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세계최고 프로바둑기사 이세돌 9단을 꺾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이창호 9단을 모티브로 한 ‘택이’가 나왔을 때도 바둑 자체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이렇게까지 크진 않았다. 바둑을 그만둔 지 오래된 나로서는 요즘 ‘불계승’, ‘패착’과 같은 바둑용어들이 인기검색어로 등장하는 것을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한편 사람들이 승부에 집착하는 모습이 너무 아쉽기도 하다. 바둑엔 승부 그 너머의 것이 있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에서 주목할 부분을 부족하나마 소개해보려 한다.

가로세로 19줄 위의 고작 한 점이지만, 바둑의 착수 하나하나는 참으로 묘하다. 마치 대화를 하듯, 상대의 의중을 묻기도 하고 때론 윽박지르기도 한다. 서로 돌을 주고받으며 형세를 키워나갈 땐 흡사 같이 한 폭의 그림을 그리는 것과도 같다. 승부의 세계로 들어갔다가도, 경기가 끝나면 서로 악수를 나누고 어느 수가 최선이었을지 같이 복기한다. 이세돌을 보며 가장 안쓰러웠던 점은 경기가 끝난 후 혼자 괴로워하며 복기를 하는 모습이었다. 알파고는 아무 말이 없고 알파고의 수를 대신 두는 아자 황은 야속하기까지 하다. 바둑은 흔히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하는데, 이세돌은 말 그대로 홀로 바둑을 둔 셈이었고 어쩌면 기나긴 대국시간 동안 그가 그토록 괴로워한 이유는 교감의 결여 때문일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겼다’는 결과에 사로잡혔지만 사실 알파고의 승리는 어느 정도 예측됐다. 바둑은 체스보다는 경우의 수가 많지만 어쨌든 유한한 경우의 수로 이뤄져있고, 한정된 시간 속에 두기 때문이다. 내겐 결과보단 오히려 그 과정이 더 충격적이었다. 알파고는 자신이 이겼다고 판단하면 얼마나 큰 차이로 이기느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 때문에 크고 작은 실수가 나와도 승부에 영향이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알파고만의 ‘기풍’은 상대로 하여금 맥이 빠지게 한다. 흡사 상대의 기량에 맞게 놀아주는 느낌마저 든다. 또한 알파고는 ‘뒷맛’이 남거나 ‘패싸움’이 생길만한 부분을 미리 차단해버린다. 경기에 영향을 줄 복잡한 요소들을 뿌리뽑아버리는 것이다. 실제로 세 번째 대국부터 이세돌이 느낀 심리적 압박감이 굉장히 컸다고 한다. 달걀로 바위를 치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바위를 친 달걀은 사실 이세돌이 평생을 바쳐 키워온 것이다. 그가 느꼈을 좌절감과 착잡함은 스크린 너머로 절절히 다가왔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바둑 유망주들의 마음도 참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실의에 빠져야 할 부분은 바로 바둑으로 대표되는 인간 고유의 가치가 결과중심주의에 묻혔다는 것이다. 경기가 끝나고 악수 한번 나누지 못하는 알파고는 과연 바둑을 둔 것일까. 바위와 달리 달걀엔 온기가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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