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등 효과에 빠진‘착한’사람들

“난 엄마 거니까, 엄마가 하지 말란 짓은 못하지.” 

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 나오는 극중 인물 박완의 대사 중 일부다. 이후 이어지는 모녀간의 다툼에서 박완의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당연히 넌 내 거지!”

이는 드라마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니다. 페이스북 페이지 ‘연세대학교 대나무숲’에서도 종종 이런 사연을 접할 수 있다.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하는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하거나 혹은 여전히 부모의 요구에 따라가기만 하는 자녀의 모습은 우리에게서 그다지 낯설지 않다.

▶▶ 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의 한 장면

엄마 아빠는 다 안단다, 
가스등 효과

‘가스등 효과’는 『가스등』이라는 영화에서 착안해 심리 치료사 로빈 스턴이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용어다. 이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그의 재산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접근한 남편의 계략에 의해 정신이상자 취급을 받는다. 남편이 집안 어디엔가 있을 보석을 찾기 위해 다락방의 가스등을 켰다 끌 때마다 주인공은 자기 방의 가스등이 깜빡이는 것을 보게 된다. 이에 두려움을 느낀 주인공이 남편에게 불안감을 호소하지만 남편은 주인공의 망상에 불과하다고 치부한다. 이에 주인공은 아무런 의심 없이 자신이 정신이상자가 됐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이렇듯 ‘가스등 효과’는 통제자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상대방의 행동을 조종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 효과는 보통 통제자가 상대방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정당화되고는 한다. 불평등한 관계 속 보이지 않는 폭력인 ‘가스등 효과’는 주로 가족 내에서 발생한다. 표면적으로 이 관계는 한쪽이 다른 쪽을 이끌어주고 인생에 조언을 아끼지 않는 건강한 관계로 보인다. 하지만 자식의 모든 것에 관여하려는 일부 부모와 그런 부모에게 길들여져 무조건적으로 의지하려는 자식은 건강한 관계를 맺지 못한다. 
사회적으로 꾸준히 논란이 되고 있는 ‘헬리콥터 맘’이 가스등 효과에서 통제하는 사람에 속한다.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스스로 인생의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은연중에 부모의 바람대로 인생을 설계하고 살아갈 가능성이 높다. 우리대학교에 재학 중인 A씨는 “딱히 어느 학과를 가고 싶다는 마음도 없었는데 마침 부모님이 권유해서 이 학과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보통의 경우, 통제 받는 사람은 통제자에 대한 맹목적인 존경심 때문에 제약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이런 방식으로 인간관계를 형성한 아이는 자란 후에도 ‘가스등 효과’의 영향으로 타인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만 행동하는 경향을 보인다. 즉, ‘착한 아이 증후군’을 경험하는 것이다. 
한편, 이 효과는 통제를 받는 사람에게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통제자 또한 이 가스등 효과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통제자 역시 자신의 삶은 돌보지 않고 오직 자신이 통제하는 사람의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신경 쓰기 때문이다. 결국 통제하는 사람의 삶도 통제받는 사람의 삶도 온전히 그들의 것이 아닐 수 있다.

모두 착한 나를 좋아해 주세요

통제 받는 사람이 겪는 ‘착한 아이 증후군’은 성인이 돼서도 누구에게나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강박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한 일반적 욕구로부터 나온다. 억지로 이타적인 행동을 할 때 이 일반적 욕구가 증후군으로 변화하게 되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이를 유기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어기제 중 하나로 보기도 한다. 을지대 대전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정선훈 교수는 “이 증후군에 걸리면 양보나 사과에 대한 강박증이 생기거나 남이 정해준 틀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원리원칙주의자가 되기도 한다”며 “타인이 불편해 할까봐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것 또한 증상 중 하나”라고 답했다. 정 교수는 “이 증후군은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타인의 입장에서 평가하고 과하게 억제하기 때문에 신경과민 등의 원인이 된다”고 덧붙였다.
더욱 문제가 되는 부분은 ‘가스등 효과’ 속에서 부모의 관심 밖에 있는 다른 형제까지도 ‘착한 아이 증후군’에 시달리게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관심을 받는 형제를 보면서 스스로 그런 착한 아이가 되고 싶다고 느끼기도 한다. C씨는 “어린 시절 일기에 내가 오빠처럼 착하게 행동하면 부모님이 나를 사랑해 줄 것이라고 적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이 증후군은 성인이 되고 나서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C씨는 “이런 경험으로 인해 아직도 다른 사람들의 심기를 거스를까 걱정하는 경우가 잦다”고 밝혔다. 50대에 접어든 D씨 또한 “유년기에는 착한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사회적 약자들을 돕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고는 했다”고 밝혔다. 이어 D씨는 “40대가 돼서야 모든 사람들에게 착한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을 버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어떻게 극복할까?

‘가스등 효과’와 ‘착한 아이 증후군’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 걸음은 자신이 정말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자문하는 것이다. 정 교수는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치유되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분명히 기관이나 단체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며 치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우리대학교 학생들이라면 교내 상담·코칭지원센터를 이용해 심리 상담을 받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아가 ‘가스등 효과’가 인간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만큼 이를 보다 효과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당사자와 주변 사람들이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리대학교 상담‧코칭지원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있는 A씨는 “처음에는 개인 상담으로 시작했지만 상담사의 권유로 가족 전체와도 같이 상담을 진행했다”면서 “처음에는 가족들이 상담을 꺼렸지만 한번 상담을 한 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밝혔다.

몸이 크고 나이가 찬다고 해서 다 어른은 아니다. 성인이 된 만큼 자신의 행동과 사고를 결정할 수 있어야 어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비록 ‘가스등 효과’와 ‘착한 아이 증후군’을 겪고 있을지라도 이를 극복하려고 시도해야 한다. 그 시도가 온전한 자신의 삶을 살게 되는 첫 걸음일 것이다.

글 박혜지 기자 
pphhjj66@yonsei.ac.kr
<자료사진 TVN 디어마이프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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