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쒀족과 모계사회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세지

현재 우리는 대부분 아버지가 가계의 중심을 잡는 가부장제 사회에 살고 있다. 가부장제 사회에 대항해 여성의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요즘, 우리가 한 번쯤 관심을 가져봐야 할 사회가 있다. 여성이 가계의 중심이 되고, 권력을 잡는 모계사회 또는 모권제 사회. 한 번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모계사회란, ‘상속 등의 사회적 관행에서 어머니계통의 친척을 우위로 하는 가족 형태’를 의미한다. 모계사회라는 개념은 우리에겐 낯설지만 실제로 모계사회를 형성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중국 운남성 부근에 살고 있는 소수 민족 ‘모쒀족(摩梭族)’이 그 중 하나다.

그들이 사는 모계사회는 어떤 사회이며, 이와 관련해 바흐오펜이 주장한 ‘모권’이란 무엇일까? 이 두 개념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또한 현대에 모계사회 및 모권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아버지가 없는 나라

 

▲ 모계사회를 유지하고 있는 모쒀족


중국 운남성 부근 루그 호 주변에 살고 있는 모쒀족은 가장 잘 알려진 모계사회 중 하나다. 이 때문에 이들을 배경으로 쓰인 책들이 굉장히 많은데, 모쒀족 출신인 한 여자아이의 삶을 담은 『아버지가 없는 나라』가 대표적이다. 여느 사회와 마찬가지로 모쒀족 역시 집안의 중심이 재산을 승계 받는다. 모쒀족에서는 여성이 가정의 중심이므로 여성이 재산을 물려받게 된다. 명목상으로는 공동소유지만 아버지는 아예 마을 내에 살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어머니에게 재산이 간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러한 이유로 모쒀족에는 ‘아버지’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대학교 국학연구원 역사와공간연구소의 한성훈 연구교수(국학연구원·역사/정치사회학)는 “모쒀족의 아이들은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노래조차 없다”며 “이들은 ‘안방’을 ‘모(母)실’ 이라고 부르는데 이를 통해 어머니가 가정의 중심임을 알 수 있다”고 전했다.

모쒀족의 모계사회적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은 독특한 혼인 방식이다. 모쒀족은 일반적인 혼인제도 대신 ‘저우혼’이라는 풍습이 있다. 음력설에 열리는 전통 축제인 ‘여신 축제’에서 남성들은 여성 앞에서 공개적으로 노래하며 구혼을 한다. 모쒀족의 여성들은 자신의 마음에 드는 남성을 택해 자유롭게 잠자리를 갖는다. 이를 저우혼이라고 하며 모쒀족 여성들은 평생 2~3회 정도의 저우혼을 한다고 알려졌다.

일반적으로 부계사회의 여성들은 결혼제도를 통해 가정에 헌신해야 하는 경우가 많을 뿐만 아니라,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영위하지 못할 경우 받는 사회적 시선이 따갑다. 그러나 모쒀족은 여성들에게 어떤 남성을 선택할지의 권리를 부여할 뿐만 아니라 그 관계가 잘 성사되지 않더라도 아무런 불이익이 없어 여성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바흐오펜의 ‘모권’이란 무엇인가

 

 모계사회와 모권제 사회는 비슷한 부분이 많아 혼동하기 쉽다. 모계 사회는 모쒀족과 같이 재산의 상속이 어머니에게 이어지는 사회를 일컫는다. 모권제 사회는 모계사회에 기반을 둔 개념이지만 다른 점이 있다. 한성훈 연구교수에 따르면 모권제 사회는 가부장제의 반대 개념으로 가문과 혈통 뿐 만 아니라 국가까지 여성이 통치하는 사회를 의미한다. 여성이 정치적 지도력과 도덕적 권위를 가지고 사회를 지휘하는 것을 말한다. 모쒀족의 경우 재산 상속 또는 혈통의 계승이 여성 위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모계사회지만 지방자치 형태로 나아가 정치적 및 사회적 권력을 여성이 가지지 않아 모권제 사회는 아니다. 그러나 여성이 상속의 지휘권을 쥐고 있으면 공동체 사회 내에서 사회적·정치적 권력 또한 따라올 가능성이 높아 두 개념은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인류 역사상 모권제 사회는 존재한 적이 있는 것일까?

