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대학교 생명공학과 이인석 교수

지난 1971년 미국의 닉슨(Nixon) 대통령이 “암(Cancer)과의 전쟁”을 선포한지 거의 반세기가 지났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암은 가장 두려운 질병들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사실 많은 선진국들이 막대한 재원을 암 연구에 투자하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암 환자들은 치료에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결국 사망에 이르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분자생물학의 빛나는 발전 덕분에 수백 개의 암유발유전자(Cancer gene)들이 발견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유전자들을 이용한 진단은 매우 제한적인 정확성을 보이고 있으며 이들을 표적으로 하는 암 치료제들도 대부분은 소수의 환자들에게만 효과를 보이고 있다. 이미 반세기 전 우주로 날아올라 달까지 정복한 인류가 왜 아직도 암이라는 질병과는 지루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것일까?
암이 인류의 과학적인 공격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저항할 수 있는 큰 이유 중 하나는 우리 세포 안에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암유발유전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대 생명과학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유전체학 기술의 발달로 암조직의 유전체 염기서열 분석이 수십만 원 정도의 비용으로 가능해졌고 이를 통해 수만 명 환자의 암세포 염기서열의 정보가 생산되고 그 일부는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연구자들에게 제공되고 있다. 미국은 2006년부터 약 10년 간 The Cancer Genome Atlas(TCGA)라는 국가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유전체분석 기술을 이용해 수백 개의 암유발유전자들을 발견해 내었다. 이러한 연구의 덕분으로 현재 우리는 정보 제공처에 따른 차이가 있긴 하지만 적어도 400개에서 최대 약 2000개 정도의 유전자들이 암과 연관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미 이렇게 많은 암유발유전자들의 정체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암 치료법의 개발에는 아직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가? 그 주요 원인들 중 하나는 암유발유전자들의 소셜네트워크에 있다고 필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시스템생물학(Systems Biology) 연구자들은 믿고 있다. 시스템생물학은 생명현상을 유전자들의 독립적인 작용의 관점이 아닌 다수 유전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의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최신 생명과학 분야이다. 필자는 80년대 말 생물학부 수업에서 ‘하나의 유전자가 하나의 기능을 대표한다(One gene, One function)’ 고 배웠다. 그때는 우리의 세포가 도대체 몇 개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지조차 아무도 모르고 있을 때였다. 2001년 인간게놈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를 통해 우리 유전체의 전체 염기서열 정보를 해독할 수 있게 되었고 이를 분석하는 후속 연구들을 통해 우리가 약 2만 개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유전자와 생체기능의 일대일(one-to-one)관계를 가정하면 현재 우리의 유전체는 2만 개의 기능밖에 설명할 수 없다. 현대 의학계가 정리한 인간질환의 수만 하여도 2만 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유전자와 기능의 관계는 일대일이 아닌 다대다(many-to-many)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복잡한 유전자와 기능의 관계를 연구할 수 있는 기법의 하나가 바로 네트워크과학(Network Science)을 이용한 생물체 연구인 네트워크생물학(Network Biology)이다.

네트워크과학은 먼저 인터넷연구 분야와 사회과학 분야 연구에 유용하게 이용되어 왔다. 컴퓨터들의 네트워크 연구는 인터넷을 효과적으로 설계하고 운영하는데 기여하였으며 사람들의 네트워크(소셜네트워크) 연구는 다양한 사회집단의 특성을 분석하고 집단의 기능과 안전성에 핵심이 되는 구성원들이 누구인지를 동정(identify)하는데 사용되었다. 이렇듯 네트워크과학이 인터넷과 사회과학 분야에 먼저 사용된 것은 이들 시스템(인터넷 혹은 사회집단)의 구성원(컴퓨터 혹은 개인)들 간의 네트워크를 규명하는 작업이 비교적 수월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유전자와 같은 생명시스템의 구성원들 간의 네트워크를 규명하는 작업은 기술적으로 매우 어려웠다. 21세기에 들어서 유전체 연구를 통한 대용량 데이터의 생산과 빅데이터 분석기술의 혁신이 이루어지면서 생명시스템 구성원들의 네트워크에 대한 구체적인 지도화가 가능해지게 되었다. 현재 필자의 연구팀을 포함한 북미와 유럽의 몇 개 연구팀들이 유전체 빅데이터 분석기술을 이용해 인간의 유전자들 간의 기능적인 상관관계를 지도화한 유전자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이러한 정보를 전 세계 연구자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유전자네트워크가 유전자의 기능연구에 매우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Guilt-By-Association 개념 때문이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성향, 관심, 기능이 유사한 사람들이 사회에서 상호관계를 밀접하게 가질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학적인 원리는 유전자사회(Society of genes)를 연구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즉 우리가 유전자들의 소셜네트워크를 볼 수 있다면 각 유전자들의 기능을 이웃 유전자들의 기능을 통해 유추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최근 연구를 통해 암세포에서 빈번하게 돌연변이를 보이는 암유발유전자들이 이러한 유전자 소셜네트워크 안에서 상호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이러한 네트워크 관계를 이용해 돌연변이가 잘 일어나지 않아 TCGA와 같은 기존의 유전체빅데이터 연구만으로는 발굴하기 어려웠던 암유발유전자들을 발굴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즉 빅데이터 분석기술을 이용해 구축한 유전자네트워크가 다시 빅데이터를 이용한 암연구를 도와줄 수 있게 된 것이다.

올해 초 미국은 암과의 전쟁을 이기기 위해 “Cancer Moonshot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앞으로 10년간 진행될 이 프로젝트는 수만 명 암 환자들의 유전체 분석을 통한 연구로 암 치료율을 획기적으로 증가시켜 우주개발에 있어 달 정복에 비교될만한 의생명과학의 진보를 이루어 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엄청난 양의 유전체와 임상데이터가 생산될 것이며 이를 분석하고 이해하는 것이 이 인류의 미래를 바꿀 중요한 프로젝트 성공의 열쇠가 될 것이다. 현재 암유전체학자들과 시스템생물학자들은 유전체빅데이터와 네트워크생물학이 암 연구에 엄청난 시너지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리 각자가 특이적인 유전체 정보를 가지고 있듯이 우리는 각자 특이적인 유전자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 이제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는 개인유전체 정보뿐만 아니라 개인의 유전자네트워크를 볼 수 있게 되고 이들을 통합적으로 분석해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맞춤치료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필자는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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