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스 검침원 파업 현장에 가다

지난 2월 1일, 서울시 서대문·은평·종로구를 담당하는 서울도시가스 강북5고객센터 소속 도시가스 검침원(아래 강북5고객센터 검침원) 20명이 파업을 시작했다. 피켓 시위는 서울시청 앞 사거리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무엇이 이들을 추운 겨울의 길거리로 나오게 했을까. 2월 15일, 기자들은 도시가스 검침원들의 파업 현장을 직접 방문했다.

서울시 도시가스 업무를 담당하는 회사는 총 5개로, 이 중 ‘서울도시가스’ 업체의 규모가 가장 크다. 원청인 서울도시가스에 14개의 고객센터가 하청으로 있고 이들 고객센터에 검침원들이 고용돼 있는 구조다. 강북5고객센터 검침원 총 33명 중 20명은 매일 출근시간과 점심시간에 서울시청 앞 사거리에서 피켓 시위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들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아래 서경지부) 도시가스분회에 소속돼 있다. 서경지부 하해성 조직부장은 “도시가스 업무를 총괄하는 서울시에 직접적으로 요구조건을 전달하기 위해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시간대를 이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파업의 이유를 묻다
 

파업 검침원들이 내세우는 파업 철회의 요구조건은 크게 두 가지로, ‘서울시 가이드라인에 맞는 임금 지급’과 ‘행정직과 동등한 식대 지급’이다.

우선 강북5고객센터 검침원들은 현재 그들의 임금이 서울시에서 제시한 가이드라인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파업에 참여한 강북5고객센터 검침원 정모(56)씨는 “서울시 가이드라인과 20만원 넘게 차이가 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2016년 서울지역 도시가스 고객센터 지급수수료 산정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시가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한 검침원의 임금은 지난 2016년 기준 세전 163만 2천174원인 데 비해, 현재 8년차의 강북5고객센터 검침원은 세전 약 140만 원(세후 128만원)을 지급받고 있다.

이들의 임금이 유독 더 적은 데는 이유가 있다. 파업에 참여한 강북5고객센터 검침원 공모(55)씨는 “언덕과 고지대가 많은 서대문·은평·종로구의 특성 상 노동력이 더 많이 필요해 서울시가 정한 노동 적정 인원인 31명보다 두 명 많은 검침원이 일하고 있다”며 “31명분의 임금을 33명이 나누어 받고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지역 특성에 따른 부담이 온전히 검침원들에게 전가된 것이다.

강북5고객센터 관계자는 『The Y』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동거리가 긴 지역 특징 때문에 노동 강도를 고려해 33명의 검침원을 배정한 것은 사실이지만,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지급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이에 고용노동부 근로기준정책과 오정택 주무관은 “가이드라인은 행정기관이 제시할 수 있는 기준일 뿐이기 때문에 이로 인해 법적 제재를 가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강북5고객센터의 임금 지급이 현행법을 위반한 것은 아니지만, 도시가스 업무를 총괄하는 서울시의 가이드라인과의 격차가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강북5고객센터 내 행정직과 검침원 사이의 복지 부문에서의 차별도 주요한 문제다. 정씨는 “지난 2015년 9월 추석 떡값으로 행정직에게는 50만원, 검침원들에게는 30만원이 제공됐다”며 “사측에 이에 대해 항의하자 ‘두 직군은 급이 다르다’는 대답이 돌아와 노조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같은 시기에 노조를 결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행정직과 검침원들 사이의 차별 대우가 노조 결성의 직접적 계기로 작용한 것이다.

이 차별은 식대보조비 지급에도 영향을 미쳤다. 강북5고객센터의 행정직에게는 한 달 12만원의 식대보조비가 제공되지만, 검침원은 그 절반인 6만원을 받고 있었다. 이에 대해 강북5고객센터 관계자는 “식사 시간이 정해진 행정직의 경우에는 정해진 식대를 지급하는 것이 용이하지만, 회사 외 장소에서 자택 근무를 병행하는 검침원들의 경우에는 이를 확인하는 것이 어렵다”고 전했다.

하지만 서울시에서 제시한 가이드라인에는 검침원의 식대보조비가 12만원으로 규정돼 있었다. 이에 일각에서는 강북5고객센터가 규정대로라면 온전히 식대보조비로만 지급돼야 할 12만 원을 각각 6만 원씩 식대보조비와 기본급으로 나눠 지급해 최저임금 위반을 회피하려는 ‘꼼수’를 쓴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 「최저임금법 시행 규칙」에 따르면 최저임금은 상여금 등의 정기 임금을 제외한 미리 정해진 지급 조건에 따른 임금, 즉 기본급만을 기준으로 산정된다. 이 때문에 만약 검침원들의 식대보조비를 서울시 가이드라인에 맞게 12만원으로 올리고 이에 따라 기본급에서 6만원을 내리면 최저임금법 위반이 되는 상황이다. 서울시 녹색에너지과 관계자는 “식대와 관련된 사항에 대해 서울 지방노동위원회에 관련 조사를 의뢰한 상태”라고 전했다.

정씨는 “사측과 몇 번 교섭을 시도했지만 계속 실패했고 교섭 진행 과정에서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며 “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아 파업에 돌입했다”고 말했다.

지난 2월 22일에는 강북5고객센터 검침원들의 파업에 대학생들이 참여하기도 했다. 이날 파업에 참여한 대학생 실천단 ‘오프너’의 여성권리팀장 이산(고려대,역사교육과‧13)씨는 “이분들의 투쟁에 연대하는 것이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 일반화된 여성 노동현실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시민들에게 파업을 알리는 활동을 함께했다”며 동참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이들이 파업에 오기까지
 

노동자 A씨는 높은 곳에 위치한 가스계량기를 무리하게 검침하려다 넘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이를 사측에 보고하자 전후 상황을 담은 경위서를 작성하게 한 뒤 병원비를 지급했다. 그러나 A씨의 공백으로 모자라게 된 노동력은 다른 직원들이 보충하도록 했다. A씨는 미안한 마음에 깁스를 하고 검침을 돌았다.

