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의 수많은 장면들은 평화보다는 전쟁에 가까웠다. 그리고 인간은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이 정당화될 때 상상 이상의 잔혹함을 보여줬다. 하지만 극한의 상황에서도 일부 ‘착한 사마리아인’들은 용기 있는 선택을 내리고 폭력에 저항해 왔다. 「The Y」가 양심의 선택으로 역사를 바꾼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봤다.
 

학살을 막아낸 사람들
 

1939년 발발한 2차 세계대전은 잔혹한 학살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일어났던 시기였다. 전쟁 당시 폴란드에서 활동했던 독일 사업가 오스카 쉰들러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갈 위기에 처한 1,200여명의 유대인들을 구출했다. 
그러나 쉰들러는 전쟁 초반에만 해도, 충실한 나치 당원이자 기회주의자에 가까웠다. 독일군이 전쟁 발발 2주 만에 폴란드를 점령하자 쉰들러는 독일군 장교들과의 밀월 관계를 이용해 전쟁 상황에서 공장을 운영해 큰돈을 벌었다. 쉰들러는 이처럼 지극히 이기적인 사람이었으나 한편으로는 스스로를 반성할 수 있는 도덕성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 그는 나치 독일의 만행을 보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결국 전 재산을 사용해 1,200여 명의 유대인을 구해 냈다. 
‘중국판 쉰들러’로 불리는 욘 라베 역시 2차 세계대전 당시 용기 있는 선택을 내린 인물이다. 쉰들러와 마찬가지로 나치 당원이었던 그는 1910년부터 27년간 중국에서 독일 지멘스 회사의 업무를 맡았다. 그런 와중에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한 뒤 그가 근무하던 난징에 일본군들이 침입해 오기 시작했다. 약탈과 살인을 일삼던 일본군을 보며 욘 라베를 비롯한 일부 외국인들은 난징에 중립지대를 설치해 20만 명가량의 중국인들을 구한다. 이는 무척 위험한 일이었다. 당시 일본군은 서양 선교사들과 외교관들까지 살인하고 다닐 정도로 광기에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전 재산을 희생해 유대인들의 목숨을 구한 쉰들러와 일본군의 광기 속에서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학살을 막아 낸 욘 라베. 이들은 나치 당원이었지만 전쟁 당시 행해졌던 학살을 결코 묵인하지 않았다.
 

제국의 반대에 서서 양심을 지키다
 

거대한 세력의 반대에 서서 양심을 지킨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모두가 한쪽 방향을 바라볼 때 홀로 다른 방향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큰 위험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 당시 일부 일본인들은 조국의 만행을 자각하고 일제의 반성을 촉구했다.
일본에서 민중 변호사로 활동했던 ‘후세 다쓰지’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일본인이었지만 조국의 잔악한 제국주의를 반대하며 수많은 항일 독립 운동가들의 변호를 도맡았다. 영화 『밀정』의 실존인물인 독립운동가 황옥과 김시현, 의열단원 김지섭, 항일활동을 주도했던 박열 등이 그의 변호를 받았다. 후세 다쓰지는 지난 2004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일본인으로서 최초로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기도 했다. 
일본 제국 하에서 리투아니아 영사로 재직했던 ‘스기하라 지우네’는 일본의 동맹이었던 독일군이 리투아니아로 전진해 오는 상황에서 수많은 유대인들을 일본 영사관으로 피신시켰다. 또한 피신한 유대인들을 위해 불법으로 일본 비자를 발급해 주기도 했다. 당시 그는 수천 장의 비자를 일일이 손으로 써서 유대인들에게 제공했다고 한다.
일본 제국의 만행에 저항했던 이 두 일본인은 당시 일본 제국 하에서 기득권을 누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고통 받는 타국의 민중을 위해 기꺼이 위험을 감수했다. 그들은 일신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부도덕적인 행동을 하기보다는 양심의 소리에 따라 결정을 내린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유 없이 학살당하던 비극의 순간, ‘하나의 생명을 통해 세상을 구한’ 사람들은 성인(聖人)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거대한 학살이 사람들을 덮칠 때 용기 있는 선택을 내렸다. 때로는 평범한 사람의 평범하지 않은 선택이 역사를 바꾼다.


최형우 기자 
soroswan@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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