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활협동조합 상근이사 이철수

어김없이 5월이 되면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이 찾아온다. 지난 25년간 삶에 대한 근본을 가르쳐 주시고 지난해 숙환으로 돌아가신 검도 스승 이호암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교직원검도부가 창설된 1992년, 내가 교직원 검도부에서 검도에 처음 입문하고 나서이다. 당시에는 검도도장이 없어서 체육관에서 농구부의 운동이 끝나면 검도부가 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1주일에 한 번 키가 자그마하신 분이 맨 우측 사범석에서 호구를 쓴 모든 학생들을 상대로 대련을 하신다. 갑자기 대련하던 제자들의 몸놀림이 빨라지고 사범님의 호령이 떨어진다. 가운데 서서 빠른 몸놀림으로 상대방의 죽도를 막아내고 피하신다. 그것도 반 발짝만 살짝 움직여 상대방의 죽도를 빗나가게 막으시면서 허리, 머리, 그리고 손목을 자유롭게 치신다. 처음 본 그분의 검도하는 모습은 거의 검의 신을 본 느낌이다. 그분은 대한검도회 공인 8단 범사 이호암 선생님이시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하셔서 1957년에 졸업하셨으며 1975년 3월 연세검도부를 창설하여 돌아가실 때까지 지난 40년간 무보수로 후배들에게 열정과 사랑으로 검도를 지도하신 분이다. 한국검도를 선도하신 현역 최고의 실력자이시자 전설이라 말할 수 있다. 그분은 한국을 넘어 전 일본검도연맹과 국제검도연맹에서 검도지도자로서 뿐만 아니라 국제심판으로서도 명성이 높으신 분이지만, 여기서는 교육자로서 이호암 선생님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연세대학교 검도부에서 이호암 선생님은 검도장에서는 참으로 호랑이와 같이 무서운 분이셨다. 열심히 검도수련을 하지 않는 모습과 검도인으로서의 나태함과 당당하지 못한 행동을 보거나 듣게 되면 불 같은 호통이 이어진다. 검도자세가 흐트러지고 기합이 작으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호된 꾸중을 듣게 된다. 온 체육관을 울리고 상대를 제압하는 “머리~잇” 하는 그분의 우렁찬 기합소리는 지금도 생생하다.

검도인으로서 그분이 강조하는 삶은 겸검위락(兼劍爲樂)이다. 즉, “검(劍)과 함께 하여 즐거움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검도수련을 잘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의 본분을 잘 지켜야만 검도수련을 통해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검도부 학생들은 첫째로 공부를 열심히 하여야 하고, 교수와 직원은 그 본분에 충실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셨다. 또한 연세대학교 검도부 출신들은 절대로 도장을 운영하지 말라고 당부하셨고 강조하셨다. 지방자치단체의 검도교실에서 사범을 하는 것조차도 원하지 않으셨다. 이는 검도로 업(業)을 하는 자리를 아예 넘보지 말라는 것이다. 졸업생 중에 어디서 검도사범을 한다고 하면 실망하고 화를 내시면서 자신의 전공분야와 본업에 충실하기를 원하셨다. 좀 심하다 싶은 정도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선생님의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칼을 쓰는 사람들의 자세는 시합에서는 최선을 다해 이기려고 치열하게 싸워야 하지만 자기생활에 대해서도 열정과 절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어느덧 나를 비롯하여 많은 분들의 검도수련 목적도 겸검위락이 되었다. 그분의 지도하에 검도제자 문헌정보학과 문성빈 교수(7단)를 비롯하여 많은 고단자 교수님들과 박사들이 배출된 것도 그분의 뜻이 헤아려진 증거라 생각한다. 매년 3월이면 많은 신입생들이 검도에 입문하지만 본격적인 검도수련을 위해 호구를 쓰게 되는 2학기가 되면 몇 명 남지 않게 된다. 그러나 그 남은 친구들은 열정과 헌신으로 검도부를 이끌어 간다. 지금 이호암 선생님은 안 계시지만 지도교수를 지내시고 정년하신 물리학과 박홍이 명예교수님(5단)과 현재 지도교수이며 지도사범인 문성빈 교수님이 연세검도를 이끌어가고 있다. 교수와 직원으로 구성된 교직원검우회도 1992년에 창설되어 40대나 50대에 늦게 시작하였지만 현재 검도 4단 이상을 취득한 교수 및 직원분들이 10여명에 이르는 것도 그분의 열정과 검도사랑에 부응하여 열심히 수련한 결과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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