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기업 떠나 외국계 기업으로 향하는 취준생들

‘유리천장’, ‘임신은 죄’ 등 너무도 익숙해진 말. 사원은 차장 때문에, 차장은 부장 때문에, 부장은 사장 때문에 퇴근 못한다는 웃픈 드라마의 이야기. 회식과 야근에 치여 가정에 소홀해진 우리네 부모님의 이야기. 더 이상 먼 미래가 아니다. 취업을 준비하고 있고, 곧 취업을 준비할 대학생들이 마주해야 할 현실. 그래서 취업준비생(아래 취준생)들은 점점 국내 기업 그 너머를 바라보고 있다.  국내기업이 취준생들로부터 외면 받는 현실을 짚어보고, 2016년 ‘한국 최고의 직장’으로 선정된 외국계 기업 ‘힐티코리아’를 방문해 건강한 기업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국내 기업 취업, 이래서 싫어요

글로벌 컨설팅 기업 ‘유니버섬’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2016년 한국에서 가장 매력적인 직장’을 조사한 결과, 구글코리아, 골드만삭스 등 상당히 많은 수의 외국계 기업들이 순위의 상위권에 포함돼 있었다. 우리나라 구직자들 및 직장인들이 외국계 기업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음을 보여주는 자료는 이 뿐만이 아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2~30대 직장인 1502명을 대상으로 외국계 기업으로의 이직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약 66%가 ‘기회만 된다면 외국계 기업으로 이직하고 싶다’고 답변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많은 구직자들과 직장인들이 외국계 기업으로의 이직 또는 구직을 선호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수많은 취업준비생(아래 취준생)들이 한국의 근무환경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잡코리아가 남녀 직장인 604명을 대상으로 ‘대한민국 기업문화’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대한민국 기업문화가 부정적이라고 대답한 사람들은 전체 응답자의 약 49%였다. 그리고 설문에 참여한 이들은 수직적인 기업문화와 성차별적 요소, 그리고 자신의 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점 등을 대표적인 이유로 꼽았다.
먼저 많은 취준생들은 수직적인 조직 문화와 성과주의를 가장 큰 문제점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주미한국대사관 인턴을 했던 A씨는 이에 대해 “한국은 단체 성과주의를 중요시하다 보니 팀 사이에 지나친 경쟁이 유발되는 경우가 많아 비효율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익명을 요구한 직장인 B씨의 ㄱ기업 인턴 시절 회상. “함께 일한 동료 직원들이 모두 동의한 바가 있었는데, 바로 부장급들이 야근을 열심히 일을 하는 기준으로 삼았다는 것”이라며 “굉장히 구시대적 발상임을 알면서도 상사의 눈치를 보며 야근을 하는 동료 직원들의 모습이 개탄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상사의 눈치를 보며 일을 해야 하는 한국인들의 단적인 모습을 꼬집은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국내 연구소에 연구원으로 근무한 지 2년이 돼 가는 C씨는 “‘잘 되면 내 탓, 못 되면 네 탓’이라는 식의 수직적 성과주의 문화도 부담스럽다”며 “비교적 위계질서가 엄격하지 않다는 연구원도 이 정도인데 일반 기업에서는 어떨까 싶다”며 상사의 눈치를 봐야 하고, 성과 달성을 위해 비효율적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취준생들이 생각한 한국 기업의 또 다른 문제점은 여성을 위한 복지 제도가 아직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단법인 미래포럼과 CEO스코어는 지난 5월 30일 발표한 ‘성별 다양성 지수 보고서’를 통해 국내 기업의 성차별 정도를 수치화 했는데(점수가 높을수록 성차별 정도가 작음), 국내 500대 기업의 성평등 수준은 100점 만점에 52.1점밖에 되지 않았다. 이는 국내 기업에 여성들을 존중하는 문화가 아직 자리 잡지 못했으며 이를 보장하는 제도 또한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실제로 박채린(CLC·15)씨는 “가고 싶은 기업을 꼽는다면 국내기업은 최후의 선택”이라며 “국내 기업을 다니는 아버지로부터 기업 내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여성차별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듣기도 했고, 사회적인 분위기의 문제인지 회사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회사 내에서 주는 특혜나 기회 등에 대한 여성들의 접근성이 더 낮다고 들었다”고 답했다.
 

