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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건너는’ 건널목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시각장애인용 음향신호기
  • 송경모 기자, 하은진 기자
  • 승인 2017.03.18 21:50
  • 호수 1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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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는 지난 2013년 초, 「보행 친화 도시 서울 비전」을 내놓았다. 해당 비전을 통해 서울시는 10개의 사업을 제시하며 기존의 차량 중심적 도로 시스템을 보행자 중심적 시스템으로 변화시키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그중에는 ‘교통약자 보행환경 종합 개선 사업’도 포함됐다. 해당 사업의 세부 내용으로는 횡단보도마다 설치되는 시각장애인용 음향신호기(아래 음향신호기)의 양적 확충 및 관리유지 절차 도입도 있었다. 비전 제시 이후 햇수로 4년째가 되는 지금, 과연 우리 주변의 횡단보도는 교통약자인 시각장애인의 보행에 충분히 친화적일까?

시각장애인의 눈, 음향신호기

시각장애인 횡단보행의 핵심시설물은 음향신호기다. 육안으로 보행 신호를 판별할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 신호기의 음향을 통해 횡단보도의 방향, 위치뿐 아니라 신호 상태까지 파악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다. 경찰청에서 발행한 「시각장애인용 음향신호기 규격서」(아래 규격서)에 따르면, 시각장애인용 음향신호기는 크게 송신기와 수신기의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전자는 시각장애인 개인이 소지해 작동시킬 수 있는 리모컨을 지칭하며 후자는 교통 신호등용 지주, 즉 신호등 기둥에 부착된 고정 장치이다. 시각장애인이 리모컨을 통해 신호를 보내면, 수신기에서 미리 녹음된 안내 음성이 나오는 것이다.
리모컨 이외에 음성을 작동시킬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 바로 기둥 자체에 부착된 음향신호기 작동 버튼(아래 버튼)을 누르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시각장애인용 음향신호기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황색의 원형 버튼이 그것이다. 결국, 기존의 송신기와 수신기에 버튼까지 더해 총 세 부분이 모여 장애인용 음향신호기 체계를 구성한다.
우리신문은 우리대학교 근처의 신호등에 설치된 시각장애인용 음향신호기의 실태를 알아보고자 신촌동과 창천동, 연희동 일대의 신호등 50여 개에 대해 육안 조사를 실시했다. 적정설치 여부는 경찰청에서 발행한 규격서와 시각장애인 편의시설지원센터에서 매년 실시하는 ‘서울시 시각장애인 보행환경 실태조사’(아래 실태조사)를 참고해 판단했다.

당신의 등굣길, 누군가에겐 가시밭길

우리신문에서 중점적으로 살펴본 사항은 ▲안내표지의 규격서 충족 여부 ▲음향신호기 설치기준 ▲버튼의 실질적 접근성이었다. 조사 결과, 조사 대상 중 과반의 신호등 음향신호기에서 문제가 발견됐다.
우선 가장 빈번하게 나타난 문제는 안내표지 문제였다. 규격서에 따르면 버튼 설치 위치 상단에는 ‘음향신호기의 안내 메시지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것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스테인리스 재질의 안내표지가 부착돼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살펴본 음향신호기 중 1/3 이상이 이 조항을 지키지 않고 있었다. 실제로 차량이나 보행자 통행이 매우 잦은 우리대학교 공학원 앞 횡단보도 신호등에는 버튼만 설치됐을 뿐, 안내표지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안내표지가 적절하게 설치됐다고 하더라도, 각종 유인물에 덮여있거나 표지에 쓰인 문구가 지워져 식별하기 어려운 경우가 절반 이상이었다. 한편, 스테인리스가 아닌 종이 재질로 안내표지를 만들어 부착해놓은 경우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우리대학교 정문 앞 횡단보도 신호등의 모습. 스테인리스 재질로 제작돼야 할 시각장애인용 음향신호기 안내표지가 종이 재질로 설치돼있다.

