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탈을 쓴 학대, 애니멀 호딩

▶▶애니멀 호더의 집 마당에서 발견된 좁은 축사. 동물자유연대 제공.

흔히 동물 학대는 동물을 혐오하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행위로 생각된다. 그러나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도 충분히 동물 학대를 저지를 수 있다.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행동이라 할지라도, 그 행동이 동물에게 해를 입힌다면 모두 다 동물 학대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애니멀 호딩(animal hoarding) 또한 이렇게 사랑이라는 미명 하에 묵인되는 동물 학대 행위이며, 이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애니멀 호더(animal hoarder)라 불린다.

 

애니멀 호딩이 뭐길래? 

 

혹시 동물과 관련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좁은 집에서 동물 수십 마리를 키우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그러한 환경에서 애니멀 호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호딩(hoarding)’은 사전적으로 ‘비축하다’라는 정의를 가지고 있다. ‘호딩’의 사전적 정의에서 알 수 있듯, 애니멀 호딩이란 자신의 동물 보호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채 비정상적으로 많은 동물을 키우는 행동이다. 애니멀 호더는 동물에게 폭행과 같은 공격 행위를 가하지는 않지만 동물을 방치함으로써 학대한다. 
애니멀 호딩은 지난 1981년 미국 공중보건저널의 공식 발표에서 처음으로 정의됐다. 공중보건저널의 발표에 따르면 애니멀 호딩의 특징으로는 다섯 가지가 있다. 이 특징들은 ▲공간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반려동물의 수 ▲동물이 사는 데 최소한의 환경 제공 불가 ▲예방 접종 등 기본적 수의학적 처치 부재 ▲자신이 문제 상황에 처했다는 점에 대한 부정 ▲주변의 만류에도 동물 수집을 중단하지 않음이다. 이 특징들은 현재에도 동물보호단체와 수의사들이 애니멀 호딩인지 그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쓰인다.
이러한 애니멀 호딩은 ▲동물의 건강을 해침 ▲더러운 환경으로 인한 인수공통전염병* 발생 ▲암모니아로 인한 화재 발생 가능성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우선 애니멀 호딩을 당한 동물들은 신체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다. 피해 동물들이 겪는 대표적인 증상으로는 저체중과 피부염, 비좁은 공간으로 인한 근육 위축이나 폐소공포증이 있다. 방치의 정도가 심각한 경우, 피해 동물들은 심장사상충 감염 등의 이유로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 5일, 애니멀 호더에게서 강아지 열다섯 마리를 구조한 신동물병원 신현수 원장은 “열다섯 마리 모두 심각한 저체중이며, 그중 세 마리는 공간을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 싸우다 다쳐 그 상처가 방치돼 덧나 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애니멀 호딩은 인수공통전염병이 발생할 가능성을 높인다. 애니멀 호더가 동물의 청결 상태를 관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애니멀 호더의 가족과 그 이웃들은 인수공통전염병의 위협에 노출된다. 애니멀 호딩 현장에서 가장 빈번히 발생하는 인수공통전염병으로는 피부염, 모낭염 등이 있으며 심한 경우 광견병이 발생하기도 한다. 신 원장은 “광견병 예방 주사를 접종하지 않은 상태에서 해당 바이러스에 노출된 강아지는 주인은 물론 이웃에게도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분변이 그대로 방치될 경우, 분변에서 생성된 암모니아가 공기 중에서 가연성 물질을 만나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정상적인 공기에서는 암모니아가 가연성 물질과 만나 화재가 발생할 확률은 적은 편이다. 하지만 부산대 화학과 강선경 교수는 “좁은 공간에 비정상적으로 동물 수십 마리의 분변이 있다면 화재 발생 가능성이 커진다”라며 “공기 중 암모니아의 비율이 높아져 충분히 화재가 발생할 조건이 형성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2016년 1월 서울시 강서구의 반지하방에서는 암모니아가 가연성 물질을 만나 화재가 발생했다. 그 반지하방에는 사십 여 마리의 개와 고양이의 분변이 방치돼 있었다. 강서소방서는 “환기가 잘 되지 않는 반지하방의 특성상 암모니아가 공기 중에 비정상적으로 많아졌다”며 “이 암모니아가 가연성 물질과 만나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애정 아닌 소유강박, 치료로 해결해야

 

