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살아있는 역사, 김원기 전 국회의장을 만나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표현의 자유, 대의민주주의의 발전 등 민주화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살고 있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우리는 격동의 근현대사를 겪었고, 그 속에서 수많은 정치활동이 이뤄져왔다. 그 역사와 정치의 중심에 있던 사람이 있다. 동아일보 기자부터 시작해 국회의원 6선, 국회의장까지 역임한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살아있는 역사, 김원기 동문(정외·55)을 만나봤다.

나의 오랜 꿈, 정치
 
1937년 전라북도 정읍시에서 태어난 김 동문은 어린 시절 특별한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해방 후 제헌국회 때부터 그의 집안 전체가 국회의원 선거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김 동문은 “당시 정치를 꼭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진로를 생각한 것은 아니었고, 집안 전체의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레 정치에 대한 의욕을 가지고 살아왔던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김 동문이 정치인의 꿈을 키우게 된 것에는 할아버지의 영향력이 컸다. 할아버지는 어린 김 동문에게 항상 ‘너는 커서 장제스 같은 사람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렇게 항상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분위기 속에서 자란 그는 학창시절 소위 ‘행동파’였고, 김 동문의 이러한 성격은 자연스레 전교회장 등 학생정치로 이어지게 해주는 원동력이 됐다. 
김 동문이 국민학교 2학년이 되던 1945년 우리나라는 해방됐고, 학교에서는 급장 선거나 전교 회장 선거 등 학생사회에서의 정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김 동문은 학급을 대표하거나 전체 학생을 대표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전했다. 이후 김 동문은 전라도 각지에서 온 학생들이 모인 전주고등학교에 진학해, 학급 회장과 전교 회장을 역임했다. 김 동문은 학생들끼리 서로 잘 알지 못하는 환경 속에서 학생들을 대표하는 직책을 맡는 것은 이례적인 분위기였다고 설명했다. 김 동문은 “어릴 때부터 리더가 되고 싶은 열망이 커 자연스레 정치적 관심으로 이어졌고, 학급 회장이나 전교 회장을 하게 된 것도 이런 성향으로부터 나타난 것 같다”고 전했다. 이후 김 동문은 교내뿐 아니라 전라북도 전체 학생회를 조직하고, 도내 고등학교 전교 회장들의 모임을 구성해 학생들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기도 했다.
1950년대는 우리나라가 전후 상황을 극복하고 정부가 들어서는 과정에서 UN의 역할이 중요했던 때다. 이런 사회적인 흐름 속에서 자란 김 동문은 대학진학에 앞서 많은 고민을 했다. 당시 대부분 대학에 정치학과는 있었지만, 정치학과 외교학을 함께 공부할 수 있는 학과는 대한민국에서 우리대학교가 유일했다. 김 동문은 “그때는 정말 어렵고 힘들게 살던 시절이라 우리나라보다 부강한 나라로부터 원조물자를 받아서 기초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며 “그래서 외교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다른 사람보다 외교에 더 무게를 두고 공부해보고 싶어 우리대학교에 진학했다”고 전했다. 
 
기자의 길에서 정계 입문까지
 
김 동문은 학부 졸업 후 동아일보에 입사했다. 당시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학생들에게 주어진 입사시험의 기회가 언론사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집안에서도 반대가 많았다. 김 동문의 아버지가 면장을 하고 있었는데, 언론을 사칭하는 사람들이 찾아와 정보를 캐내거나 괜한 꼬투리 잡기가 횡행해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불신이 높았기 때문이다. 김 동문은 “사회를 좀 더 알고 싶어서 딱 2년만 기자생활을 하겠다고 약속하고, 부모님으로부터 기자를 하는 것을 승낙받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기자로서의 직업적 선택은 그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장장 17년의 기자생활 동안 김 동문은 ‘독립신문상’을 수상할 정도로 역량 있는 기자였다. 독립신문상을 받은 것은 김 동문의 북양어업취재 덕분이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원양어업이 막 시작해 해당 정보가 부족한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 동문에게 3개월간 북양어업 현장취재를 가게 될 기회가 주어졌다. 북태평양에 태풍이 기승을 부리는 9월에 어업을 나가 29명의 선원이 수장됐고 나머지 선원들은 다치하바 섬에 배를 겨우 대고 표류하게 됐다. 사면초가의 상황에서도 김 동문은 전신을 통해 실시간으로 기사를 송고했고, 그 기사들이 동아일보 1면을 매일 장식했다. 고립된 김 동문을 구하기 위해 신문사에서 비행기를 보내기도 했지만, 그는 끝까지 선원들 곁에 남아서 취재를 계속했다고 한다. 김 동문은 당시를 회상하며 “선원들이 먼저 돌아가도 된다고 했지만, 전선을 이탈하는 비겁한 행동이라는 생각에 선원들과 끝까지 함께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기자생활을 하던 김 동문은 정치와 자연스럽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선거철이 되면 신문사 전체가 선거보도에 집중하고, 자연스럽게 기자들 사이에서는 정치에 대해 논할 기회가 많은 만큼 기자와 정치는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또한, 정치의 최전방에 있는 여러 단체를 출입처로 배분받아 접촉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치인들과도 자주 교류하게 됐다. 김 동문 역시 기자로서 활동하는 동안 어렸을 때부터의 꿈이었던 국회의원으로서의 꿈을 재차 확인했다. 이후 김 동문은 신문사로부터 공천을 받고 선거에 당선되면서 정치인으로서의 인생을 시작한다. 그는 “당시 동아일보는 어떤 신문사보다도 군부정권에 비판적이며 저항하는 분위기가 굉장히 강했다”며 “야당으로 진로를 택하게 된 것도 동아일보에서의 기자 경험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정치, 그리고 김원기
 
