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년간 신촌에 자리해온 공씨책방이 문 닫을 위기에 처했다. 건물주는 지난 10월 5일 월세 인상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내왔고 불응 시 퇴거할 것을 명시했다. 갑작스러운 요구에 응하기 어려웠던 대표 장화민(60)씨는 건물주와의 협상을 수차례 시도했으나 그는 무응답으로 일관하는 상태다.
 

문제는 권리금, 
해결방법은 소송 뿐

 

「상가 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최초 계약 이후 5년이 경과하면 임대인은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를 거절할 수 있다. 공씨책방이 현재 건물에 입주한 것은 1995년으로 최초 계약 이후 이미 5년이 훨씬 경과했기 때문에 계약갱신에 대한 임차인의 권리는 보장받을 수 없다. 장씨의 요청에 따라 분쟁조정에 나선 서울시 소상공인분쟁조정위원회의 황규현 주임은 “법적으로 판단한다면 나갈 수밖에 없지만 임차인은 처음 계약 시 지불했던 권리금을 회수할 기회가 있다”며 “(임차인은) 계속 장사하게 해주든지 나가야 한다면 권리금을 어느 정도 보상해달라는 입장이다”고 전했다. 사실상 이번 분쟁조정의 핵심은 권리금인 셈이다. 만일 임대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권리금 회수를 방해할 경우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건물주는 이에 대해서도 여전히 묵묵부답인 상태다. 이 경우 임차인이 권리금 회수를 요구하기 위해서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낼 수밖에 없다.
장씨는 이번 사태의 원인이 “홍대입구 인근 거리의 관광특구 지정 때문인 것 같다”고 전했다. 올해 마포구가 홍대 인근을 문화관광특구로 지정하겠다는 안건을 내놓으면서 근방의 가게세가 일제히 뛰어오른 것이다. 같은 건물에 공씨책방과 더불어 수년째 입주해 있던 미용재료상점 역시 같은 내용증명을 받은 바 있다. 그는 현재 건물주의 태도에 반발해 다른 곳으로 옮긴 상태다. 향후 계획이 어떻게 되냐는 물음에 장씨는 “성수동에 가게를 구했으나 비싼 데다 입지가 비좁아 포기했다”며 “물러나지 않으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지만 일단 버텨볼 것”이라고 전했다.
 

서울시 미래유산, 빛 좋은 개살구…
실질적 원조 없어

 

서울시는 지난 2013년 공씨책방을 미래유산으로 선정해 인증서와 동판을 수여했다. 미래유산은 서울의 근·현대 유산 가운데 미래 세대를 위해 보존할 가치가 있는 유·무형 자산을 의미한다. 하지만 유지 또는 개발에 대한 실질적인 원조를 주기는커녕 단순한 상징성을 표방하는 데 그친다. 장씨는 서울시의 관련 부서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서울시 측은 자발적 보존이 원칙이라며 ‘이사하면 동판을 옮겨 붙이라’는 입장만 밝혔다. 이처럼 미래유산사업이 허허실실에 불과한 것은 이미 유명한 얘기다. 일례로 미래유산으로 선정된 바 있는 소공동의 ‘해창 양복점’은 소공동 개발계획에 따라 이전한 바 있으나 서울시 측은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공씨책방 전경

젠트리피케이션, 신촌에도 여전해
 

연세로 상권이 가라앉고 있지만 신촌에도 젠트리피케이션*은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파이홀이 이듬해 사업을 접는다. 월세 협상이 아닌 일방적 퇴거 요청이다. 
파이홀은 우리대학교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디저트 카페로 지난 2012년 개업한 이래 공영주차장 부근의 한적한 거리로 사람들을 끌어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퇴거를 통보한 이유에 대해 파이홀 관계자는 “(건물주가) 이 자리를 직접 운영한다고 했다”며 “이곳에 정이 많이 들었는데 아쉽다”고 전했다. 한편 이곳을 즐겨 찾았던 학생들 역시 아쉽다는 입장이다. 박소현(언홍영·14)씨는 “자주 갔던 카페인데 결국 없어진다는 게 안타깝다”고 전했다.
분쟁조정위원회와 같은 행정기관에 요청하는 것은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할 대책이 될 수 있지만 사실상 법적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해결은 쉽지 않다. 황 주임은 “이런 사례가 꽤 있다”며 “하지만 어느 한쪽에서 분쟁조정을 거부하거나 소송으로 넘어갈 경우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전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신촌 인근 상권의 가게들은 속수무책으로 밀려나고 있다. 임차인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보다 효과적인 대책이 필요한 실정이다.


*젠트리피케이션: 낙후됐던 구도심이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


장혜진 기자 
jini14392@yonsei.ac.kr
<자료사진 미디어오늘>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