애니멀 호더가 되는 가장 큰 이유로는 소유강박을 들 수 있다. 그래서 애니멀 호딩의 주 피해 종(種)은 개와 고양이다. 개와 고양이는 일상에서 자주 접할 수 있어, 사람과의 친밀도가 높다. 이에 따라 애니멀 호더는 개와 고양이에게 다른 종보다 쉽게 동정심을 느끼고 소유하려 한다.
이러한 소유강박은 대개 가까운 지인의 죽음 등 결핍의 경험에서 비롯된 트라우마 때문에 생긴다. 3년 전 13평짜리 집에서 개 세 마리와 고양이 세 마리를 길렀던 B(65)씨는 “5년 전 배우자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에 도로에 버려졌다던 유기견 한 마리를 입양했다”며 “그 후 강박증에 걸린 것처럼 2년 안에 교통사고를 당했거나 도로에 유기된 동물 다섯 마리를 입양하거나 구조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연 신경정신의원 유민진 의사는 “대부분의 소유강박은 결핍 경험에 대한 반작용으로 생긴다”며 “교통사고로 배우자를 잃은 B씨가 교통사고를 당했거나 도로에 유기된 동물을 수집하기 시작한 것은 결핍을 보완하려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유 의사는 “트라우마가 어떤 특정 행위를 초래하기 시작하면 그 트라우마의 증세는 더욱 커진다”며 “특히 동물 학대는 사람에 대한 학대와 공격성으로 발전하기 쉬운 특성이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애니멀 호딩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소유강박에 대한 심리 치료가 급선무다. 서연 신경정신의원 김상균 의사는 “애니멀 호더들은 강도 높은 소유강박을 겪고 있고 그것을  행동으로 표출한다”며 “상담이나 약물 치료를 통해 강박증을 해결해야 재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B씨 또한 약물 치료와 상담 치료를 병행하는 중이다. 
소유강박에 대한 치료가 이뤄진 후에는 동물은 사람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교육 또한 필요하다. B씨의 주치의인 김 의사는 “B씨는 소유강박을 치료받고 있기도 하지만 동물자유연대에서 기본적인 동물권** 교육도 받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심리 치료에는 사회복지 시스템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더불어 제시되고 있다. 심리 치료에는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김 의사는 “미국이나 프랑스에서는 애니멀 호더로 판명된 사람에게 일정액의 치료비를 지급하고 일정 시간 이상 치료 받을 것을 권하고 있다”며 “심리 치료의 비용이 비싼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정책이 나와야 할 것”이라 주장했다.

 

보호하지 못하는 동물 사설 보호소?

 

애니멀 호딩은 주로 개인 단위에서 일어나지만 동물 사설 보호소(아래 사설 보호소)에서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사설 보호소는 본래 유기동물들이 안락사를 피해 입양과 보호의 기간을 가지도록 하는 역할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됐다. 하지만 여러 가지 원인 때문에 현재 사설 보호소에서도 애니멀 호딩이 발생하고 있다. 사설 보호소에서 애니멀 호딩이 발생하는 원인으로는 대표적으로 ▲사설 보호소 설립에 대한 법적 기준 미비 ▲사설 보호소의 금전적 어려움 ▲사설 보호소에 대한 일회성 지원이 있다.
현행 「동물보호법」상 사설 보호소의 설립 기준이 전무하기 때문에 무분별하게 사설 보호소가 설립되고 있다. 아무리 사설 보호소의 면적이 좁고 자금 조달이 원활하지 않더라도 원한다면 누구나 사설 보호소를 설립할 수 있다.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아래 카라)의 「2015년 한국의 사설 보호소와 카라의 사설 보호소 지원사업」에 의하면 현재 사설 보호소는 전국에 74개로 파악된다. 이중 카라가 애니멀 호딩이 이뤄지는 사설 보호소로 분류한 곳은 45개로 전체의 약 60.81%를 차지한다.
또한 사설 보호소의 대부분은 자금난을 겪고 있다. 「2015년 한국의 사설 보호소와 카라의 사설 보호소 지원사업」에 의하면 약 50여 개의 사설 보호소가 자금난에 시달린다. 이에 대해 기쁨동물병원 윤영지 부원장은 “동물들의 의식주를 해결하고 중성화 수술이나 예방 접종을 위한 비용조차 충당하지 못하는 사설 보호소가 약 70~75%라고 보면 된다”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사설 보호소에서는 개체수에 비해 예산이 적어 중성화 수술이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새끼 개체수가 늘다 보니 예방 주사를 모두에게 접종하지 못하게 되며, 질병에 걸린 개체를 치료하려다 결국 중성화 수술이나 예방 접종을 위한 비용이 고갈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윤 부원장은 “애니멀 호딩이 일어나는 사설 보호소에서는 동물들이 한 쪽에서는 탄생하고 한 쪽에서는 죽는 현실에 처해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현재 사설 보호소에 들어오는 금전적 지원이 대부분 시민들의 일회성 지원이라는 점 또한 애니멀 호딩의 원인이다. 일회성 지원의 주된 유인책은 새로운 동물의 입소이며, 이에 따라 자금난을 겪는 사설 보호소는 일회성 지원이라도 받기 위해 더 많은 동물들을 수용하려 한다. 그런데 이때 수용하는 동물 수가 증가하면 이후 더 큰 비용이 필요해지고, 사설 보호소는 또 다시 새로운 동물을 들인다. 결과적으로 관리 받지 못하는 동물의 수는 지속적으로 늘어난다. 이에 대해 애니멀 호딩이 일어난 모 사설 보호소 C소장은 “좋은 취지로 보호소를 설립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동물을 학대한 것이 돼 마음이 좋지 않다”며 “신 원장에게 남아 있는 세 마리 개를 위탁하고 곧 보호소를 닫을 계획”이라 밝혔다. 신 원장은 “동물 보호를 위한 노력이 악순환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조건적인 도움보다 냉철한 진단이 우선”이라며 “지원금을 주기 전에 먼저 어떤 보호소인지 알아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설 보호소를 법의 테두리 안으로