경찰청 교통국 관계자는 “비장애인들이 버튼을 호기심에 작동시키거나 신호 제어기로 잘못 알고 작동시키는 경우가 많다”며 “안내표지 또한 음향신호기의 일부이며 반드시 음향신호기와 함께 적절하게 설치, 관리 및 유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 편의시설지원센터 김홍진 연구원은 “지금까지 안내표지는 실태조사 항목에 포함되지 않아 집계되지 않았던 부분”이라며 “엄연히 규격서에 쓰인 내용인 만큼 추후 조사 등에 참고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음향신호기의 설치기준도 문제였다. 경찰청에서 발행한 규격서는 ▲전철·철도역 주변 ▲공공건물 주변 ▲시각장애인 이용시설 주변 등을 우선 설치 구역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강제성도 없을뿐더러 지나치게 모호한 서술이다. 실제로 연희삼거리의 경우 하나의 교차로에 총 세 개의 횡단보도가 존재한다. 하지만 직접 살펴본 결과 그중 한 개의 횡단보도에만 음향신호기가 설치돼있고 나머지 두 개에는 설치되지 않은 상태였다. 또한, 차선의 수나 횡단보행자의 수에는 큰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차도 상에 음향신호기가 설치된 횡단보도와 그렇지 않은 횡단보도가 혼재된 경우도 찾아볼 수 있었다.
시각장애인이 버튼에 접근하기 어렵다는 문제 또한 곳곳에서 발견됐다. 일반적인 음향신호기 버튼이 차량 통행방향과 90도를 이루도록 인도 쪽으로 나 있는 것과 달리, 우리대학교 남문에서 연희교차로 방향 횡단보도의 신호등에 부착된 음향신호기 버튼은 차량 통행방향과 나란히 나 있었다. 자칫하면 버튼을 누르려다 인명사고가 날 수도 있을 법한 위치였다. 이는 ‘시각장애인용 음향신호기는 교차로의 형태, 지주의 위치 등을 고려하여 시각장애인이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설치하여야 한다’는 규격서의 조항을 준수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대학교 남문 건너편의 신호등. 음향신호기 버튼이 차도와 나란히 나 있다. 해당 방면에는 난간 등 어떠한 안전장치도 없어 사고의 위험이 있었다.

한편, 서대문소방서 측면에 위치한 횡단보도의 음향신호기는 신호등 지주 앞 인도에 상습적으로 이륜차량의 주차가 이뤄져 사실상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 단독으로 버튼을 누르기가 불가능했다. 연희교차로와 연희삼거리 사이의 한 횡단보도 신호등 지주 앞에는 무가지 가판대가 설치돼 역시 버튼에 대한 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졌다. 즉, 제대로 설치된 음향신호기 중 일부는 시각장애인의 실질적 이용이 힘든 상태다.

