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불어 닥친 대만여행바람을 타고 타오위안공항에 발을 내딛자마자 이른바 ‘중국 냄새’가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알싸한 고수 향과 텁텁한 먼지 냄새, 그리고 시큼한 식초 냄새. 상당히 특이한 풍취였다. 낯선 냄새를 재차 깊이 들이마시고 물밀 듯이 밀려드는 인파에 쓸려 입국 심사대 앞에 서고 나서야 비로소 실감이 났다. 아, 중국 땅을 밟았구나.엄밀히 말하면 대만은 중국 령(領)이 아니다. 1949년 중국공산당과의 내전에서 패한 국민당의 장제스 정권이 타이완 성(省)으로 옮겨오면서 중국과 구분되는 독자적 정치체제를 수립했다. 하지만 중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대만이 중국의 부속국가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1월 대만 국적의 아이돌 가수 쯔위와 관련해 벌어진 중국-대만 간 분쟁도 이와 관련된 것이다. 중국의 주장에 대항해 대만은 현재 독자적으로 다른 나라와 수교를 맺고 국제적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정권 수립 당시 정부의 주요 인사들은 대부분 대륙 출신이었다. 이들이 대만에서 입지를 다지는 과정에서 토착민들은 밀려나거나 그들의 사회에 융화됐다. 그 결과 중국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대만의 지배문화로 자리 잡게 됐다. 물론 중국 냄새 찾으려고 비싼 비행기 값을 치른 것은 아니었다. 남들 다 가는 타이페이 한번 가보자, 한 것도 아니다. 그저 일거리 투성이인 서울을 벗어나보자는 심산으로 계획한 일탈이었다. 일탈치고는 좀 비쌌지만, 이왕 벗어난 거 제대로 즐기고 와야 하지 않겠는가. 이번 여행의 목표는 자연스럽게 ‘현지인 따라하기’가 됐다.

#진짜 타이페이는 길거리 음식에 있다

 

아마도 타이페이 여행자들의 대다수는 길거리 음식을 기대하고 올 것이다. 명물 지파이(雞排, 닭튀김)부터 큐브 스테이크, 후쟈오빙(胡椒餅, 화덕만두)까지 매우 저렴한 가격에 독특한 간식들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간식들은 타이페이의 ‘작은 명동’ 시먼딩(西門町) 거리와 스린야시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 먹거리들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캔맥주 하나를 들고 움직이는 것은 어떨까. 기름진 맛의 지파이를 먹다보면 절로 맥주 생각이 들 것이다. 다행히 타이페이에는 편의점이 지천에 널려있다.
하지만 타이페이의 진가를 즐기고 싶다면 한산한 길거리 음식점을 찾아 러우빠오(肉包, 고기만두)와 우육면을 먹어보라. 타이페이는 유명 관광지답게 사방천지가 여행객이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거리를 오가고 상인들은 장사에 필요한 온갖 언어를 구사한다. 초면에 국적은 어찌 알았는지 다들 기자에게 한국어로 인사를 건넸다. 이곳에 처음 발을 내디뎠을 때의 그 이국적인 느낌은 온데간데없었다. 여행의 목적이야 다들 다르겠지만 힘들여 타지로 온 만큼 현지만의 느낌을 한껏 누리고 가야하지 않겠는가. 기자에게는 그 첫 출발이 용산사 옆 시장 귀퉁이의 한화 3,000원짜리 우육면이었다. 현지인들의 아침식사 단골메뉴인데다 관광객들이 잘 찾지 않는 식당이었기 때문이다. 손짓발짓만으로 음식을 주문한 뒤 맛보는 꼬들꼬들한 수제 면발과 그윽한 국물에서 진정한 타이페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육면이야 관광객들 사이에선 ‘만한대찬’ 컵라면이 가장 유명하지만, 갓 끓여 나온 우육면에 고추기름을 부어 먹는다면 컵라면 속 MSG쯤이야 가뿐히 뛰어 넘는 맛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다만 역한 냄새가 나는 취두부(는 신중히 생각하고 구매하기 바란다. 현지인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으로 우리나라로 치자면 홍어 요리인 셈이다.

 

▶▶용산사 옆 허름한 식당에서 파는 우육면

 

#타이페이가 그대로 묻어나는 필수 코스

 

101타워, 야시장 등 추천해주고 싶은 관광지는 끝도 없지만, 꼭 한곳을 꼽아야한다면 용산사를 추천하고 싶다. 이곳에서는 우리나라와는 확연히 다른 대만의 문화를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용산사는 타이페이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 ‘대만의 자금성’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매우 화려하다. 외부는 온갖 조각과 연등으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고 바깥뜰에는 인공폭포수가 기암괴석을 휘돌며 쏟아졌다. 고아함의 대명사인 우리나라 사찰과는 달리 시끌벅적하고 활기찼다. 애초에 평지에 지어진 것 자체가 그 성격이 다름을 확연히 보여주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신을 대하는 자세의 차이였다. 이곳에서는 격식이 필요하지 않다. 누구나 가져온 음식을 자유롭게 신을 위한 제단에 올릴 수 있다. 젤리, 초콜릿과 같은 디저트류는 물론이고 한 떨기 어린 죽순까지, 방문객들은 별다른 제약 없이 본인의 가방에서 음식을 꺼내 찬상에 가지런히 올려뒀다.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의식이라니, 진정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그들은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이렇듯 독특한 분위기 덕인지, 이곳에서는 방문객들을 위해 향과 점괘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으니 꼭 소원 하나 준비해가도록 하자.
용산사는 여행자 숙소가 몰려있는 타이페이중앙역과 멀지 않은 곳에 있다. 하지만 타이페이는 걸어 다녀야하는 곳이 많기 때문에 다양한 관광지를 다니다보면 자연스레 피로가 쌓이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마사지샵을 방문해보는 것은 어떨까. 대만의 마사지샵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좋은 품질의 마사지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현지인은 물론 관광객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반신반의하며 이곳에 들어선 기자도 능숙한 손길 한번 받고 나자 마사지 마니아로 등극했다.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다. 넘치는 관광객 탓인지 현지인들이 원래 마사지를 즐기는 탓인지 타이페이에는 유독 마사지샵이 많다. 번화가로 갈수록 그렇다. 밤 10시면 셔터를 내리는 여느 가게들과는 달리 대부분 밤늦게까지 영업하기 때문에 아무 때나 방문하기도 좋다. 편안한 여행을 중시하는 사람이라면 이모님의 발마사지 한번 받아보기를 권한다.