김 동문은 ‘협상의 귀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정치적으로 논란이 되는 사안을 합의로 끌어내는 데 많은 기여를 해왔다. 지난 1988년 13대 국회에서 원내총무를 맡았던 김 동문은 ▲지방자치제 부활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역사적 재정립 및 보상 ▲청문회제도 ▲국회입법활동에 대한 언론취재 ▲5공 청산 등의 결과를 도출한 일선 책임자로서 역할을 해냈다. 
또한, 김 동문은 우리나라의 헌정사에서 처음으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 야당에서 김대중 후보가 차기 대권을 노리고 있었던 당시, 김 동문은 김대중 후보와는 다른 정당에 속해 있었지만, 개인이나 정당 차원의 이익보다는 전체의 이익을 생각했다고 한다. 김 동문은 “야당 내 노선 간에 갈등이 있었어도 야권이 통합해서 김대중 후보를 밀어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정치계에서 여러 굵직한 역할들을 해 온 김 동문도 자신의 정치인생에서 후회하는 일이 한 가지 있다고 한다. 바로 노무현 정권 때 17대 국회의장을 역임하던 때의 일이다. 김 동문은 “노무현 정권 때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위해서 이룩한 일도 많았지만 결국은 민심을 잃은 것에 대해 막대한 정치적 책임을 느낀다”고 전했다. 
앞으로 정치인을 꿈꾸는 대학생들에게 김 동문은 과거와 현재의 정치 상황이 많이 변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끊임없는 노력과 공부하는 자세를 갖추지 않으면 오늘날 정치인으로서 성공하기 힘들다”고 조언했다. 오늘날의 정치 상황은 전문화를 요구하기 때문에, 단순히 개인이 가진 정치적 판단력만으로는 성공하기 쉽지 않다고 강조했다. 김 동문은 “솔직히 정치인으로서 나는 대통령을 제외하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봤다”며 “그런데도 조금만 더 공부했다면 훨씬 많은 일을 이뤘을 것 같다는 후회가 남는다”고 말했다. 
김 동문은 굳이 정치인을 꿈꾸지 않더라도, 일반 대학생들이 정치에 대해서 잘 ‘알 것’을 강조했다. 잘 알아야 참여할 수 있고, 참여해야 좀 더 발전적인 정치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궁극적으로 참여는 다시 정치를 더 잘 알 수 있는 긍정적인 순환이 가능하도록 한다. 왜냐하면, 현재 정치 상황을 국민에게 전달하는 언론이 정치의 실상을 잘 드러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동문은 “언론이라는 거울을 통해 드러나는 정치 현실만을 믿지 말아야 한다”며 “다양한 정치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관심을 두고, 참여해야 편견 없는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김 동문에게 정치란 ‘공기’다. 공기가 맑든 탁하든 상관없이 우리의 삶에서 공기가 없다면 살아갈 수 없듯이, 국민은 일상에서 정치와는 무관하게 살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탁한 공기를 맑은 공기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한국 근현대사와 함께 정치생활을 해 온 김 동문의 삶은 이러한 탁한 공기를 맑은 공기로 바꾸기 위한 개인적인 노력의 연장선이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전반적으로 정치에 대한 불신현상이 만연해 있다. 정치와 우리의 삶은 불가분의 관계이기에, 공기의 정화를 위해서 우리는 정치 현실에 대해 끊임없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글 권아랑 기자
chunchuarang@yonsei.ac.kr
이정은 기자
 lje8853@yonsei.ac.kr
사진 전준호 기자
 jeonjh1212@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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