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흘린 땀방울 뒤에 가려진 어두운 단면

올해는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하계올림픽의 해다. 2016 브라질 리우올림픽은 어느덧 140여 일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이맘때쯤이면 국내 언론의 눈과 귀는 한 곳으로 향한다. 바로 태릉선수촌이다. 방송과 신문들은 선수들이 흘리는 굵은 땀방울을 보여주며 선전을 기원한다. 선수들은 태극마크의 무게감에 걸맞게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라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겠다고 다짐한다.

태릉선수촌은 곧 우리나라 체육의 대명사다. 지난 1966년, 박정희 정권의 주도로 설립된 태릉선수촌은 지금까지도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또한, 태릉선수촌은 유소년 시절부터 치열한 경쟁을 통해 국내에서 정상의 자리에 다가선 소수의 선수만이 들어갈 수 있다. 태릉선수촌은 우리나라 체육의 ‘국가 주도적 성격’과 ‘엘리트주의’를 여실히 보여준다.

‘엘리트체육’은 소수의 선수가 중·고등학교 과정에서 전문 지도자로부터 집중적인 훈련을 받는 전문적인 체육 시스템을 일컫는다. 우리나라 엘리트체육의 태동기는 1960년대로 볼 수 있다. 박정희 정권은 대외적으로는 남북대결 구도에서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하고, 대내적으로는 국민의 일체감을 형성해 국가주의를 고양하기 위해서 엘리트체육 정책을 제도화했다. 그 일환으로 국민체육진흥법이 제정됐으며 정부가 선수와 전문 지도자 육성을 주도적으로 이끌게 됐다. 이러한 흐름은 1970년대에도 계속 이어져 지난 1972년에는 「교육법시행령」 대통령령 제6377호를 통해 체육특기자 제도가 신설된다. 중·고등학교의 우수한 선수들이 학업을 신경 쓰지 않고도 상급학교로 진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980년대, 12·12쿠데타로 정통성이 결여된 채 집권한 전두환 정권 아래에서 엘리트체육은 더욱 강화됐다. 전두환 정권은 ‘체육입국(體育立國)’이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지난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하계올림픽을 유치한다. 전두환 정권은 이 두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정권의 인기를 높이기 위해 더욱 엘리트체육에 집착하고 생활체육은 도외시하게 된다.

이러한 정부의 엘리트체육 중심 기조는 노태우 정부를 지나 김영삼 정부, 김대중 정부에서도 유지된다. 일례로 김대중 정부 말기인 지난 2002년에 우리나라의 체육예산 중 엘리트체육 관련 예산이 28.2%인 반면 생활체육 관련 예산은 8.9%에 불과했다.


 학업,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우리나라의 체육은 엘리트체육과 함께 성장해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가장 먼저 지적되는 부분은 바로 학업 문제다. 대부분의 엘리트 선수들은 합숙 훈련, 대회 출전 등을 이유로 정규 학업 과정에서 제외된다. 엄연히 학생인 엘리트 선수들에게 학습권이 보장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합숙 훈련 역시 아침 운동부터 시작해 저녁 운동, 이후 개인 운동으로 이어지는 집중 시스템이다. 이 때문에 많은 엘리트 선수들이 학업 부진의 문제를 겪고 있다. 엘리트체육으로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의 수가 절대 소수임을 감안하면 이는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지난 2015년 우수한 성적으로 연세체육회에서 ‘학업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우리대학교 농구부 김진용(체교·14,PF·13)선수는 “대부분의 선수들이 공부의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해서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멀리하게 되는 것 같다”며 “하지만 현실적으로 엘리트 선수들의 반 이상이 사회에서 프로선수 이외의 삶을 살아가게 되기 때문에 공부의 필요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엘리트체육 시스템에서는 소수의 선수만이 성공할 수 있기 때문에 운동에만 더욱 집중하게 된다. 운동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그것으로 성공하기 위해 짧아도 5~6년씩을 투자해온 사람들이다. 그렇다보니 ‘내 길은 운동뿐’이라는 생각에 학업을 비롯한 다른 일들에는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학교생활에 필수적인 정보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모 대학의 체육교육과 소속 엘리트 선수는 교원자격증 조건에 일정 학점이 요구된다는 것을 몰라 교직을 포기한 경우가 있다고 한다. 우리대학교 럭비부 선수 출신인 김병곤(체육및여가교육·석사1학기)씨는 “엘리트체육을 하면서 몸으로 더 배우고 성장했지만 펜을 놓게 된 게 가장 후회된다“며 ”대학원에 와서도 수업을 듣다 보면 열등감 같은 것이 느껴질 때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서는 엘리트 선수들의 학습권을 보장해주기 위해 중·고등학교 선수들의 경기가 주말리그로 전환된 상태다. 그러나 여전히 쌍용기, 대통령기, 협회장기와 같은 단기 토너먼트 대회는 평일에 치러져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KUSF)에서 대학 선수들이 평균 학점 2.0점 이상을 받지 못하면 대학리그에 출전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고려대 박선우(체교·15)씨는 “엘리트체육시스템을 초·중등학교부터 개선해야 할 것 같다”며 “조금이라도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고, 상급학교에 진학하고 출전할 수 있게 해야 초반엔 삐걱거리더라도 길게 보면 더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운동, 그 이후의 삶


