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사회 시간에는 ‘계급’과 ‘계층’의 차이에 대해 배운다. ‘계급 간에는 사회적 이동이 제한적이지만 계층 간에는 상·중·하류층이 자유롭게 이동한다.’ 밑줄, 동그라미. ‘일부 학자들은 계급은 현대사회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하기도 한다.’ 밑줄, 물음표? 우리는 이 대목에서 펜을 멈춘다.

현대사회를 설명하는 데 ‘계층’이라는 개념은 나날이 힘을 잃어가고 있는 듯하다. 특히 올해 최순실씨의 국정농단과 결부된 정유라씨의 성적·입시 특혜 사실은 국민 모두를 무기력하게 했다. 정씨가 받은 특혜들을 통해 오늘날에도 암묵적인 ‘계급’이 존재하며, 현재 자신의 사회적 위치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최씨의 딸 정씨는 이화여대 의류학과 시험에서 출석조차 하지 않고도 B학점을 받았다. 또한, 정씨는 이화여대 수시에서도 서류점수가 부족함에도 만점에 가까운 면접 점수를 챙겨 받으며 합격했다. 이 과정에서 정씨보다 서류 점수가 높았던 두 지원자가 탈락했다. 이들은 면접장에서 ‘~의 자식’을 위한 승자가 정해진 경쟁의 희생양이었다. ‘귀족’ 정씨는 신분제가 사라진 현 사회에서 ‘부동의 상류 계급’이었던 것이다.

이화여대 황유정(의류·15)씨는 정씨가 특혜를 받은 과목을 한 학기 먼저 수강했다. 황씨는 “해당 과목이 실기 위주로 평가를 받다 보니 학점이 낮게 나와도 교수님의 판단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며 “정씨의 특혜 사실을 접한 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누군가는 돈과 권력으로 나를 충분히 앞설 수 있겠다’는 생각에 한동안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귀족’은 비단 정씨 하나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우리를 더 비참하게 한다. 부모의 부를 이유로 특혜나 불이익을 경험하게 되는 일은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우리대학교 이봄샘(국문·15)씨는 모 대학 입시면접에서 면접관으로부터 부모님의 직업을 질문받았다. 이씨는 “학교생활이나 리더십 경험, 제시문 문제 등에 관해 물어봐야 할 면접 자리에서 부모님의 직업을 물어보니 너무 당황했다”며 “부모님의 직업이 내 대학 합격이나 지원 학과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한, 부산대 김황철(경영·11)씨는 “모 기업은 신입사원 지원서에 부모님 직업과 직위 기재를 요구한 뒤 ‘허위 기재 시 불합격’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처럼 우리는 부모의 부가 암암리에 대물림 되고 있음을 이러한 ‘부당한 경쟁’에서 목도한다. 비행기를 회항시켰던 조현아 부사장의 권위와 우병우 수석 아들의 군 복무 특혜는 어디에서 비롯했을까? 마땅히 경쟁해서 얻어야 하는 과정들을 그들은 출신 성분만으로 패스한다. 우리는 ‘그들’과 ‘우리’가 세상을 살며 무언가를 누리기 위해 전혀 다른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음을 느낀다.
 

넘어져 가며 죽도록 달려도 닿지 않는 목표가 있다. 누군가는 그 목표를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호통치는 것만으로 통과한다. 경쟁사회라는 우리나라에서 부모님 찬스는 반칙이 아닌 모양이다. 우리나라에 유리벽처럼 서 있는 ‘계급’의 존재를 느낀다. 참담하다.

최서인 기자
kekecathy@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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