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학 주도의 시국선언을 둘러싼 논란에서 대학민주주의를 고민하다

박근혜 정부의 비선실세 역할을 하고 있던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 씨와 관련된 특혜 의혹 및 부정 입학이 이화여대 내에서 터지고, 잇달아 JTBC에서 최순실 씨가 국정개입에도 적지 않게 개입했다는 보도를 하면서 이른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열렸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며 진실 공방전에 열을 올리는 지금, 대학생들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대학들은 연달아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청계광장에서 일어난 시위에 공식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에 우리신문사는 총학의 대표성 논란과 더불어 특정 정치색을 띠고 있다는 비판까지 각종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대학가의 시국선언 논란을 짚어봤다.


우리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


서강대는 지난 10월 26일, 서강대 총학생회(아래 서강대 총학)가 아닌 여러 학내 단체들이 연합체인 ‘최순실 게이트 해결을 바라는 서강인 일동’에 의해 시국선언이 진행됐다. 이들은 서강대 슬로건을 인용해 박근혜대통령에게 “서강의 표어를 더 이상 더럽히지 말라”고 선언했다. 서강대 총학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해결을 원하는 서강인 모임에서 시국선언을 먼저 발표했고, 총학이 주도한 시국선언은 10월 28일 이뤄졌다”고 전했다. 총학을 제외한 학내 단체들이 먼저 시국선언을 한 것에 대해 서강대 총학은 “어떤 학우든 자유로운 의사표현이 보장돼야 하고 존중받아야 한다”고 답했다.

두 번이나 시국선언이 진행됐으나 이에 대해 서강대 학우들의 의견은 상당히 부정적이다. 서강대 우정화(커뮤니케이션학부‧15)씨는 “운동권의 시국선언과 총학의 시국선언 모두 아쉽다”며 “당위성도 부족하고 감정적 호소에 그친 운동권의 시국선언은 비판받을 만하다”고 말했다. 이에 덧붙여 “총학이 진행한 시국선언의 내용은 운동권의 시국선언보다 훨씬 나았으나, 빠른 결단이 이뤄지지 않았던 것 같다”고 밝혔다.

서강대 학생들은 지난 10월 29일 청계천 광장에서 이뤄진 시위에 따로 공식적인 참여를 하지 않았다. 서강대 학우들은 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전했다. 우씨는 “이유가 있었겠지만 총학이나 단과대 차원에서 시위 참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은 것은 방관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에 서강대 총학은 “시위에 참여하지 못한 이유는 시위 참여에 대해 사전에의결하지 못한 탓이 크다”며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학우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답변했다.

이화여대는 ▲최경희 총장의 비리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양의 부정 입학 및 특혜 의혹 등으로 대학가 중 먼저 운동의 움직임을 보였다. 선봉에 선 이화여대는 기세를 몰아 이화여대 총학생회(아래 이대 총학)의 주도 하에 지난 10월 26일 전국 대학 중에서 가장 먼저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이대 총학은 현 사태에 대해 빠른 시국선언을 진행할 것을 중앙운영위원회에 제안했다.이후 시국선언문을 작성해 공유 후 원하는 단과대 학생회와 동아리 및 기타 학내 단체의 연서명을 받아 시국선언문을 최종적으로 발표했다. 이대 총학은 발표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당시 사용했던 문구를 패러디해 “국민의 꿈이 아닌 최순실의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에 살고 있었다”고 말했다. 시국선언과 관련해 이화여대 학우들의 의견을 들어보고자 했으나 A씨는 인터뷰 요청에 “현재 개인인터뷰는 받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인터뷰가 어려울 것 같다”며 “시위에 참여했다는 것만으로도 학교가 해당 학생을 징계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고, 무척이나 예민한 사안이기에 말을 아껴야할 것 같다”고 전했다.

이대 총학은 지난 10월 29일 진행됐던 청계천 광장에서 있었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시위에 약 50명의 학생들과 참여하기도 했다. 이대 총학은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 것이냐는 질문에 “정유라 씨를 둘러싼 부정입학 및 학사특혜 논란은 제대로 진상규명이 된 바가 없다”며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학내 의사결정 구조에 있어서 학생들의 의견을 모을 예정”이라고 답했다.