 

사설 보호소에서의 애니멀 호딩을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조치로는 ▲정부의 금전적 지원 ▲사설 보호소 설립 기준 신설 ▲「동물보호법」에 애니멀 호딩 금지 조항 신설 ▲애니멀 호딩이라는 단어의 법적 정의 마련이 있다.
사설 보호소에서의 애니멀 호딩을 근절하기 위한 임시방편으로서 정부의 금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신 원장은 “현재 공립 보호소가 없어 사실상 애니멀 호딩 관리는 민간에 맡겨진 상황”이라면서 “사설 보호소에 대한 정부의 정기적 지원금이 필요한 시점”이라 설명했다. 
이러한 임시방편과 함께 동물보호단체는 사설 보호소 설립에 대한 법적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윤 부원장은 “면적 당 키울 수 있는 동물의 수를 제한해야 하며, 사설 보호소를 설립하기 위한 초기 자본 또한 법적으로 규정돼야 할 것”이라 주장했다.
나아가 「동물보호법」에 ‘사설 보호소에서의 애니멀 호딩을 금지한다’라는 내용의 조항이 신설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현재로서는 사설 보호소에서 애니멀 호딩 금지 조항이 없기 때문에 그에 대한 사법부의 처벌이 불가능하다. 안석은 변호사는 “애니멀 호딩이 법의 사각지대에 존재하는 것”이라며 “‘애니멀 호딩’ 자체를 「동물보호법」에서 금지하는 것 자체로 그 행동의 무게감이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또한 애니멀 호딩이라는 단어를 법적으로 정의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정부가 애니멀 호딩 근절 사업을 펼치기 위해서는 애니멀 호딩에 대한 정의가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애니멀 호딩의 법적 정의가 없어서 정부 차원에서 진행되는 애니멀 호딩 근절 사업은 현재까지 없었다. 이에 대해 안 변호사는 “법적으로 ‘애니멀 호딩’을 정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농림축산검역본부에 그와 관련된 업무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변호사는 “애니멀 호딩 금지 조항을 신설하면 정부가 사설 보호소에서 애니멀 호딩이 발생하는지 그 현황을 파악하고, 적절한 사후 조치도 취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최근 동물권에 대한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동물을 사랑한다는 명목 하에 이뤄지는 동물 학대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그 현황을 파악하고 개선책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인수공통전염병 : 동물에게 감염되는 바이러스 또는 세균 등의 병원체가 동시에 사람에게도 전염되어 감염을 일으키는 질병.
**동물권 : 동물이 가지는 생명권과 고통을 피하고 학대당하지 않을 권리를 아울러 이르는 말.


박혜지 기자
pphhjj66@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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