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민 교수 (우리대학교 언론홍보영상학부)

명색이 여론을 전공한 교수여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주변의 학생들은 미국 대통령 선거 전에 누가 승리할 것 같은지 내게 물어보았다. 나는 “이번에는 힐러리 클린턴이 간신히 승리할 것 같고, 클린턴은 4년후 재선에 실패할 것이다”고 대답했는데, 주변의 학생들 반응이 좀 이상했다. 특히 여성에 대한 놀라운(?) 폭언을 했던 도널드 트럼프에 대해 능력있고 경험많은 여성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이 고작 ‘간신히 승리할 것’이라는 내 예상에 대해 어떤 학생은 강력한 반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독자들이 아시다시피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한 대부분의 언론들이 ‘힐러리 클린턴’의 낙승을 예상했지만, 개표를 해보니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었다. 물론 나 역시 틀렸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것은 투표수에서는 힐러리 클린턴이 도널드 트럼프를 눌렀다는 것 정도다.
이 사건 이후 ‘여론조사의 한계’를 지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과연 무엇 때문에 여론조사에 기반한 예측결과가 보기 좋게 어긋났을까? 흔히 언급되는 설명은 ‘샤이 트럼피안(Shy Trumpian)’ 가설이다. 즉 속 마음으로는 트럼프를 지지했지만, 이를 밝히는 것을 부끄러워하는(shy) 트럼프 지지자(Trumpian)가 너무 많았고, 이 때문에 여론조사에 기반한 예측이 빗나갔다는 가설이다. 실제로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정책이나 후보에 대해 공개적으로 지지의사를 밝히는 것을 꺼리는 유권자의 존재를 보여주는 사례는 적지 않다. 영국의 경우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보수당에 대한 지지가 실제 투표결과보다 낮은 경우가 종종 보고되고 있으며, 이는 ‘샤이 트럼피안’의 어원이라고 할 수 있는 ‘샤이 토리(Shy Tory) 효과’라고 불린다. 또한 1982년 로스엔젤리스(LA) 시장선거에서도 여론조사에서는 흑인 후보였던 브래들리(Bradley)가 백인 후보를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투표결과 백인 후보가 시장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이는 ‘브래들리 효과’라 불리는데, 여론조사 상황에서 인종주의자로 간주될 것 같아 침묵하거나 흑인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힌 백인들이 실제 투표장에서는 백인후보를 선택하는 경우를 뜻한다. 
저자의 경우도 ‘샤이 트럼피안’ 가설을 지지한다. 여론조사의 역사를 돌아보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정책이나 후보자에 대한 여론조사의 결과를 해석할 때는 매우 주의해야 한다. 특히 이번 대통령 선거와 같이 ‘막말’과 ‘여성폄하’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선 후보자에 대한 의견은 왜곡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은 분위기에서 ‘박근혜 씨’를 지지하는 시민들은 침묵하기 쉽다. 이는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쉽게 증명된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씨를 강력히 지지했던 정치적 기반은 대구경북지역의 유권자와 60대 이상의 노년 유권자들이었다. 아래의 표에서 ‘어느 쪽도 아니다’와 ‘모름/응답거절’을 눈여겨보기 바란다. 응답자 전체를 기준으로 뚜렷한 의견을 밝히지 않은 비율은 4%이지만, 이 비율은 대구/경북 지역 유권자의 경우 9%, 60대 이상 유권자의 7%로 거의 2배 가량 차이가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즉 박근혜 씨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압도적인 상황을 고려할 때, 적어도 의견을 뚜렷이 밝히지 않은 대구/경북 지역 유권자와 60대 이상 유권자의 대부분은 박근혜 씨의 대통령 직무평가에 대해 ‘잘하고 있다’라고 생각할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 하다. 적어도 저자의 견해로는 현재 박근혜 씨에 대한 지지도는 언론을 통해 알려진 4%보다 2∼5%가량이 더 높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2016년 11월 4주(11/22∼11/24)간 실시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자료*

그렇다면 ‘샤이 트럼피안’은 왜 발생할까? 이는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이 왜곡되었기 때문이다. 소위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 팽배하면서, 편견(stereotype)을 가졌다는 이유로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공간에서 축출되고 있다. 특정한 편견을 가진 사람에게 정치적 권한(즉, 투표권)을 박탈하는 것이 옳지 않은 이상, ‘편견’ 역시도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공간에 등장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 만약 편견이 고쳐져야 한다고 믿는 사람일수록 타인의 편견을 더 경청해야 한다. 고인 물이 썩듯, 입 밖으로 표현되지 않고 마음속에 고여 있는 편견은 사회적·정치적 괴물로 변하기 쉽다. ‘정치적 올바름’을 내세우며, 편견이 자유롭게 소통되지 못한다면, 올바른 정치 역시 붕괴될 수도 있다. 환기되지 않은 공간처럼, 고여버린 4대강처럼, 커뮤니케이션의 왜곡은 현실의 왜곡을 불러온다. 현실의 왜곡은 결과이고, 커뮤니케이션의 왜곡이 원인이다. 만약 우리가 보다 나은 현실을 원한다면, ‘찌꺼기’라고 생각되는 생각과 의견일수록 더 경청하고 더 소통해야 한다. 
‘넘버3’라는 한국영화에는 깡패집단과 ‘깡패같은’ 검사가 등장한다. 최민식이 연기한 마동팔 검사는 영화 속에서 다음과 같은 대사를 내뱉는다. “죄를 지은 ○○가 나쁜 ○○지 죄는 아무런 죄가 없다.” 말이 거칠기는 하지만, 여론조사 역시도 마찬가지라고 저자는 생각한다. 여론조사는 아무런 ‘죄’가 없다.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는 특정한 의견을 죄악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수치에만 의존하며 자신의 신념에 기반해 수치의 타당성을 재단했던 언론 엘리트들의 한계를 보여준 것에 불과하다. 

 

*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에 사용된 질문은 다음과 같다. “귀하는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의 직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혹은 잘못 수행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긍정/부정을 답하지 않은 경우 재질문) 굳이 말씀하신다면, ‘잘하고 있다’와 ‘잘못하고 있다’ 중 어느 쪽입니까?” 
완전한 분석결과는 갤럽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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