분노의 불길은 TK까지


대학가에 연일 이어지는 시국선언 중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보수’의 표밭이자 박근혜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층으로 여겨지던 TK지역에서도 현 시국에 대한 질타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경남 지역의 가장 대표적인 대학인 부산대와 경북지역의 대표 대학인 경북대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비판에 가세했다. 경북대에서는 시국선언 이후 연일 시국대회를 이어 나가며 투쟁하고 있다. 경북대 총학생회(아래 경북대 총학)는 지난 10월 27일 ‘시국선언문.hwp’를 발표했으나 현 시국에 맞지 않게 가볍고 목적이 불분명하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이후 경북대 총학은 28일 새로운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TK지역의 특수성 때문에 시국선언을 하는 데 부담이 있지는 않았냐는 질문에 경북대 총학생회장 박상연(물리교육·10)씨는 “이전의 정치 이슈는 의견이 갈리는 부분이 있었는데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학생회보다도 학우들의 요구가 먼저였다”며 “지역의 특수성을 떠난 중대한 사안이라 오히려 부담이 적었다”고 말했다. 또한 경북대 학생들은 ‘파란 장갑 릴레이 1인 시위(아래 파란장갑 시위)’를 자체적으로 시작했다. 시국대회에 참여하고, 파란 장갑 시위를 시작한 경북대 이지현(신문방송·15)씨는 “총학생회장이 단식하는 것을 보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며 “많은 학우들이 시국대회와 파란장갑 시위에 참여하고 관심을 보여주고 있어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부산대도 움직임에 나섰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관해 부산에서 교수들이 집단 성명을 낸 것은 부산대가 처음이다. 부산대 교수 시국선언은 전체 교수의 4분의 1에 달하는 총 3백70명이 참여했다. 시국선언문을 낭독하는 자리에서 부산대 박홍원 교수는 “그동안 시국선언에 관심이 없었던 분들까지 놀랄 정도로 많은 참여를 해주셨다”며 “이것이 현재 우리 교수사회의 여론”이라며 참담한 심정을 밝혔다. 교수사회뿐만 아니라 학생사회도 분주하다. 부산의 ▲부산대 ▲경성대 ▲동아대 등 부산 지역 대학생들은 ‘부산청년 시국선언단’을 구성하여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10만 명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급할수록 천천히, 우리만의 방법으로 새롭게


우리대학교 역시 시국선언의 바람이 불었다. 우리대학교 총학(아래 연대 총학)은 지난 10월 27일 구글독스를 통해 시국선언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 중앙운영위원회의 의결과정을 거쳐 다음날인 28일 시국선언을 진행했다. 연대 총학 측에 따르면 학생들로부터 12시간이 지나기도 전 약 1천5백 개에 가까운 의견을 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시국선언문이 작성됐다고 한다. 시국선언이 다른 대학들에 비해 다소 느린 감이 있었지만 학생들은 ‘급할수록 천천히 가야 한다’며 ‘서두르지 말자’고 연대 총학의 시국선언을 지지했다. 그러나 총학과 별도로 몇몇 학내 단체들이 10월 26일 ‘연세대학교 시국선언’이라는 이름으로 시국선언문 작성과 시국선언을 주도해 한 차례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관련기사 이번 호 2면 ‘시국선언 이후, 연세의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

일부 대학에서는 대학의 정체성을 살린 색다른 방법으로 이번 사태에 대응하기도 했다. 한국외대는 지난 10월 26일 총학 주도로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이틀 뒤인 28일,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을 포함해 총 9개 국어로 시국선언문을 작성해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총학생회(아래 한예종 총학)에서는 시국선언과 더불어 ‘시굿선언’을 기획해 진행하기도 했다. 지난 10월 31일 진행된 시굿선언은 시국선언을 일종의 별신 ‘굿’ 형태의 퍼포먼스로 만든 것으로 사회에서 큰 이슈가 됐다. 한예종 총학 사무정책국장 정의진씨는 “굿판은 춤과 노래가 복합적으로 결합된 종합예술로서 가치를 인정받아 왔는데, 현재 언론에서 부정적으로 소비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는 생각을 해왔다”며 “그래서 이번 사태가 발생했을 때 공연을 통한시국선언을 기획하게 됐다”고 답했다.


시국선언을 둘러싼 대표성 논란, 총학은 대표자인가 대리자인가


그러나 한쪽에서는 이번 사태로 인해 총학생회(아래총학)의 대표성 논란이 일기도 했다. 대부분 대학의 시국선언은 총학 주도하에 이뤄졌는데, 시국선언문이 작성되고 발표되는 과정에서 총학이 대표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다.

