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국가자본주의와 문화의 관계

사회주의 국가에서 문화는 정치선전의 도구로 사용되며 국가와 불가분의 관계를 이룬다. 중국도 예외는 아니다. 많은 예술 작가들은 정치사와 맥을 같이하며 격동의 시기를 겪었다.

현재 중국은 국가가 정책을 통제하고 집행하되, 시장에 따라서 수요와 공급을 정하는 고유의 국가자본주의(state capitalism)를 표방하고 있다. 원래 자본주의의 반대말인 사회주의 계획경제는 국가의 계획(planning)에 따라 움직이는 체제이므로, 국가자본주의라는 용어는 그 자체로 모순적일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은 1979년 개혁개방 이후 가파른 경제성장을 이뤄냄으로써 이러한 변종적 제도도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국가자본주의는 중국의 예술 정책과 예술 시장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중국 정부는 경제나 정치 분야와 마찬가지로 예술 정책제반에 대해서 직접 설계한다. 구체적으로는 중앙정부의 문화부가 굵직한 그림을 그리고,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의 지방 소재 기관으로서 정책을 집행하는 것이다.

중앙정부는 문화 예술 방침, 정책․법규 연구, 설계 관련 사항 감독, 문화 사업 발전 전략 연구․계획을 담당한다. 아울러 문화 체제를 개혁하고, 국가의 대형 문화 행사를 개최하거나 성과를 관리하며 국가의 중요한 문화시설을 건설하거나 문화 시장을 검열하는 역할까지 한다.

지방정부는 문화 예술 부서나 문화국, 혹은 문화청을 두고 중앙정부의 지침을 실행한다. 산업 분야에 따라 중앙정부가 굵직한 지침만 제시하고 실제적 주도권은 지방정부가 갖는 상향식(bottom-up) 접근이 가능하기도 하지만 예술 시장 및 정책에 대해서는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 명령을 하달하는 시스템이다.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중국 미술과 관련된 제반 정책을 결정하는 핵심 조직은 중앙정부의 문화부 예술사(司) 미술처(處)이다.

중국 미술 시장 현황

중국 미술 시장은 2000년대 이후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지난 2013년, 600여 년 전 명나라 제3대 황제 영락제 시대(1402~1424)에 제작된 티베트 불화 <탕카>가 중국 미술품 중 최고가인 2억 7490만 위안(한화 약 487억 7천만 원)에 중국의 기업가에게 낙찰되었을 때 전 세계가 깜짝 놀랐다.
중국 기업가들은 앞다퉈 미술품 수집에 열을 올려서 해외 경매 시장에서 유명한 서양 작가 작품의 낙찰자로 소개되기도 한다. 이와 더불어 중국 작가들의 작품도 해마다 가격이 상승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 

▲ 지난 2014년 11월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4천5백만 달러(약 5백억 원)에 낙찰된 중국 명나라 시대 <탕카(괘불)>


이렇듯 중국 미술 경매 시장 성장의 원동력은 의심할 바 없이 초고속 경제성장의 덕택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성장과 더불어 미술품에 거액을 투자하는 거물급 구매자가 등장하고, 중산층이 늘어나면서 구매 수요가 늘어난 것이다. 그 결과 글로벌 아트 경매 시장에서 중국의 점유율은 2000년 이후 급성장하여 2013년 시장점유율 24%를 차지했다. 이는 세계 1위인 미국(38%)의 뒤를 잇는 수치다.