 

▶▶타이페이의 번화가 시먼딩을 장식한 조형물

 

#타이페이 외곽으로 떠나는 자유여행

 

보통 ‘예진지스’ 패키지라 해서 버스투어, 택시투어를 많이 떠난다. ‘예진지스’는 예류, 진과스, 지우펀 그리고 스펀을 잇는 여행코스의 약칭이다. 그러나 이 투어의 단점은 돈은 돈대로 들고 관광시간은 짧다는 것이다. 당신이 조금만 용기 있는 사람이라면 투어는 과감히 버리고 자유 관광을 떠나도록 하자. 실제로 예류지질공원 근처에는 관광객들을 태우기 위해 배회하는 택시들이 많다. 약 한 시간 거리인 진과스로 가는 데 기본요금이 한화 5만 3천 원이지만 대부분 흥정이 가능하다. 목적지가 같은 관광객끼리 합승한다면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이동할 수 있다.

▶▶진과스 금광 옆 산책로,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늘어선 홍등이 인상적이다.


코스 중 하나인 지우펀은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지다. 이곳은 홍등이 가득 메운 야경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투어상품은 해지기 전에 끝난다. 만약 영화 속 홍등거리의 야경을 오롯이 즐기고 싶다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하자. 의사소통에 대한 두려움은 잠시 접어둬도 좋다. 유명한 관광지니만큼 이곳의 상인들은 관광객들의 패턴에 매우 익숙하기 때문에 안내에 능하고 놀랍도록 상냥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타이페이 부근 지하철역에 기자를 내려준 버스기사는 길을 헤매지 않도록 무려 버스를 대기시키면서까지 찾아가는 길을 알려주기도 했다.

▶▶대만 방문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지우펀


‘예진지스’ 코스는 타이페이 방문객이라면 한번쯤 들르는 필수코스기 때문에 어딜 가나 인산인해를 이룬다. 특히 지우펀이 그렇다. 야시장을 겸하고 있는데다 비교적 좁은 골목들로 이뤄진 탓이다. 그곳에서 펑리수를 시식하러 다녔던 것은 즐거웠지만, 야경을 보기 위해 몇 십분을 사람들에 치였던 기억은그리 좋지만은 않다. 남는 것은 사진이다 싶어 엄청난 인파에 떠밀리며 촬영에만 집중했더니 정작 뇌리에 남는 것이 없었다. 야경은 전문 포토그래퍼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눈에 담는 데에 집중하는 것을 추천한다. 처마 끝 홍등에 서린 불빛의 환상은 어차피 눈이 아닌 그 어떤 카메라로도 담아낼 수 없다. 아름다운 풍경을 담고자 무리하지 말고 오로지 자기 자신을 예쁘게 담는 데에만 집중해 ‘인생샷’을 남겨보는 것은 어떨까.

▶▶지우펀의 야경명소, 좁은 계단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반면 바닷바람이 몰아치던 예류지질공원은 오히려 흥겨웠다. 작은 곶에 침식과 풍화 작용으로 만들어진 기암괴석들이 늘어선 모습이 마치 달의 풍경을 연상시킨다. 기자는 억센 바람에 머리칼이 휘날리는 것도 잊은 채 이 바위 저 바위를 넘고 능선을 바라보며 연신 감탄하느라 바빴다. 높은 파도가 층층이 색다른 기암절벽에 부딪혀 하얗게 부서져 내리는 것을 보는 것도 즐거웠다. 궂은 날씨 때문인지 특이한 절경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쩐지 그 공원을 돌아다니는 순간만큼은 그 어떠한 잡념도 버린 채 오롯이 풍광을 즐길 수 있었다.

 

▶▶기암괴석이 유명한 예류 지질 공원

타이페이의 매력은 가보지 않고서는 절대 예측할 수 없는 곳이라는 점에 있다. 기자는 기대했던 것보다 낙후된 도시라고 여겼던 반면 여행자 유승희(23)씨는 “생각보다 발전된 도시라 놀랐다”고 말했다. 게스트하우스의 휴게실에 모여 잡담을 나누던 여행자들 중 누구하나 타이페이가 자신의 상상했던 것과 꼭 맞았던 이가 없었다. 사실 이 도시는 한 나라의 수도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소박한 편이다. 서울의 절반 크기에 고작 2백만에 불과한 인구가 살고 있다. 아침이면 타이페이중앙역 앞 도로에는 색색의 자전거가 오가고 골목골목 자리한 잿빛 건물에서는 고소한 만두 냄새가 풍긴다. 한산하다면 한산한 도시지만 해가 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인파와 불빛들로 도시가 요란하다. 어느새 다들 이 도시에 녹아들어 너나할 것 없이 눈을 마주치고 말을 섞는다. 타이페이는 참 틈이 많은 도시였다.

글 ·사진 장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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