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강남에서 발생한 한 살인사건이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한 노래방의 남녀공용화장실에서 평소 여성들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던 30대 남성이 준비해둔 칼로 일면식도 없는 20대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했다. 사건 이후 이례적인 수준의 추모 물결이 이어져 사건현장 주변 지하철역엔 그녀의 이유없는 죽음을 애도하는 시민들의 발길과 함께 형형색색의 쪽지가 건물 주변을 도배하고 밤에는 촛불들이 환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언론 매체는 성적 약자이기에 죽임을 당해야했던 여성의 억울함과 살인을 저지른 남성의 광기어린 야만성을 연일 보도하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이번 사건을 두고 여성혐오 범죄라며 남성을 싸잡아 비난하는 여성들도 있고, 모든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한다며 반박하는 남성들도 적지 않다. 추모현장에선 남성과 여성이 무리를 지어 상대방이 쓴 쪽지의 내용을 두고 옥신각신하는 모습도 연출되기도 한다. 장기화된 경기불황 속에 과거엔 흔치않던 엽기적인 살인사건이 최근 남녀노소 그 대상을 가리지 않고 발생하고 토막살인조차 귀에 익숙해진 요즘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할 때 이번 강남여성 살인사건이 전하는 사회적 파장은 색다른 면이 분명 있다.

이 사건이 불러일으킨 논란은 젊은 여성이 냉혈의 살인마에게 목숨을 잃은데 따른 인지상정 수준에서 표출되는 억울함과 슬픔, 그리고 분노 등의 지극히 인간적 감정에만 집중돼 있지는 않다. 오히려 집단적으로 표출되고 있는 분열적 정서들은 심화되는 양극화, 청년실업, 출산저하, 경기불황 등의 빛바랜 현실로 인해, 마치 화려한 강남 속에 기이하게 존재하는 남녀공용화장실의 초라한 공간이 표상하듯,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유례없는 치열한 경쟁 속에 내몰린 상황에서 여성혐오의 문제가 사회적 분열의 형태로 촉발된 데에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사실 이번 사건은 경찰수사의 추이에 따라 애초엔 불특정다수를 향한 이른바 묻지마살인으로 알려졌다가, 곧이어 약한 여성을 골라 계획적으로 저지른 여성혐오범죄로 번졌으며, 급기야 피의자 남성의 병력이 공개된 이후엔 정신분열증 환자의 광기로도 이해되고 있다. 관점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번 사건이 이 세 가지 경우 모두 해당될 수 있기에 살인자 개인의 범행동기에 초점을 맞추어 사건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진행 중인 논란의 핵심에서 벗어난다.

이번 사건의 분열적 담론 기저에는 현실의 개선과 극복을 견인하는 젊은이의 열정과 패기를 대신해 3포세대를 넘어 내집마련과 인간관계까지 포기한 5포세대, 심지어 꿈과 희망마저 놓아버린 7포세대에 이른 2030세대의 분노가 자리 잡고 있다. 한겨레신문에 실린 서천석 마음연구소 소장의 말대로, 이 사건이 여성을 혐오하는 정신분열적 남성의 범죄이지만 그 동기 자체는 여성혐오라는 사회적 맥락을 갖고 있고, 결국 ‘정신병적 증상은 사회적 맥락을 반영’한다. 문제는 7포세대의 현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면 이번의 광기어린 혐오범죄가 앞으론 여성만을 대상으로 하지는 않을 가능성이 많다는 점이다. ‘헬조선’의 우리사회에 확산되고 있는 배타적 혐오문화가 어찌 남녀만의 경우이겠는가!

이번 사건을 둘러싼 사회적 파장은 ‘일베’나 ‘메갈’ 등으로 표상되는 불신과 분노에 기댄 배타적 혐오문화의 증후적 현상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현대 사회의 모습이 왜 이토록 잔인한가에 대해 물음을 던지며 젠더의 관점에서 그 해답을 찾고자 했던 리안 아이슬러의 명저 『성배와 칼』을 잠시 언급해보고자 한다. 아이슬러는 역사적으로 선사시대까지 존재하지 않던 전쟁이 그 이후 도래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이를 평화, 공존, 여성을 상징하는 성배의 문화가 폭력, 전쟁, 남성으로 상징되는 칼의 문화에 지배된 것으로 설명한다. 그녀가 인류 역사의 전쟁과 평화의 시기를 단순하게 이분법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로 치환해버리는 것은 아니다. 아이슬러는 다양한 문화 및 종교적 사례를 통해 남성중심의 지배사회가 가부장적 기득권의 획득과 유지를 위해 여성의 이미지를 조작하고 왜곡하는 과정을 추적하면서 칼의 전쟁문화가 어떻게 조직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성배 문화를 억압하고 배제해 왔는지에 주목한다. 이를 통해 남녀의 차별적 위계질서는 사회화 과정으로 정당화되고 생물학적 차이만큼이나 자연스럽게 인류 문명에 각인돼 왔다.

배타적 혐오문화로 인한 이번 사건은 수천 년 간 지속돼 온 칼의 문화가 우리사회에서 또 하나의 칼부림으로 재현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오래 전 상실된 성배의 문화를 온전히 되살리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야기한 파장은 칼의 문화의 지배적 위치가 항상 굳건하지만은 않다는 방증이라고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인간 사회의 수준은 그 사회가 여성을 대하는 태도에 달려있다고 언급한 옛 사회주의 혁명가 트로츠키의 명언을 상기해 봄직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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