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 외국인이 인터뷰에서 ‘한국인의 삶이 각박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했다. 그는 “내 친구는 30살에는 꼭 결혼할 것이라고 하는데 정작 본인은 29살의 싱글남이었다”며 “어떻게 현재 사랑하는 사람도 곁에 없으면서 1년 뒤에 결혼을 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국인들에게는 나이에 맞게 주어지는 사회적 숙제가 있는 것 같다”고 “이를테면 여자는 24~26세, 남자는 26~28세에 취업을, 이어 여자는 28~30세, 남자는 30~32세 결혼 그리고 출산과 육아 등등”. 파란 눈의 외국인 입장에서 보아도 우리사회의 모습은 여전히 각박하고 피곤하다. 이렇듯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암묵적이고도 엄격한 ‘시기적 틀’ 속에 끼워 맞춘 삶을 살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나는 이러한 ‘시기적 틀’에 내 삶을 맞추기에는 이미 많이 늦어버렸다. 그래서 가끔은 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데 드는 ‘노력’보다 ‘주위 시선’들로 인해 불편할 때가 있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이러한 시선들이 나를 ‘이단아’ 취급하여 이 사회에서 배척하고 있다 생각하면 두려움도 느낀다. 특히 ‘여자’이기에 감당해야 하는 가중치(취업·결혼·출산)는 이루다 말 할 수 없다. 그래봤자 고작 2-3년 늦은 것뿐인데, 이 사회에서 뒤쳐진 지난 나의 시간들에 허용되는 자비란 없다. 자비를 구하는 것조차 ‘사치’라 여겨지며 ‘수치’를 느끼도록 강요받는 사회 속에 나는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가 행복하고 내 삶에 만족하는 이유는 다소 늦었지만 분명한 목표가 생겼고 이를 향해 조금씩 걸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 어차피 늦어졌기에, 나이공식에 대한 ‘부담’과 주위로부터의 ‘기대’가 덜어진 데에 오히려 감사함을 느낄 때도 있다. 빠름·일등·최고만을 추구하는 이 사회에서 기죽지 말고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 아닌 ‘자기 자신의 만족’에서 내 행복을 찾아야만 하는 것이 앞으로 늦어진 내 삶을 영위해나가는데 가장 큰 숙제인 것 같다.

지난 2014년 여름, 멕시코의 조그만 원주민 마을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나에게는 커다란 꿈이 생겼다. 바로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어서 어딘가에서 굶주리고 있을 아동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것이다. 이후 활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 대학생활 동안 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뒤늦게 학보사에 들어 온 이유다. 내심 글을 쓰고 싶었지만 사진기자가 되었다. 3학기 임기만 마치고 나가고 싶었지만 우리신문사 역사상 유례없는 ‘1년 부장’이라는 직책을 떠안게 되었다. 졸업과 취업을 생각하면 조바심이 나서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지만, 오늘도 어김없이 미우관 책상을 지키고 있다.

「별이 빛나는 밤」, 「해바라기」 등 오늘날 많은 이들이 열광하는 수작을 남긴,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는 서른 살 때부터 미술을 시작했다. 『노인과 바다』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20세기 대표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는 청년시절 지방신문의 기자와 제1차 세계대전시절 의용군 생활을 거치며 훗날 자기 작품세계의 기틀을 잡았다. 언젠가 나도 이들처럼 지금의 ‘내 늦음’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그때 즈음에는 이러한 느림과 차이를 수용할 수 있는 여유로운 우리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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