많은 대학 총학들이 부적절한 표현이나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난 내용으로 인해 학생들에게 대표성을 의심받았다. ▲서울대 ▲성균관대 ▲한양대의 학내 게시판 및 커뮤니티에서는 시국선언문이 게재된 이후 비판의목소리가 이어졌다. 이에 서울대와 한양대는 시국선언문을 수정해 다시 게재했다. 또한 총학의 의견 수렴 과정이 부족했다는 점도 문제가 됐다. 성균관대에 재학중인 A씨는 “총학에서 학생들과 소통하려는 노력이 있다는 걸 전혀 느끼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한편으로는 총학의 결정을 지지해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성균관대 남상지(철학·13)씨는 “총학이 시국선언을 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했다면 갈등이 발생하지 않았겠지만 이 사건은 빠른 대처가 필요했던 만큼 신속하게 시국선언을 결정한 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답했다. 서울대 B씨도 “소통도 중요하지만 학생들의 의견을 일일이 수렴하기 어렵기 때문에 중앙운영위원회와 총학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고려대 총학생회장 박세훈(정외·13)씨는 “소통도 중요하지만 총학의 역할이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에 그친다면 총학의 존재의 이유에 대해 반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박세훈씨는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모든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설령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양립할 수 없는 양극단의 의견들이 존재하게 된다”며 “이런 여러 의견들을 듣고 동향을 파악한 뒤 가장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잘 대변할 수 있는 선택을 하는 것이 대표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태동 교수(사과대·시민사회정치)는 “대의민주주의에서 대표가 모든 권리를 위임받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절차적 민주성을 지키고 구성원들이 참여할 수있는 통로를 만들어가는 것은 중요하다”며 “그렇지만 대리가 아닌 대표인만큼 그 의견들을 바탕으로 구성원들의 가치를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선택과 집중을 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답했다.


정치와 비정치의 경계는 과연 실존하는가?


한편, 고려대는 내용과 더불어 과정이 부적절했다는비판을 받으며 총학생회장 사퇴 서명운동까지 벌어졌다. 먼저 내용에서는 지난 10월 27일 고려대 총학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 업로드 된 시국선언문 웹자보의 캐치프레이즈, ‘백남기는 죽이고 최순실은 살렸다’와 시국선언 참가자에 특정 정치색을 강하게 띠고 있는 단체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또한,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을 뿐더러 학칙에 명시돼 있는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다는 점도 논란이 됐다. 이에 학생들은 ‘시국선언을 이용해 물타기를 시도한다’, ‘총학이 지나치게 한쪽의 정치적 입장만을 반영해 대표성을 상실했다’는 등의 지적이 이어졌다. 이에 고려대 총학은 참가자 명단을 뺀 웹자보 수정본이 올라왔지만 캐치프레이즈는 수정되지 않아 총학생회장 사퇴 서명운동까지 이어졌다.

이렇게까지 사태가 번진 데에는 많은 사람들이 고려대 총학의 이러한 행보를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꺼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는 ‘사람들 사이의 의견 차이나 이해 관계를 둘러싼 다툼을 해결하는 과정’을 뜻하며,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일련의 과정들은 모두 넓은 의미에서 ‘정치’에 속한다. 사회적으로 100%로 합의된 정치적 사안이 존재한다는 것은 신화적 믿음에 가깝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누군가에게는 시국선언자체가 정치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며 “결국 모든 정치는 프레이밍과 선택과 집중의 문제로 어떤 관심사를 가진 학생들에게 참여를 독려하는가 하는 것도 총학생회의 전략”이라고 덧붙였다. 즉, 어떤 게 더 나은가의 문제는 참여하고 결정하는 사람들의 문제인 것이다.

위와 같은 논의는 시대적 변화에 따라 다원화된 사회적 요구와도 관련이 있다. 지난 1980년대까지는 민주화, 군부정권 타도, 민주헌법 쟁취 등의 공통적인 정치 의제가 존재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들어 개인주의가 퍼지기 시작하면서 운동권 조직은 점점 학생사회 내에서 입지가 좁아졌고, 위기를 맞기 시작했다.

이후에는 소위 ‘운동권 혐오’가 생겨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운동권’이라는 언어가 정치적으로 잡음이나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들을 대체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필요하다.

현재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건은 그 무엇보다도 국민들이 스스로 투표한 대표자가 아닌 일개 개인이 국민을 대표해 국정을 운영했다는 데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 그런 실정을 비판하고자 일어난 대학가의 시국선언 바람. 그런데 대표성이 없는 권력실세를 겨냥한 시국선언이 작성되는 과정 속에서 대학생들은 모순적이게도 그 시국선언을 주도한 그들의 대표의 대표성을반문하고 있다. 과연 우리의 삶 속에 정치와 비정치의 경계는 존재하는지, 대표자와 대리자의 차이를 혼동하고 있지는 않은지 진지한 고찰이 필요하다.

 

*생태주의적 관점 :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와 균형이 중요하다고 보는 관점.

 

글 박은미 기자 eunmiya@yonsei.ac.kr

서형원 기자 ssyhw35@yonsei.ac.kr

사진 천시훈 기자 mr1000sh@yonsei.ac.kr

<자료사진 오마이뉴스 ,경북일보,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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