더불어 엘리트 선수들은 엘리트체육을 그만둔 이후 더 큰 고민과 어려움에 빠지기도 한다. 실제 엘리트체육으로 빛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절대 소수에 불과한 만큼 많은 중도하차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들은 주로 ▲치명적인 부상 ▲현실적인 이유 ▲지도부 선에서의 제명 때문에 엘리트체육을 그만둔다.

치명적인 부상은 많은 엘리트 선수들을 울리는 가장 큰 요소다. 심각한 수준의 부상은 선수 생명에 크게 위협을 가하고, 더한 경우는 운동을 그만둬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김병곤씨는 “특히 럭비는 크게 다치는 일이 많은 편이라 심각한 부상을 입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며 “얼마 전에 디스크 수술을 하기도 했고 어깨가 원래 좋지 않은 편이라 몸 상태가 많이 걱정됐다”고 말했다.

한편, 운동이 뜻대로 되지 않아 그만두는 사람들도 있다. 엘리트체육을 그만두고 퍼스널 트레이너로 일하고 있는 이정희(22)씨는 “처음에 운동을 그만뒀을 때는 다른 그만 둔 친구들이 그랬듯이 정말 막막해서 방황을 많이 했다”며 “원래부터 몸 만드는 걸 좋아했고 적성을 살려 일을 할 수 있게 돼서 다행이지만 내가 아는 분야도 아니고 공부도 해야 하니 처음엔 무척 힘들었다”고 말했다.

엘리트체육을 타의에 의해 그만두게 된 경우도 있다.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거나 프로에 진출하지 못한 경우와 지도부에 의해서 배제되는 경우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선수 출신 일반인 ㄱ씨(25)는 “운동을 계속 하고 싶었지만 불러주는 곳이 없어 지금은 그냥 백수”라며 “평생 운동만 하고 살았는데 이제 와서 딴 일을 하려니 너무 막막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중도에 엘리트체육을 관둔 선수들에 대한 지원은 전무한 실정이다.
 