하지만 명실상부한 세계 2위 미술품 시장인 중국의 실상은 그 화려하고 거대한 인상과는 대조적인 면모를 보인다. 세계 시장의 주목을 받았던 중국 미술 시장은 2011년 정점을 찍으며 이후 조정기에 들어섰다. 중국에서는 이 시기를 ‘뉴노멀(new normal)기’라고 부르는데, 그동안 중국 미술 시장의 비정상적인 성장을 ‘정상적’ 성장으로 연착륙시키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반영한 표현이다. 실제로 2014년 중국 예술품 시장의 5대 경매업체(中國嘉德, 北京保利, 北京匡時, 홍콩소더비, 홍콩크리스티)의 거래액을 살펴보면 가장 호황기로 언급되는 2011년 춘계 경매액과 비교해 무려 46%가 급락했다. 또한 500만 위안 이상 고가 경매품 거래량도 전년 동기대비 16.1%가 감소했으며, 2011년 이후 엄청난 낙찰가로 중국 아트 경매 시장의 활황을 이끌었던 작가 ‘장다첸(張大千)’, ‘지바이스(齊白石)’의 작품가도 50% 하락했다.

급성장하던 중국의 미술 시장에 왜 제동이 걸렸을까? 이에 대한 원인은 세 가지로 해석한다. 2011년 이후 조정국면에 접어든 중국의 경제 성장이 첫 번째 이유다. 예전에는 미술 작품을 부에 대한 과시나 돈세탁 또는 투자 목적으로 구매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주가가 절반 이상 하락하는 등 증시의 거품이 빠지면서 미술 작품 경매 열기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단지 돈으로만 생각하는, 예술품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와 소양이 부족했던 탓이다.

이와는 반대로 중국 부호들이 미술 작품 수집에 눈을 뜨면서 국내가 아닌 해외로 시선이 옮겨져서 중국 미술 시장의 성장세가 주춤하다는 견해도 있다. 2014년 소더비통계에 따르면 중국 수집가들은 소더비 등의 경매를 통하여 서양 미술 작품 경매에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반면 2013년을 기준으로 중국 미술 작품 거래의 글로벌 시장 비중은 4%에 불과했다. 물론 정부가 중국 주요 예술 작품의 해외 반출을 금지하고 있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중국 미술 작품들이 전반적으로 해외 미술 작품 수집가의 구미를 끌지 못하거나 중국 미술 시장의 대형 경매업체가 내놓는 작품이 주로 서화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커지는 시장 규모만을 노리고 무분별하게 시장에 진출한 경매업체 간의 출혈경쟁이 원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중국 미술 시장의 거품이 꺼지고 있는 것이다.

 

국가자본주의와 중국 미술 시장 전망

중국은 국가가 사회 전반에 걸쳐 실질적으로 개입하는 국가자본주의 체제를 채택하고 있음을 앞서 언급했다. 예술 정책 제반이 경제성장과 동일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중국 미술 시장의 둔화 역시 국가의 의도와 무관할 수 없다. 중국 정부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경제 성장이지만, 중단기적 예술 정책은 얼마든지 수정될 수 있다는 기조를 오랫동안 피력해왔다.

중국의 미술 시장이 반드시 조정기를 거쳐야만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들어 설명할 수 있다. 먼저, 중국 경제 성장이 조정기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고성장의 거품을 걷어내면서 구조조정을 하는 등 중국 경제는 체질 개선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따라서 미술 시장 역시 경제 전반의 흐름과 맥을 같이 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이유는 이렇게 ‘체질 개선’의 연장선상에 있는 시진핑 정부의 강력한 반부패운동 때문이다. 사치품, 고가 양주와 더불어 미술 작품도 정부의 반부패운동 관련 주요 품목들이 되었다.

하지만 중국 미술 시장의 미래는 절대로 어둡다고 볼 수만은 없다. 미술 경매 시장만 보더라도 중국의 경제성장률이나 증시와 유사한 궤도를 그리고 있다. 즉, 중국 증시도 최고점에 다다른 후 폭락, 오랜 기간 조정기를 거친 후 반등 중이다. 이는 중국 경제가 고성장기가 아니라 중성장기로 진입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중국 경제는 개혁과 구조 조정을 통해 양적 성장이 아니라 질적인 발전을 이뤄내고 있다. 중국 미술 시장의 성장도 중국 정부의 문화재 관리와 보호를 예술 정책의 전면으로 내세우면서 시작된 만큼 현재는 하락세이나 증권 시장처럼 곧 반등이 예상된다. 특히 중산층, 온라인 비즈니스, 그리고 문화산업 정책이 장기적으로 반등을 견인할 것이다.