 

검침원들이 검침해야하는 가스계랑기의 위치에 대한 기준은 그간 검침원들의 근무 강도를 높이는 이유 중 하나로 작용해왔다. 낮거나 높은 곳 등 손이 닿기 힘든 곳에 위치한 가스계량기 때문에 검침원들이 부상을 입는 경우까지 생기기 때문이다. 가스계량기에 대한 법적인 규제가 전무한 것은 아니다. 한국 검사 시스템의 「가스사용시설의 시설ㆍ기술ㆍ검사기준」은 가스계량기를 설치해야 할 높이와 위치 등에 대한 제한을 두고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에 적용될 처벌 조항 또한 마련된 상태다. 그러나 정씨는 “신축 건물의 경우에만 비교적 기준을 지키고 있는 편이며 낡은 건물들의 대다수는 그렇지 않다”고 전했다.

노동자 B씨는 가스 검침을 위해 가정의 현관문을 열었다. 안에는 알몸의 남성이 서 있었다. B씨는 그 길로 현관을 나와 줄행랑을 쳤다. 사측에 고충을 토로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그것(남성의 알몸) 처음 보냐”는 대답뿐이었다.

 

노동자 C씨가 방문하는 가정에는 80대 할아버지가 혼자 계시다. 검침을 하고 있자면 할아버지가 자꾸만 C씨에게로 다가와 등을 어루만진다. C씨는 불쾌함을 느끼지만 지속적으로 만나야 할 고객이기 때문에 쉽게 이를 표현하지 못한다.


이런 문제들은 여성 검침원이 혼자 가정에 방문한다는 점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검침원들은 이런 문제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정씨는 “지속적으로 방문해야 할 가정의 고객과 검침원 사이에 마찰이 생기면 민원 해결이 검침원들의 몫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문제를 겪고도 침묵하곤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정씨는 “기성언론에서 우리의 이야기가 임금 등 여타 문제들 외에 성적인 주제에만 매몰돼 주목받는 현실이 불만스럽기도 하다”며 의견을 피력했다. 열악한 노동자들의, 그 중에서도 더욱 열악한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 현장에는 불합리가 가득했다.
 

남아 있는 구조적 문제들
 

그러나 강북5고객센터 검침원들이 파업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근본적인 이유는 서울시에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서울시가 사실상 검침원들의 업무 강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임금 산정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침원들의 월급은 대부분 서울시에서 가스공급업체에 지급하는 위탁수수료에서 나온다. 서울시는 인원, 업무 강도 등을 고려해 위탁수수료를 산정하고 이를 서울도시가스를 비롯한 5개의 민간 업체에 지급한다. 해당 민간 업체들은 이 위탁수수료를 하청업체에 운영비로 나눠 지급하면 하청업체가 운영비의 일부를 검침원들의 임금으로 산정해 지불한다. 서울시는 지난 2014년부터 매년 도시가스 고객센터 지급수수료와 관련한 용역보고서를 제출하고 있지만, 이 보고서 내용이 실제 노동자들의 업무 내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검침원들은 매달 실시하는 도시가스 계량기 검침과 반기(6개월)마다 실시하는 도시가스 밸브 안전 점검 이외에도 점검일 공지, 고지서 배부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기본적인 업무부터 노동 강도는 상당한 편이다. 정씨는 “하루에 점검하도록 배당된 가구 수는 약 50개 정도지만, 집에 실제로 사람이 있는 경우가 많지 않아 실제로는 하루에 150가구 정도를 돌아다녀야 한다”고 말했다. 가구마다 재실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주말근무나 야근을 할 때도 잦다. 그러나 간주근로*의 특성상 주말수당과 야근수당을 챙겨 받기는 어렵다.

현재 이들의 임금은 가스검침을 단순노동으로 간주해 한 달 209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최저임금을 웃도는 수준에서 산정되고 있다. 정씨는 “서울시의 보고서는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PDA**에 기록된 수치만을 기준으로 제작됐기 때문에 기본 업무 이외의 업무에 대해서는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노동자들의 업무에는 주택 사이를 이동하는 시간, 고지서 정리 등 노동시간에 산정되지 않은 잡무 등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서울시 녹색에너지과 관계자는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을 표하고 있다. 연구기관을 통해 실태조사를 한 후 용역 보고서를 다시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정씨는 “시위 도중 박원순 시장님을 봬 곧 해결해주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러한 약속이 무색하게도 여전히 이들의 문제는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파업을 시작하고 한 달이 넘어가고 있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사측은 파업 노동자들의 요구조건을 받아들일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노조와 사측 사이에서 조정을 담당해야 하는 서울시는 아직까지 직접적인 개선 사항을 드러내지 않았다. 부당함과 열악함 속에서 노동자들은 끝내 진지한 표정으로 분투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얼마나 더 거센 추위를 견뎌야 봄을 맞을 수 있을까.

 

*간주근로 : 노동 시간 중 일부를 사업장 밖에서 근로하여 근로시간을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에 소정근로시간을 근로한 것으로 보는 노동 시간제.

**PDA: 터치스크린을 주 입력 장치로 사용하는 개인용 디지털 단말기

 

글 최형우 기자 
soroswan@yonsei.ac.kr

유채연 기자 
imjam@yonsei.ac.kr

사진 신용범 기자 
dragontiger@yonsei.ac.kr

천시훈 기자 
mr1000sh@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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