내가 바라던 회사는 어디에

결국 취준생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조건들을 우리나라 기업에서는 찾을 수 없어 외국계로 점점 눈을 돌리게 된다. 우리대학교 김정연(영문‧14)씨는 “많은 기업들의 한국형 위계질서는 아직 사라졌다고 볼 수 없는 것 같아 외국계 기업이 좋은 선택지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며 외국계 기업으로의 취업을 희망했다. 또한, 2015년 상반기 주한미국대사관 공보과에서 약 6개월 인턴을 한 D씨는 “전반적으로 조직문화 자체가 고정된 직급 간의 위계가 없어 수평적 조직 문화가 잘 자리 잡은 형태”라고 말했다. 이어 D씨는 “한국의 회식 문화와는 다르게 관저에서 미국식으로 소규모 파티를 진행하는데, 특정일 오후 업무시간을 비워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조직 내 친목 도모(social gathering)를 할 수 있도록 한 점이 좋았다”고 덧붙였다. 최근 중시되고 있는 워크-라이프 밸런스(work-life balance)가 잘 보장된다는 것이다. 우리대학교 임이정(ASD‧14)씨 또한 “복지제도가 잘 돼 있는 외국계 기업에서는 여성들이 좀 더 평등한 대우를 받을 것 같다”며 “접대를 중시하지 않고, 술 문화도 적어 여성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외국계 기업을 선호하게 되는 것 같다”며 의견을 같이했다. 자신의 능력을 온전하게 펼칠 수 있는 동시에 사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고 또한 여성들의 경우, 성평등 문화가 정착된 기업들을 선호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건강한 기업문화의 방향을 고민하다

▶힐티 아시아&태평양 지사 사장 로버트 밴 덜 펠츠 (Robbert van der Feltz)씨

그렇다면 취준생들이 바라는 회사는 어떻게 그런 문화를 갖게 된 걸까? 한국 특유의 정서와 문화로 인해 오늘날 선호되는 기업 문화가 정착되기 어려운 거라면, 우리나라 기업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우리는 그 답을 찾기 위해  세계적인 규모의 인사조직 컨설팅 기업인 ‘에이온휴잇’이 2016년 ‘한국 최고의 직장’으로 선정한 힐티코리아 본사를 방문해 힐티의 아시아&태평양 사장 로버트 밴 덜 펠츠 (Robbert van der Feltz)씨를 만나봤다. 아래는 펠츠 사장과의 일문일답이다.

Q. 대외적으로 건강한 기업 문화를 정착시켰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 배경은 무엇인가?
A. 힐티의 네 가지 기업 정신인 ‘통합’, ‘헌신’, ‘용기’, 그리고 ‘팀워크’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복지나 급여 등 눈에 보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이런 가치에 대해서 늘 생각하고 인식하는 것이다. 이런 정신은 위에서부터 실천돼야 점차 밑으로 퍼져나갈 수 있다.

Q. 수평적인 기업문화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A. 다양성의 중요성을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종종 새로운 시각, 신선한 발상 등이 필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계급을 떠나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다양한 자리를 빌려 다양한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 회식 자리가 생길 때는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편안하게 개인적인 얘기들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위에서부터 조성해 구성원들 간의 친밀감을 높이기도 한다.

Q. 매달 열린다는 ‘감사 파티(recognition party)’도 그런 맥락인가?
A. ‘감사파티(recognition party)’는 구성원들끼리 서로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행사인데, 상사와의 관계에서 생길 수 있는 작은 마찰들도 잘 풀어나갈 수 있는 자리이다. 때로는 많은 임금보다 한마디의 말이 훨씬 더 강력할 때가 있다.

Q. 아직도 한국의 많은 기업에서는 성차별과 관련된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힐티는 구성원의 대부분이 남성임에도 여성 구성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여성들을 위한 기업 평가 및 후기 공유 사이트인 ‘페리갓보스(fairygodboss)’에 올라온 힐티에 대한 후기 및 평가를 보면 성차별을 느낄 수 없었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어떻게 이런 성평등적인 문화를 만들어나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A. 포용과 더불어 다시 한 번 다양성을 강조하고 싶다. 서로 다른 세대가 됐든, 성이 됐든 한 집단 내에 존재하는 다양성을 잘만 활용한다면 그 다양한 사람들이 가진 다양한 경험들로부터 새로운 아이디어나 신선한 발상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소극적인 사람들도 의견을 내기를 독려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모두 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젠더 문제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다.

Q. 한국에서 직장인들은 야근, 초과업무 등에 시달리며 가정보다는 회사를, 사생활보다는 회사의 구성원으로서 공동체를 더 생각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A. 회사의 구성원들이 직장인이기 이전에 하나의 사람임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회사에서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주어진 업무를 책임감 있게 수행해나가는 것만큼이나 가정에 충실하고 사생활을 이어나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또한 일을 오래 하고, 많이 하는 것보다 적당한 양의 휴식과 여가를 즐긴다면 훨씬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고 실제로 우리 기업은 그걸 증명하고 있다. ‘양보다는 질’의 측면에서 봐도 일과 삶 사이의 균형을 지키는 게 효과적인 것이다. 또한, 기업과 사람 간의 관계에서 노동력과 돈만이 오가는 것이 아니라 기업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목표를 실현시킬 수 있고, 기업은 또한 이런 사람들과 함께함으로써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구성원들을 정해진 일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회사의 비전을 공유하고 함께 발전해 나갈 수 있는 파트너로 본다면 그들의 사생활과 삶을 존중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자유롭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으며 일에 삶이 잠식되지 않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국내기업을 떠나 외국계 기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우수한 인재가 더이상 외국계기업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국내의 기업들도 수직적이고 성차별적인 환경을 개선하고, 일만큼 개인의 삶도 존중하는 성숙한 기업 문화를 조성하기를 바란다.
 

 

서형원 기자 ssyhw35@yonsei.ac.kr
<사진제공 힐티코리아>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