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선투표제 도입, 아직 일러

박자은 (언홍영·13)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공들여 밥을 지어도 설익은 밥알만 잔뜩 씹힌다. 밥은 먹어야 되는데 여건이 안 되는 상황이다. 지금 한국의 정국이 그렇다. ‘해야하는 일’은 많은데 난잡한 정국 탓에 하나조차 처리하기 벅차다.
최근 들어 결선투표제를 계기로 다시는 국민의 기대를 저버릴 정권을 만들지 말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물론 대통령을 해보겠다는 사람들에게 고루 기회를 주는 것은 일견 합리적이다. 어차피 결선투표제는 첫 판에서 1등을 놓친 주자들을 위한 게임이다. 청와대에 입성할 확률을 높이는 것 자체가 얼마나 이들에게 큰 희망이 되겠는가.

이번 대선에서의 결선투표제는 의미없어

그러나 이번 벚꽃대선에서 결선투표제를 시행한다고 해도 희망은 그리 크지 않다. 이미 37.1% 지지율을 얻는 문재인, 16.8%의 안희정, 12%의 안철수, 10.3%의 이재명, 7.1%의 홍준표, 4.8%의 유승민, 4.1%의 심상정 후보 등이 경쟁하는 구도 하에서는 각 당내 경선을 거쳐 한 명씩 올라온다 해도 이미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이 확실시 되는 것이다. 결국 결선투표제 도입은 의미가 없다.
국민은 그간 기성 집권층에 현기증을 느껴왔다. 진보의 대표 더불어민주당이 가장 높은 지지율을 얻는 이유가 그것이다. 혹자는 보수가 세력을 회복하려면 10년 넘게 걸릴 것이라고 한다. 결선투표제가 흰 도화지 위에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면, 진보와 보수 중 한 편에 기울지 않은 게임을 벌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보수가 죽은 현재 한국 정치판은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서 국민들 눈치 보는 정치인들이 침대축구를 하는 꼴이다.

결선투표제가 정착된 프랑스,
우리나라와의 정치적 차이점 고려해야

1962년 결선투표제가 도입된 프랑스는 확실히 우리와 다르다. 그들에게 이 제도는 익숙하고 자연스럽다. 다당제와 정당 간 연정도 자연스럽다. 양당제에 익숙한 우리와 다르다. 물론 프랑스 정치가 안정적인 무대는 아니다. 대선 여론조사에 따르면 마리 르펜(국민전선)이 지지율 27%, 마크롱(중도파 무소속)이 24%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극우 포퓰리즘을 경계해 마크롱의 승리를 바라는 쪽이 대다수다.

우리나라에 도입하기엔
시기상조

지지율 1등 르펜만 봐도 문재인의 지지율과 10%나 차이가 난다. 문재인의 지지율 37%는 결선투표제 도입의 최대 난제다. 연정론에 부정적인 것도 그렇다. 이념이 다른 사람과 한뜻으로 적폐청산을 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입장이다. 결국 우리에게 다당제가 익숙해지려면 긴 시간이 필요하다. 한국이 결선투표제 도입과 같은 선진적 변화를 들일 준비가 안 돼있다는 말이다. 군소정당에서 대통령될 사람이 여럿 나와 자유롭게 경쟁하려면, 유력한 대선 후보부터라도 기성권력에 갖는 미련을 버릴 줄 알아야 한다. 기성 권력층이 유연하게 변화를 수용한다면, 비록 에베레스트에서라도 맛있는 밥 한 끼 먹을 수 있지 않겠는가.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