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SNS상에서 큰 화제가 됐던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해시태그 운동에서 볼 수 있듯, 이제 우리 사회에서 페미니즘은 더는 일부 열성적인 여성주의 운동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여성혐오 문제를 인식해 목소리를 내고 있는 남성 페미니스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오찬호씨의 저작

여성혐오, 잠자던 남자들을 깨우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열린 마음으로 페미니즘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강남 묻지마 살인사건, 문단 내 성폭력 등 우리 사회에서 자행됐던 여성혐오 문제들이 하나둘씩 수면 위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인하대 박승범(문화콘텐츠·16)씨는 “우리 사회에 여성혐오와 차별이 만연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며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던 여성 차별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서울신학대 전영준(관광경영·16)씨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 차별 문제는 그동안 당연시됐다”며 “이를 인식하고 조금씩 바꿔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사회 분위기 속에 지난 9월 28일 방송된 JTBC 『말하는대로』에서는 『소수의견』의 저자 손아람 작가가 ‘여성혐오가 남자들에게도 역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 많은 남성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은 바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 손씨는 “제일 효과적인 방법은 여자에게 불이익이 없는 사회를 주는 것”이라며 “그것만으로 남자와 여자가 겪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들이 해소될 수 있다”고 전했다.

페미니즘에 대한 늘어난 관심 속에 페미니즘을 진지하게 공부하는 남성들도 늘어났다. 우리대학교 여성주의학회 ‘앨리스’의 학회장 방창훈(문화인류·14)씨는 “페미니즘이 이슈화되며 이에 관심을 두는 남학생들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한편 방씨가 활동 중인 우리대학교 여성주의 공동행동기획단 ‘와이낫페미’에서는 축제 부스 운영, 페미니즘 토크쇼 개최 등의 방법을 통해 페미니즘을 바르게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방씨는 “페미니즘을 지향하는 남성간의 연대가 생긴다면 각자가 속한 공동체에 남아있는 남성 중심의 문화를 효과적으로 해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페미니즘


최근 이렇게 우리 사회에서 남성 페미니스트가 많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의 저자 사회학자 오찬호씨는 우리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사회에서 페미니즘의 파이 자체가 커졌기에 자연스럽게 일어난 현상”이라며 “페미니즘이 주로 다루는 ‘한국사회의 남성성’에 대한 반감이 남자들 사이에서 커졌다”고 말했다.

오씨는 그의 저서에서 본인이나 주변의 사례로 한국의 남성들에 대해 분석했다. 특히 오씨는 한국의 군대 문화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권위, 명령, 복종만이 절대 진리인’ 군대에서 남자들은 자연스레 남성 위주의 문화를 습득했고, 이러한 문화는 결국 한국사회의 가부장제를 견고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최근 남성 페미니스트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상은 이러한 ‘강요된 남성성’에 대한 반감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물론 아직 남성 페미니스트들이 갈 길은 멀다. 여성혐오 문제의 심각성에 공감한다 하더라도, 남자로서 살아 온 세월동안 습득한 남성성을 한 순간에 떨쳐내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말뿐인 페미니즘’도 문제다. 고려대에서 일어난 ‘단톡방 언어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 중 일부는 성평등 지킴이 활동을 하는 등 평소 페미니즘 활동을 하던 사람들이었다. 말로는 페미니즘을 외칠지라도, 일상생활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여성혐오적인 행동을 해 왔던 것이다. 이에 오씨는 “일상생활에서 ‘남자라면’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 데서부터 페미니즘의 실천은 시작된다”며 “강한 남성성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남성 페미니스트들은 페미니즘의 주체가 반드시 생물학적 여성이 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에서 자행되는 다양한 혐오에 대해 다룬 『혐오 발언』의 역자 서울시립대 유민석(철학·박사2학기)씨는 “스스로가 남성이기 때문에 남성문화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는 점이 페미니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이어 유씨는 “페미니즘은 남녀에게 부여돼 왔던 젠더로부터 벗어나도록 해 준다”며 “성차별이 없어질 때 남녀 관계가 평등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페미니즘을 통해 성별에 부여돼 왔던 사회적 편견들이 해체됨으로써 남녀 모두가 이득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페미니즘과 관련된 생각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 전반에 물들어 있는 여성혐오적인 사고방식을 전환하기 위해서는 남자들 스스로의 성찰이 반드시 필요하다. 여성혐오의 타파를 위한 남성 페미니스트들의 노력이 분명 가치 있는 이유다. 페미니즘은 여성(女性)만을 위한 사상이 아니라, 성차별을 없애고 평등을 실현하는 여성(如性)을 향한 노력일지도 모른다.


연세춘추 
chunchu@yonsei.ac.kr
<자료사진  와이낫페미, 네이버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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