선생님, 운동이 하고 싶어요


엘리트체육은 철저히 성과를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이다. 우리나라의 체육 정책과 예산은 엘리트체육에 편향됐고 일선 교육현장에서의 생활체육은 부실해졌다. 그 결과 일반 학생들에게 체육은 그저 쓸모없는 시간이고, ‘운동부 애들만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에 고등학생 이여진(19)양은 “체육시간이 되면 친구들이 이거 왜 하냐고 불평하기도 했다”며 “올해 고3이 되면서는 체육시간은 모두 자습시간이 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선우씨는 “입시제도 자체에서 예체능을 아예 배제해버리니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 같다”며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P/NP 방식으로라도 입시에 관련시킨다면 입지 자체는 조금이라도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어 그는 “현 제도 하에서는 공부와 수업을 버리는 엘리트 선수와 일주일에 한두 번 있는 체육시간조차 자습으로 바뀌는 일반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 중 어느 한 쪽도 비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에는 생활체육 육성을 통해 훌륭한 엘리트 선수들을 키워내고 있다. 일본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운동부에 참여하는 중·고등학교 클럽팀 활성화와 같은 생활체육 육성 정책을 통해 스포츠 강국의 반열에 올랐다. 이처럼 엘리트체육 시스템을 채택하지 않아도 훌륭한 선수를 많이 배출하는 일본의 모습에서 엘리트체육 시스템을 대체할 생활체육의 바람직한 발전 방향을 엿볼 수 있다.


체육계도 변화하나


다행히 최근 체육계는 기존의 폐쇄적인 엘리트체육 일변도에서 벗어나 생활체육을 통합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올해 체육계의 가장 중요한 이슈 역시  ‘통합체육회’ 출범이다. 지난 1991년 국민생활체육회의 독립으로 둘로 나뉘었던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가 25년 만에 다시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다. 이는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의 힘을 합쳐 새로운 선진국형 체육 모델로 도약하려는 취지다. 지난 7일, 통합체육회를 추진하는 ‘통합준비위원회’가 발기인 대회를 가졌다. 통합준비위원회는 ‘그동안 이원화됐던 체육시스템으로 인해 단절됐던 전문체육-생활체육의 벽을 허물어 우리나라가 스포츠로 국민이 행복해지고 사회가 건강해지는 스포츠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 큰 이정표가 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고 ‘새로운 통합체육회는 앞으로 체육운동을 범국민화해 학교체육 및 생활체육 진흥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국민의 건강과 체력증진, 여가선용 및 복지향상에 이바지하고, 우수한 경기자를 양성해 국위선양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대학교도 이러한 탈(脫)엘리트체육 기조에 발 맞추고 있지만 있지만 아직 미흡한 점도 있다. 우리대학교는 매해 엘리트 선수들의 정기 연고전을 개최해 왔으며, 많은 프로선수들을 배출했다. 하지만 프로스포츠의 영향력이 계속 커지는 상황에서 대학교 엘리트체육의 영향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엘리트체육 중심의 우리대학교 정책이 지속가능하기 어려운 환경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대학교의 정책적 관심과 예산은 생활체육이 아닌 엘리트체육에 편중돼 있다. 매해 열리는 연고전에서도 일반학생들 간의 경기인 동아리 연고전이 열리지만, 참여인원도 제한적이고 학생 사회의 관심도 적다. 우리대학교 농구동아리 ‘공오친’에서 활동 중인 고정욱(철학·14)씨는 “생활체육 관련 활동을 하면서 학교 측으로부터 체계적인 지원을 받아본 적은 없다”며 “학내 생활체육에 대한 지원이 늘고, 더 많은 학생들이 연고전에 관중으로서가 아닌 선수로서 직접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스포츠는 굴곡진 한국 현대사에서 국민들을 위로해주는 벗이었다. 박찬호의 역투에 외환위기의 시름을 달랬고, 지난 2002년 월드컵으로 온 국민이 하나가 됐으며, 김연아의 몸짓에 환호했다. 하지만 엘리트체육의 강한 빛만큼이나 그림자도 짙었다. 엘리트체육의 승자독식게임에서 패배한 선수들은 소외됐고, 시민들도 ‘이기는 스포츠’에 매몰돼 ‘즐기는 스포츠’를 경험하지 못했다. 이제는 그 진한 그림자를 걷어내야 할 때다. 최근 우리나라 체육계에 불어오는 변화의 바람이 그 그림자를 걷어내고 한국 스포츠의 2막을 열 수 있길 기대해본다.

글 박은미 기자
eunmiya@yonsei.ac.kr
 김지성 기자
speedboy@yonsei.ac.kr
사진 정윤미 기자
joyme@yonsei.ac.kr
그림 안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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