눈길, 손길 모두 태부족

왜 이런 문제점들이 방치된 채 남아있는 것일까. 이 질문의 답에 대한 실마리를 얻기 위해서는 음향신호기에 대한 점검과 관리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먼저 이해해야 한다.
현재 전국의 시각장애인용 음향신호기는 각 지방자치단체(아래 지자체)에서 발주하며, 신호기의 규격·치수·구조를 점검하는 외관검사 및 일상적 유지·관리 역시 지자체의 소관이다. 문제는 검사 항목에 안내표지의 부착상태, 버튼의 설치 방향 등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실제로 음향신호기가 설치된 후 장애인들의 이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애로사항을 간과한 것이다.
일상적 유지·관리 업무에도 문제점이 존재했다. 서대문구의 음향신호기 발주 및 관리 유지를 모두 담당하고 있는 서울시 서부도로사업소 측에 문의한 결과, 음향신호기에 대한 정기 점검은 매년 상하반기마다 한 차례씩 이뤄진다. 그러나 정기 점검 이후에 음향신호기에 발생한 문제점은 다음 점검 때까지 방치되는데, 따라서 음향신호기 점검을 주 업무로 하는 상근 검수원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서부도로사업소 기전과 A 주무관은 “매일 서부도로사업소 관내 신호등을 점검하는 교통과학연구원 소속 상근 검수원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대문, 마포, 은평 등 다섯 개 구를 관리하는 서부도로사업소에 배치된 검수인력은 다섯 명에 불과하다. 사실상 이는 한 구에 한 명꼴로, 서대문구 관내 532개 신호등 모두를 단 한 명이 점검하는 체계다. 이런 시스템하에서 시각장애인의 실질적 편의를 도모하는 관리 보수가 이뤄지기란 쉽지 않다.
이처럼 미흡한 설치 및 관리 실태를 보이는 버튼이지만 시각장애인들이 택할 수 있는 실질적 대안은 마땅치 않다. 버튼 대신 신호기를 작동시킬 수 있는 리모컨이 있지만, 이는 시각장애인의 특성상 상당히 잦은 고장과 분실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음향신호기용 리모컨은 장애인 보조구로 분류되며 일반적으로 장애인 개인이 구입해야 한다. 서대문구청 사회복지과 관계자는 “일부 보조구 품목을 만 24세 미만의 청년/청소년 시각장애인에게 임대하는 사업이 있으나 현재 리모컨은 임대 가능한 품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시각장애인 중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와 차상위계층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에게는 무상으로 리모컨이 지원 가능하지만, 사실상 이들을 제외하곤 공공 차원에서의 리모컨 지원이나 보조는 없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갈 길이 멀지만

개선의 조짐이 전무한 것은 아니다. 지난 2016년 4월, 국민권익위원회는 「시각장애인용 음향신호기 안내표시 개선방안」을 의결, 경찰청에 권고 형태로 전달했다. 해당 권고는 음향신호기에 관한 몇 가지 사항의 개선을 골자로 했다. 주를 이룬 내용은 음향신호기 고장을 시각장애인이 발견했을 시 민원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소관 부처 번호를 일원화해 점자로 병기하라는 것이었다. 그 외에 ▲경찰청에서 발행하는 규격서를 개정할 것 ▲지자체 차원에서 음향신호기를 정기적 뿐 아니라 수시로 점검하고 단계적으로 교체 및 설치할 것 또한 권고에 포함됐다.
그러나 각각 지난 2016년 6월과 12월까지로 예정됐던 음향신호기 안내표시 점자표기 병행의 안과 규격서 개정의 안은 2017년 3월 현재까지도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경찰청 교통안전국 관계자는 “하나의 권고로 인해 전체 규격서를 개정한다는 것이 쉽지 않아 지연되고 있다”며 “오는 3월중으로 개정을 마무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개선안 시행은 경찰청장 지시사항 형식으로 연초에 각 지자체에 협조요청을 한 상태”라고도 덧붙였다. 이에 대해 A 주무관은 “2월경에 해당 사안을 놓고 서부도로사업소 전체 회의를 가졌다”고 전했다. 또 “일단 아직 권고문 내용에 준하는 사업은 이뤄지고 있지 않다”며 “상부의 구체적인 지시나 장애인단체 쪽의 요구가 있으면 그때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갈 것 같다”고 말했다.

국민권익위의 권고와 경찰청의 지시사항은 정부부처가 음향신호기의 개선 필요성에 공감한다는 방증이지만, 문제의식이 좁다는 한계가 있다. 검수 인력 부족 문제, 모호한 설치 기준 문제, 안내 표지 규격 미달 문제 등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문제 인식조차 부족한 모습이었다. 갈 길은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향신호기 문제의 개선이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까닭은 음향신호기가 시각장애인의 안전한 횡단보행에 필수적인 시설이기 때문이다. 평상시 아무 생각 없이 지나는 건널목이 누군가에겐 위험한 공간이 아닐지, 문제의식의 다각화와 적절한 행정 조치가 필요하다.

 


글 송경모 기자
songciety@yonsei.ac.kr
사진 하은진 기자
so_havely@yonsei.ac.kr

송경모 기자, 하은진 기자  songciety@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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