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개 주요 건물 화장실 비상벨 전수조사… 대체로 안전하나 곳곳에 위험요소

지난 21일 낮 4시 50분경, 서울대 자연과학대 연구동 화장실에서 성폭행 미수 사건이 발생했다. 외부에서 침입한 괴한이 화장실을 이용하는 여성 연구원을 흉기로 위협해 성폭행을 시도했으나, 여성연구원이 화장실에 설치된 비상 안전벨(아래 비상벨)을 눌러 미수에 그친 것이다. 이처럼 화장실이 강력범죄의 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지난 5월 발생한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을 통해 밝혀진 바 있다. 이에 광명시·대전광역시·서대문구 등 각종 지자체는 관내 공중화장실마다 비상벨을 설치하는 등 보안장치 마련에 힘을 쏟고 있다.

우리대학교 또한 이와 같은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다. 외부인 출입을 통제하는 장치가 없는 강의동의 경우는 건물에 설치된 화장실이 사실상 공중화장실과 다를 바 없다.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우리대학교는 지난 2003년 대강당, 중앙도서관, 학생회관 등 3개 건물에 비상벨을 설치한 것을 시작으로 교내 곳곳의 여자 화장실 및 장애인 화장실마다 비상벨을 설치해 왔다.

서울대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비상벨은 위급상황 발생 시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기에 엄격한 관리를 요한다. 우리신문에서는 스피드게이트가 없는 주요 강의동 및 학생회관 등 23개 건물(▲경영관 ▲공학원 ▲교육과학관 ▲과학관 ▲과학원 ▲광복관 ▲백양관 ▲빌링슬리관 ▲삼성관 ▲상대본관 ▲상대별관 ▲새천년관 ▲신학관 ▲연희관 ▲외솔관 ▲위당관 ▲음악관구관 ▲음악관신관 ▲제1공학관 ▲제2공학관 ▲제3공학관 ▲체육관 ▲학생회관)의 화장실들을 전수 조사해 ▲비상벨이 모든 화장실에 설치돼있는지 ▲비상벨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조사는 교내 비상벨 설치 및 관리의 주체인 우리대학교 KT텔레캅 통합상황실(아래 KT텔레캅)의 협조하에 지난 8월 29일과 9월 4일 양일간 진행됐다.

교내 비상벨, 어떻게 작동할까?

우리대학교에 화장실 비상벨이 대대적으로 설치된 것은 지난 2013년으로, 그 이전에는 일부 건물에만 ‘오프라인’ 방식의 비상벨이 설치돼 있었다. 오프라인 방식은 벨을 누르는 즉시 복도에 경보음이 울리고 해당 건물의 경비실에 상황이 전달되는 방식으로, 경보음이 요란해 학생들에게 피해를 줄 뿐 아니라 응급상황 시 괴한이 경보가 울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도망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때문에 우리대학교는 2013년 비상벨 설치 당시, 벨을 누르면 경비실이 아닌 상황실로 경보가 전달되며 현장에서는 경보음이 울리지 않는 ‘온라인’ 방식을 채택했다. KT텔레캅 황보훈석 실장은 “온라인 방식은 상황실이 각 경비실이나 경찰서 등 유관기관들의 협조를 요청할 수 있어 보다 효과적으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또 현장에서는 경보음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피해자의 안전 확보 및 괴한의 검거에 더 유리하다”고 전했다.

기자들이 직접 확인한 결과, 실제로 비상벨을 눌렀을 때 현장에서는 아무런 경보도 울리지 않았으나 상황실에는 평균 10초 이내로 경보가 전달됐다.

▶▶ 신촌캠 외솔관 1층 여자화장실에 설치된 비상벨의 모습

5개 주요 건물에 온라인 비상벨 부재…
화장실 칸 안은 여전히 위험

조사 대상으로 꼽은 23개 건물 중, 온라인 비상벨이 전혀 설치돼 있지 않은 건물은 ▲공학원 ▲광복관 ▲백양관 ▲음악관구관 ▲학생회관 등 총 5곳이다. 이 중 백양관, 음악관구관, 학생회관에는 오프라인 방식의 비상벨이 설치돼 있으며, 공학원과 광복관에는 어떠한 형태의 비상벨도 설치돼 있지 않다. 총무처 서기환 총무팀장은 “비상벨이 없는 건물들에도 비상벨을 설치하는 것을 검토해보겠다”고 밝혔다.

