하이트가 라거야. 냉장 시스템이 마련되고 나서야 하면발효가 시작됐기 때문에 실제로는 라거보다 에일의 역사가 더 깊다고 해."

최근 에일 맥주들이 대세처럼 자리 잡고 나도 귀동냥으로 그 단어를 몇 번이고 들었기에 에일이 근래에 도입된 맥주 생산 방식인줄로만 알았는데, 실은 그 역사가 2천 년도 더 오래된 것이었다. 곧바로 기자는 에일의 종류에 대해 물었다.

“에일의 종류는 보통 도수로 구분해. 에일의 대표 격인 페일에일을 기준으로 그것보다 약하면 라이트 에일, 좀 더 세면 IPA, 더 세면 스트롱에일. 밀 함량이 50%를 넘는 맥주는 밀맥주라고 따로 부르지.”

모두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체계적인 작명들 속에 홀로 유독 튀는 IPA. 발음하기도 길고 어렵다.

"IPA는 ‘Indian Pale Ale’의 줄임말이야.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로 삼았을 때 맥주를 상하지 않게 인도로 가져가려고 연구하면서 보리와 홉을 왕창 집어넣어 도수를 높게 한 맥주야. 마냥 홉을 넣으면 쓴 맛이 강해져서 과일향을 첨가하기 시작했어."

맥주에 대한 강의를 끝내고 사장님은 IPA 맥주인 ‘인디카’와 과일 치즈를 함께 내주셨다.

"쓴맛이 강한 IPA는 쓴맛을 빨리 없애는 치즈와 먹으면 좋아.“

정말로 인디카는 과일 치즈와 은은하게 잘 어울렸다. 씹을수록 고소하고 상큼했다. 독특하게도 냄새를 맡으면 나던 과일 향이 맛에 많이 묻어나지는 않았다.

이어 사장님은 밀맥주인 ‘파울라너’를 소프트 치즈를 바른 크래커와 함께 주셨다. 한 눈에 보기에도 밀맥주는 뿌연 색을 자랑했다. IPA와 비교하면 쓴맛이 거의 나지 않았고, 밀도 있는 목 넘김이 입 안에 꽉 찼다. 그 자체의 넘김과 강한 향을 즐길 수 있도록 소프트 치즈를 곁들이는데, 우리가 모르고 먹는 한치와 노가리 같은 향이 강한 안주가 그동안 맥주 본연의 맛을 얼마나 뒤덮고 있었는지에 대한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에일을 맛봤으니 이제는 라거를 맛볼 차례였다.

“필스너 우르켈은 체코식 사스 홉을 사용해서 쓴 맛이 강한 맥주야. 라거는 특별히 향이 강하지도 않고 마시는 데 부담되지도 않아서 첫 잔으로 마시기를 권해. 쌉싸름한 맛과 라거의 탄산이 주는 청량감이 기름진 맛을 잘 잡아주기 때문에 피자와 궁합이 아주 좋아.”

'피맥'이 어느 날 갑자기 뚝 떨어진 조합은 아니었다. 바질 향이 감도는 토마토 피자를 먹고 필스너 우르켈을 한 모금 넘기면 느끼할 듯한 지점을 쓴 맛이 제대로 집어내 깔끔함을 남겼다. 라거 특유의 청량감은 입안을 개운하게 마무리해줬다. 사장님은 마지막으로 흑맥주를 한 잔 내주셨다.

“보리를 태워 만든 게 흑맥주야. 흑맥주에도 따로 라거 라인과 에일 라인이 있는데, 이 '파운더스 포터'는 에일 타입의 흑맥주야. 흑맥주는 첫 맛, 중간 맛, 끝에 올라오는 향까지 세 단계에 걸쳐 맛이 달라져.”

과연 혀끝에 감겨오는 초콜릿 향이 아주 진하게 남았다. 사장님이 추천해주신 스모크 치즈를 곁들이면 처음에는 안주의 맛이 나지 않을 만큼 강한 알콜이 입 안에 머물다가 마지막에 남는 초콜릿향과 스모크 향이 만나 아주 진한 풍미를 전해준다. 맥주와 치즈일 뿐인데도 향 그 자체로서는 아주 다채로운 느낌이 들었다. 에일부터 흑맥주까지, 모르고 먹던 맥주의 세계는 이렇게나 흥미로웠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는 편의점에 들러 만 원에 네 캔 하는 해외맥주를 골랐다. 라거 종류인 필스너 우르켈과 하이네켄, 산미구엘, 에일 종류인 파울라너를 들고 냉장고에서는 치즈를 골랐다. 평소 같았으면 대강 오징어를 굽거나 떡볶이 과자를 샀겠지만, 이제는 어떤 맥주의 향에 어떤 안주의 질감이 적절한지를 알게 됐다. 앞으로 건강하다면 60년은 더 넘게 마실 술인데, 알고 마시면 훨씬 뜻깊은 음주생활을 즐길 수 있지 않겠는가.

이 글을 통해 라거와 에일의 차이를 알게 된 당신의 한 발짝에 박수를 보내며, 오늘부터 편의점에서 맥주를 살 때는 배운 내용들을 적용해보길 권한다. 사장님의 한 마디를 덧붙이면 캔맥주에는 쇠맛이 배기 때문에 생맥주를 마셔야 그 맥주의 '진짜 맛'을 알게 된다고 한다.

 

글 유채연 기자
imjam@yonsei.ac.kr

사진 이수빈 기자 
nunnunanna@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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