 

중국 미술 시장의 잠재력

중국 경제성장률이 둔화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7%대를 상회하고 있다. 《포브스》에 따르면 재산 1억 달러 이상의 중국 억만장자는 6만 4500명, 백만장자는 96만 명에 이르며 연간 소득수준 1만 달러 이상의 중산층도 5억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부호는 물론 부유한 중산층도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결국 중국 미술 시장 발전을 위한 답은 ‘중산층’에 있다. 소득 증가에 따라 중산층의 생활수준 자체가 전반적으로 높아지면서 이들이 미술 작품에 서서히 눈을 뜨고 있다. 2013년 중국 포털업체 소후닷컴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계소득 1만~10만 달러의 중산층 중 89%가 미술 작품을 구매할 의사가 있다고 답변했다. 특히 글로벌 경제 위기와 맞물려서 기존의 부동산 및 주식 시장은 더 이상 최고의 투자처가 되지 못하고 있고, 중국 은행도 금리를 인하하면서 중산층의 문화예술 분야 소비는 꾸준히 증가해왔다. 앞으로는 지금까지 주목됐던 고가 미술 작품 시장 대신 중저가 미술 작품 시장이 중산층을 중심으로 쾌속 성장할 전망이다. 5억이 넘는 중산층 인구는 중국 미술 시장의 엄청난 잠재력이다. 부유층만이 향유하는 상류 문화가 아니라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고 거래할 수 있는 일상적이고 보편화된 시장을 향하여 중국 미술 시장은 변하고 있다.

중국의 온라인 비즈니스 역시 중국 미술 시장의 거대한 잠재력을 뒷받침한다. 2014년 현재 중국 온라인 거래의 80%를 기업 간(B2B) 거래가 차지하고 있지만, 기업과 소비자 간(B2C) 거래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의 젊은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소셜커머스가 확산되고 있으며, 지방 도시의 고소득 중장년 남성 소비자를 중심으로 온라인 쇼핑을 하는 비율도 늘어나고 있다. 미술 작품을 온라인으로 거래하게 되면 작품을 직접 보고 느끼는 데 필요한 물리적 거리의 제약도 사라지며 접근 비용도 낮아질 것이다. 이에 중국 미술 시장은 엄청난 재도약을 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마지막으로 중국의 문화산업 정책도 미술 시장의 잠재력을 뒷받침한다. 중국 정부는 문화산업 정책에 대해서 2000년대부터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후, 2008년부터 정책을 다듬고 2012년 제12차 5개년 계획으로 발전 방향을 확정했다. 제조업을 기반으로 경제성장을 이룬 중국은 공해문제를 비롯해 임금 상승 등의 악조건이 걸림돌이 되자 문화산업을 통해 제조업의 비중을 줄이는 방향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추구해나가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정치적 선전 수단이었던 문화산업이 예술성을 바탕으로 한 상업적 수단으로 변모하는 중이다.

 

문화산업 정책은 중앙정부가 기본적인 정책 방향만 제시하고 지방정부들이 지역특수적인 정책을 건의하는 상향식 접근방법으로 실행되고 있다. 미술 작품의 경우 2008년까지는 게임이나 디지털콘텐츠 업종과 함께 문화산업으로 분류되었으나 2012년부터는 ‘문화재 보호 및 관리’라는 개별 카테고리로 독립함으로써 그 중요성이 부각되었다(國家十二五時期文化發展規劃要綱, 2012). 이로 인해 미술 시장을 포함한 문화산업에는 더욱 많은 국가적 지원이 몰릴 전망이다.

<자료사진 홍콩 크리스티 경매>

* 위 글은 지난 2015년 1월 현대자동차에서 출간한『예술 후원과 예술 마케팅』 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