또한, 조사 대상 건물의 화장실 중 비상벨이 설치된 화장실은 총 248곳*이었으며, 이 중 화장실의 칸마다 비상벨이 설치된 곳은 50.4%에 해당하는 127곳이었다. 그러나 칸이 애초에 하나뿐인 장애인 화장실을 제외한 두 칸 이상의 일반 화장실 중 비상벨이 칸마다 설치된 화장실은 37곳에 불과하다. 그 외의 화장실에는 세면대 옆 위치에 단 한 개의 비상벨만이 설치돼 있다. 만일 화장실 칸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상황이라면 위급하더라도 비상벨을 이용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 대해 서 팀장은 “비상벨 설치는 필수적인 사항이 아니며 학교가 교내 보안 강화 차원에서 위험하다 판단되는 곳에만 설치한 것”이라며 “모든 칸에 비상벨을 설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밝혔다.

‘안전 사각지대’ 남자 화장실

조사 결과 남자 장애인 화장실을 제외한 교내 남자 화장실 중 비상벨이 설치된 곳은 전무했다. 황보 실장은 “처음 화장실 비상벨이 도입된 것이 성범죄를 방지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주된 피해자인 여자 화장실 위주로 비상벨을 설치했으며, 그 외에 화장실 이용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장애인들의 화장실에도 비상벨을 설치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남자 화장실에도 비상벨을 설치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김석종(경영·12)씨는 “화장실에서 성폭행뿐 아니라 다른 강력범죄가 일어날 수 있으므로, 이를 대비하기 위해 남자 화장실에도 비상벨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서 팀장은 “남자 화장실보다 더 외지고 위험한 곳이 교내에 많기 때문에 큰 비용을 들여 모든 화장실에 비상벨을 설치하기는 어렵다”며 “비상벨이 없는 화장실 앞 복도에도 CCTV·열화상 카메라·지능형 카메라 등 이를 대체할 다른 첨단 보안장치들이 충분히 마련돼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미작동 비상벨 5개 중 1개꼴,
학교 측의 관리는?

그렇다면 설치된 비상벨들은 얼마나 잘 작동하고 있을까. 기자들이 현장에서 모든 비상벨을 누르고 상황실을 통해 작동 여부를 확인한 결과, 교내에 설치된 361개 비상벨 중 76개가 작동하지 않았다. 비상벨 5개당 1개가 고장 나 있었던 셈이다. 미작동 비상벨 중 46.05%에 달하는 35개가 삼성관에 설치된 비상벨이었다. 이에 대해 황보 실장은 “조사가 진행된 시점 직전(지난 4일)인 2일 경에 낙뢰가 있었다”며 “이 때문에 삼성관에 설치된 화장실 경계 메인 서버가 고장난 것이 주요 원인”이라고 말했다.

KT텔레캅은 우리신문과의 조사가 끝난 후 3일 이내에 미작동 비상벨들의 복구를 마쳤지만, 학생들은 여전히 불안하다는 입장이다. 이봄샘(국문·15)씨는 “잠정적인 범죄는 철저하게 예방할 필요가 있으므로 보안장치 관리에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황보 실장은 “기존에 3개월에 한 번씩 비상벨 정기점검을 해왔음에도 미작동 비상벨들이 발견돼 유감스럽다”며 “총무처와 협의해 앞으로는 1개월에 한 번씩 더 철저히 비상벨 점검을 진행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한편 화장실 비상벨은 그간 거의 이용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KT텔레캅 박정희 수석팀장은 “비상벨 설치 이래 경보가 작동한 것은 일 년에 한두 차례에 지나지 않았고 그나마도 화장실 이용에 불편을 느껴서인 경우가 전부였다”며 “그러나 만일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상황실은 학생들의 안전 확보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학교 본부 측은 비상벨 시스템에 미흡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입장이다. 서 팀장은 “우리대학교는 여러 범죄 빈발 구역에 국내 최고 수준의 보안장치를 마련해두고 있다”며 “비상벨 시스템은 보안 시스템의 일부일 뿐이며, 우리대학교는 스마트폰으로 비상 상황을 알리는 Y-Safe 어플리케이션 등 비상벨을 상회하는 수준의 첨단 보안장비를 많이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안전 문제의 특성상 보안 시스템의 작은 구멍에서도 큰 위험이 초래될 수 있다. 이것이 우리신문이 주요 건물의 화장실 비상벨을 표본 추출 없이 전수 조사한 이유이자, 학교 본부가 비상벨 미설치 건물 및 미작동 비상벨에 대한 비판을 피해갈 수 없는 이유다. 학생들의 안전한 화장실 이용을 위해, 학교 본부는 보안장치의 설치 및 관리에 더욱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 연희관 등 여자화장실 내에 장애인 칸이 따로 있는 건물이 있었으나, 별개의 화장실인 것으로 간주했다.

글 김은지 기자  
_120@yonsei.ac.kr
김홍준 기자 
khong25@yonsei.ac.kr
오서영 기자 
my_daughter@yonsei.ac.kr
사진 박은우 기자 
silver_rain@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