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 크라임’의 현주소를 진단하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스틸컷

독감, 간염, 파상풍…. 우리는 때가 되면 각종 예방주사를 맞는다. 질병이 우리를 찾아오기 전에 미리 막을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범죄도 질병처럼 예방할 수 있다면 어떨까. 예방주사처럼 현대 기술을 통해 범죄를 예방하는 시스템이 있다. 바로 프리 크라임(Pre-Crime)이다.

프리 크라임이란


프리 크라임이란 범죄가 일어나기 전에 사건을 예측해 미리 범죄자를 단죄하는 치안 시스템이다. 이 개념이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통해서이다. 영화의 배경은 2054년으로, 프리 크라임 시스템이 도입된 미래사회의 모습을 담고 있다. 영화 속 수사팀은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예언자들이 제공한 사건의 일부 장면을 통해 잠재적 범죄자를 추적해 체포한다.

지난 2002년 개봉된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관람했던 당시 관람객들은 지금과 같이 가까운 미래에 프리 크라임이 등장할 것으로 생각했을까. 당시 사람들에게 범죄를 예측하는 시스템은 공상과학 소설에나 나올 법한 기술로 여겨졌다. 하지만 프리 크라임과 같은 용어가 없었을 뿐 여러 국가는 이미 오랫동안 범죄 예방을 위해 가로등 늘리기, 순찰 등의 다양한 노력을 해오고 있었다. 이처럼 범죄 예방은 우리 곁에 존재했던 개념이지만 프리 크라임이라는 용어가 쓰이게 되고, 빅 데이터와 첨단 기술이 접목되면서 더욱 발전된 형태의 범죄 예방 방법들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빅 데이터와 프리 크라임

영화 속 수사팀처럼 미래의 범죄 현장을 정확히 영상으로 볼 수는 없지만 많은 국가는 프리 크라임을 활용해 범죄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프리 크라임과 관련된 흥미로운 사례로는 CG를 활용해 잠재적 아동 성범죄자들을 적발한 ‘스위티’가 있다. 네덜란드 어린이 지원 단체 ‘인간의 대지(Terre des Hommes)’는 온라인을 통해 아동 매춘을 하는 사람을 적발하기 위해 CG로 가상 소녀 ‘스위티’를 만들었다. 많은 아동 매춘범, 아동 성애자들은 가상 소녀 스위티를 실제 소녀로 착각하고 접근해왔다. 스위티는 전 세계 71개국 1천여 명 이상의 소아성애자 정보를 수집했고, 정보가 수집된 소아성애자 중 1명에 대해 유죄 판결을 얻어냈다. 영국 법원은 해당 판결을 내릴 당시 스위티를 실제 소녀로 믿고 아동 매춘을 시도한 행위 자체를 법률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이 사례는 아동 성범죄의 새로운 형태인 아동 온라인 성매매를 과학기술을 통해 접근해 범죄를 예측하고, 예방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이처럼 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한 프리 크라임도 있지만, 아직 프리 크라임의 일등 공신은 빅 데이터이다. 경기대 경찰행정학과 장현석 교수는 “현재 가장 보편화된 프리 크라임의 원리는 축적된 데이터를 통해 범죄 다발생 지역이나 범죄 이력이 있는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관리함으로써 범죄를 예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최근 많은 나라에서 빅 데이터를 활용한 시스템을 개발해 운영 중인데, 프레드 폴(Predpol)과 DAS(Domain Awareness System)가 그 대표적인 예다. 지난 2011년 미국의 산타크루즈 경찰청은 범죄 예측 소프트웨어인 프레드 폴을 개발했다. 이 소프트웨어는 범죄 기록 분석을 통해 앞으로 일어날 범죄 장소 등을 예측해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 또한 미국은 마이크로소프트(MS)사와 협력해 영역인지시스템 DAS를 도입했다. 이는 자동차 번호판 인식기, 방사능 감지기, CCTV, 911 신고 전화 등을 통해 축적된 데이터를 범죄 수사·예방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찾아볼 수 있는 대표적인 프리 크라임 시스템은 CCTV다. 한국범죄심리학회 회장인 가톨릭관동대 경찰행정학과 전대양 교수는 “우리나라는 현재 CCTV를 범죄수사뿐만 아니라 범죄예방에도 활용하고 있다”며 “얼굴을 가린 범죄자의 걸음걸이를 통해 범인을 예측하거나 CCTV에 축적된 범죄 관련 데이터로 사건을 예측해 연쇄 범죄를 예방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라고 말했다.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작년 기준 우리나라의 공공기관 CCTV 설치대수는 73만 9천여 대다. 비공공기관에 설치된 CCTV 대수까지 합산하면 사실상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은 CCTV의 감시를 피하기 어려운 정도이다. 최근에는 국민안전증진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인공지능(AI) CCTV 개발을 추진 중이다. 인공지능 CCTV는 단순하게 데이터를 저장했던 기존 방식과 달리 이상 행동을 하는 사람을 추적하는 것은 물론, 범인의 도주방향을 예측하고 범인에 대한 정보를 분석해 수사기관에 제공한다.

 

프리 크라임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그렇다면 이렇게 다양한 형태로 작동되고 있는 프리 크라임은 정말 우리를 범죄로부터 지켜줄 수 있을까. 미국 산타크루즈 경찰국(SCPD) 연간 범죄 통계에 따르면 해당 도시는 프레드 폴 도입 이후 반년 만에 범죄 발생률이 절도 11%, 강도 27%, 폭행 9% 정도 감소했다.

우리나라 프리 크라임의 효과도 주목할 만하다. 전국의 각 지방경찰청은 최근 CCTV 도입·확대 후 범죄 발생률이 감소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국민안전처와 경찰청에 따르면 도시공원, 어린이 보호구역 4천 132곳에 CCTV를 설치한 뒤 1년 만에 5대 강력범죄(살인·강도·강간·절도·폭력)가 2천 479건에서 1천 820건으로 범죄 발생률이 26.6% 감소했다. 전 교수는 “프리 크라임은 앞으로 더욱 다양한 기술과 접목해 신종범죄에 대응하고 범죄 예방에 힘을 보탤 것”이라며 프리 크라임의 미래를 내다봤다.

그러나 프리 크라임의 확산과 동시에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프리 크라임은 주로 빅 데이터를 활용하기 때문에 전과자나 범죄 확률이 높은 사람뿐만 아니라 대다수 국민의 개인정보가 CCTV, 번호판 인식기 등을 통해 노출된다. 이에 장 교수는 “프리 크라임 운영 시 시스템을 통해 수집된 개인정보가 범죄 수사와 예방을 위한 목적 외에 사용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면서도 “개인정보 노출만큼 위험한 것은 국민이 개인정보 침해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가는 시스템 속 개인정보가 오·남용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국민은 시스템으로 인한 개인정보 침해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는 프리 크라임이 범죄로부터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광고가 등장한다. 앞선 광고 내용처럼 프리 크라임을 통해 범죄의 공포에 떨지 않는 안전한 사회를 이룰 수 있을까. 개인정보 침해에 대한 문제를 해결한다면 프리 크라임은 범죄를 막는 예방주사가 될 테지만, 개인정보 침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도리어 사회 혼란을 일으키는 독이 될 수 있다.

숙제와 가능성을 동시에 안은 채 우리의 일상 속에 자리 잡은 프리 크라임. 개인정보 침해라는 숙제를 해결하고 신기술을 활용해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시킨다면 『마이너리티 리포트』 속 광고보다도 더욱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홍란 기자
nancho@yonsei.ac.kr
<자료사진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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