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김동희 사무처장을 만나다

지난 2015년 12월 28일,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아래 정대협)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의 반발 속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가 타결됐다. 이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한일 위안부 합의 또한 그 결과물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하지만 이런 논란 속에서도 여성가족부 산하 화해·치유재단은 위안부 피해자 23명에게 배상금을 지급했다. 시민단체들은 이에 대해 일본 정부의 공개 사과 없는 배상금 지급은 전쟁 범죄를 인정하라는 피해자의 요구를 반영하지 않은 것이라 주장한다.
이에 우리신문은 지난 11월 28일 정대협 김동희 사무처장을 만나 정대협과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정대협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비영리 사단법인이며, 김동희 사무처장은 지난 1994년 이후로 위안부 피해자(아래 할머니)들과 매주 수요일, 수요시위를 함께하고 있다.

Q. 정대협에서 진행하는 수요시위는 무엇인가?
A. 수요시위는 정대협이 매주 수요일 낮 12시에 서울시 광진구 중곡동 율곡로 일본대사관 앞에서 주최하는 시위로, 위안부 운동의 선봉에 서 있다. 지난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전 일본 총리의 방한이 첫 수요시위의 계기였다. 정대협은 수요시위를 통해 전쟁 범죄의 인정, 진상 규명, 공식 사죄, 법적 배상, 전범자 처벌, 일본 역사교과서에 위안부 기록하기, 추모비와 사료관 건립을 일본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이렇게 정대협이 ‘7대 요구안’을 주장하는 것 외에, 할머니들도 수요시위에 나와 ‘다른 사람들은 같은 고통을 겪지 않았으면 한다’며 평화를 외치고 있다. 이런 할머니들의 뜻에 따라 정대협은 수요시위를 하는 일본대사관 앞거리를 율곡로가 아닌 ‘평화로’라 부른다.

Q. 한 달 뒤에 수요시위가 25주년을 맞는다. 그사이에 수요시위의 모습이 많이 달라졌을 것 같다.
A. 2000년대 초반까지는 수요시위에서 할머니들이 전달하는 메시지가 현재와는 달랐다. 그때 수요시위에서 할머니들은 한탄했고, 그런 발언을 들으며 시위 참여자(아래 참여자)들은 동정심을 느꼈다. 그러나 위안부 운동을 함께 하면서 할머니들은 자신과 같은 전시 성폭력 피해자가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래서 할머니들이 수요시위에서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돕고 평화를 지향한다’는 현재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할머니들의 이런 태도 변화는 참여자들의 인식 변화 또한 끌어냈다. 참여자들이 할머니들을 더는 불쌍한 존재로만 인식하지 않게 된 것이다. 최근 10년 동안 참여자들은 할머니들도 충분히 다른 피해자를 도울 수 있다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Q. 지난 2012년 5월 5일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아래 박물관)’을 개관했다. 박물관을 건립한 이유는 무엇인가? 박물관에 대한 간단한 소개도 부탁한다. 
A. 처음 박물관을 세우기로 한 이유는 정대협 차원에서도 할머니들의 삶을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난 2001년과 2002년, 한 해에 20여 명씩 할머니들이 세상을 떠나셨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에 사료관 건립을 요구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정대협 내부에서도 할머니들의 생애를 기억할 방법을 찾아보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 결과로 세운 것이 박물관이다. 박물관에 위안부 관련 자료뿐 아니라 세계 분쟁과 여성폭력 관련 자료도 전시하게 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로 할머니들이 전시 성폭력 예방에 힘썼기 때문이다. 
또 박물관은 사람들이 위안부의 역사와 현재 여성 인권 문제에 편안하게 접근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사진과 영상, 피해자들의 그림 등을 통해서 관람객들에게 무거운 주제가 보다 이해하기 쉽게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시 성폭력 전반을 다루는 이 박물관이 전쟁의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데에 미약하나마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Q. 처음 박물관 건립을 계획한 후, 개관하기까지 9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개관하기까지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A. 우선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원래 계획된 부지였던 서대문독립공원에 박물관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했었다. 아마도 당시 사회 전반에 퍼진 인식처럼 독립운동가 후손들도 할머니를 ‘더럽혀진 여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순국선열의 뜻을 기리는 공간에 ‘더럽혀진 여자’인 위안부에 대한 박물관이 들어서는 것은 감히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당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그 정도였다는 것을 잘 알기에 시비를 가리려는 마음은 없다. 하지만 위안부 피해자 또한 독립운동가 후손들처럼 한국 정부의 무관심에 희생당했다는 것은 분명히 하고 싶다. 결국, 현재 박물관은 성산동에 건립됐다.
덧붙여 정대협이 약소한 NGO인 만큼, 건립에 드는 자금과 관련해서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비록 긴 시간이 걸렸지만 할머니들과 여러 시민이 모금에 참여해줘 자금을 충당할 수 있었다.
 
Q. 최근 정대협이 ‘나비 기금’으로 대표되는 국제적 연대 활동에 힘쓰고 있다. 나비 기금이란 무엇이며, 정대협이 이렇게 국제적으로 연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A. 나비 기금은 자신과 같은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돕고 싶다는 할머니들의 뜻에 따라 시작한 사업으로, 세계 여러 분쟁 지역의 전시 성폭력 피해자에게 전달하는 지원금이다. 현재 콩고와 베트남에 나비 기금을 매달 전달하고 있다. 정대협은 이 나비기금이 또 다른 연대와 도움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콩고와 베트남의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은 모두 자기들만 고통 속에 살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자기보다 먼저 유사한 고통을 경험한 사람들이 도움을 준다는 것은 그들 삶에 큰 지각변동이었을 것이다. 언론 보도를 통해 잘 알려진 콩고의 ‘마시카’라는 여성은 정대협에 이와 같은 내용의 영상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런 기조 아래, 앞으로 국제적 연대는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현재로서는 시리아 난민 중 성폭력 피해 여성들과 연대하려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또 이런 국제적 연대는 현재 위안부 운동이 국내적 차원을 넘어 전시 성폭력 해결과 예방에 앞장서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각국 정부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뛰어넘는 연대를 보여주는 것이 지금의 위안부 운동인 것이다.

Q. 최근 ‘한일 위안부 합의’가 있었다. 이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며 앞으로 어떤 대응을 할 것인가?
A. 할머니들의 바람은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았다. 할머니들이 요구하는 것은 배상금이나 치유금 같은 돈이 아니다. 게다가 한국 정부는 ‘법적 배상금적 성격을 가진 치유금(아래 치유금)’을 지급한다는 얼토당토않은 말을 하고 있다. 위안부 문제를 치유금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은 피해자들을 거지 취급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는 그저 치유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이 문제를 끝내고 싶은 것이다. 이에 대해 정대협은 정의로운 해결이 있을 때까지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한다. 

Q. 정의로운 해결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A. 정의로운 해결은 전쟁 범죄를 인정하고 공개 사과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둘에는 법적 배상금 지급,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 피해자의 원상회복, 가해국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올바른 역사 교육이 속한다. 이 네 가지가 실행돼야 정의로운 해결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정의롭게 해결될 때까지 싸우겠다는 김 사무처장의 말은 지난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떠올리게 한다. 이 책에는 전쟁을 경험한 후 아직까지도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순간에도 위안부 운동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래서 이 책의 어느 문구처럼 위안부 피해자는 전쟁을 회상할 필요가 없다. 지금도 그 모든 삶이 전쟁 중이기에.

 

 

글 박혜지 기자 
pphhjj66@yonsei.ac.kr

사진 정윤미 기자
joyme@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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