인류학자 요한 야곱 바흐오펜은 1861년에 『모권 (Das Mutterrecht)』을 발간했다. 바흐오펜은 부권제가 도래한지 얼마 않았으며 그 이전에 모권제가 존재했다고 주장했다. 바흐오펜의 주장에 따르면 모권제는 ‘모성의 원형’에 기반을 두어 형성된다. 어머니는 아이에게 ‘박애 정신’을 갖고 조건 없는 사랑을 한다. 이 점에서 인류의 문명은 사랑에 기반을 둔 모권제 사회 형태로 시작된다고 봤다.

그러나 바흐오펜에 따르면 이 모권제 사회에는 허점이 있었다. 사회 체계가 사랑을 기반으로 하다 보니 사회가 이성적으로 진보하기 어려워진다는 논리다. 바흐오펜은 이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인류 사회가 모권제에서 부권제로 진화했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무조건적 박애정신에 얽매이지 않고,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것이다.

바흐오펜은 인류가 모성애를 기반으로 한 모권제로 시작했음을 주장했다. 또한 이성에 토대를 둔 부권제로 나아가는 것을 진화라고 보았다. 그러나 바흐오펜의 주장의 방점이 ‘부권제가 옳다’에 찍혀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부권제 이전에 원시 사회에 모권제가 존재했으며, 실제로 모권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이를 부권과 결합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권과 부권이 조화롭게 종합된 사회가 우리가 나아가야 할 궁극적 사회임을 역설했다.

 

모성에는 정의와 합리성으로,
아버지의 권위주의는 관용과 평등으로..

 

바흐오펜은 남성 지배적 사회가 시작되기 이전에 모권제 사회가 존재했음을 주장했다. 그러나 한성훈 연구교수는 “사실 이런 이론은 현재 인류학계에서는 평가 절하되고 있다”고 했다. 원시·고대사회에서 여성 우상의 성격을 찾고자 시도했으나 개념적·역사적·현실적으로 설득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여성은 박애정신에 기반하고, 남성은 이성적이라는 젠더 편견의 문제도 있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흐오펜의 이론과 모쒀족의 모계사회의 모습을 통해 모권이라는 것이 어떤 의의를 지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모권제 사회와 모계사회는 부권제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여성이 중심이 된 시기가 있었음을 알려준다. 비록 바흐오펜의 고대 사회 모권제와 관련된 이론이 평가절하 되고 있지만 여성이 중심이 된 시기가 있었다고 말한 것은 반박할 여지가 없다. 한성훈 연구교수는 “세계 대부분의 사회 체제가 가부장제로 구조화돼 모계사회를 쉽게 찾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라며 “모권제나 모계사회가 의미 있는 이유는 여성 중심의 사회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훨씬 안정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바흐오펜의 모권제 사회에 관한 이론은 부권제 사회에 모성의 장점을 융합시키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정신분석가이자 사회철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바흐오펜의 모권의 의의를 설명하는 그의 저서 『여성과 남성은 왜 서로 투쟁하는가』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부권 원리와 모권 원리가 합을 이루면 각각 서로 다른 한쪽에 색깔을 덧입힌다. 모성에는 정의와 합리성으로, 아버지의 권위주의는 관용과 평등으로...’

즉, 에리히 프롬은 바흐오펜이 주장한 ‘모권제 사회’는 부권제 사회와 더불어 그 장단점이 존재하기에 바흐오펜의 이론을 토대로 해 이 둘의 융합을 궁극적으로 이루어 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가부장적 사회를 지속해 왔다. 여성 권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여성들이 목소리를 높이고자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혐오의 말들이 굉장히 민감하게 다가오는 요즘, 우리는 현재 존속하는 모쒀족의 모계사회와 바흐오펜의 모권에 대해 생각해보고, 이와 같은 사회 체계의 모습이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는지 한 번 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연세춘추
chunchu@yonsei.ac.kr
<자료사진 EBS 『다큐프라임』  중
「인류, 결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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