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성 봉사자’ 논란을 통해 본 장애인의 성

 

▲ 중증 장애인을 위한 성 봉사자를 다룬 영화 『섹스 볼룬티어』의 한 장면

 

당신은 ‘성 봉사자’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성 봉사자’란 결혼을 하지 않거나 결혼을 한 상태여도 정상적인 성관계를 맺기 어려운 중증장애인*들의 성적 욕구 해소를 돕는 사람들을 뜻한다. 이런 성 봉사자에 대한 논의는 지난 2005년 가와이 가오이의 『섹스 자원봉사』라는 책과 2009년 조경덕 감독의 영화 『섹스 볼란티어』가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수면 위로 떠올랐다. 중증장애인들이 성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선 성매매와 같은 불법적인 수단을 통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욕구를 해소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장애인들의 성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인 해결책, 즉 성 봉사자의 합법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하지만 이를 합법화할 경우 장애 여부를 떠나 성을 도구화한다는 위험성이 따른다. 또한, 장애인 성 문제에 대해 성 봉사자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진 못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여전히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장애인 성 봉사자 문제, 우리는 그 실태와 함께 장애인 성 문제에 대해 장애인들의 생각은 어떠한지 들어봤다.
 

풀지 못하는 장애인들의 성적 욕구

▲ 영화 『섹스 볼룬티어』 속 장애인이 사창가 너머를 보고있다.

 

「장애인 차별금지법」 29조 ‘장애를 이유로 성생활을 향유할 공간 및 기타도구의 사용을 제한하는 등 장애인이 성생활을 향유할 기회를 제한하거나 박탈하여서는 아니 되며, 관계 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필요한 지원책을 강구하고, 장애를 이유로 한 성에 대한 편견, 관습 등 차별적 관행을 없애는 교육을 해야 한다’

법률에 명시돼있는 것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장애인에 대한 성 인식이 아직 부족하며 장애인의 성 권리는 보장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신체장애, 지적 장애를 막론하고 많은 장애인이 성 욕구 해소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며 더욱더 깊숙한 음지로 빠져들고 있다.
신체장애 중 하나인 뇌병변장애**를 앓고 있는 A씨는 “신체적인 불편함 때문에 이성과의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않아 실제 성경험을 못하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며 고민을 털어놨다. A씨는 “대학 시절 나에게 호감을 보인 사람도 있었고 내가 이성에게 관심을 가진 적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스스로 먼저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웠다”며 “30살이 넘도록 한 번도 이성과의 성경험이 없어 성매매를 생각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사고로 양팔을 절단한 유희락(52)씨는 “과거 연인이 있었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 성경험을 하고 싶었지만, 성교 시 상대방이 나를 보는 시선이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며 “욕구가 생길 때마다 참거나 자위를 한다”고 말했다. ‘팔이 없는데 어떻게 성적 욕구를 해결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유씨는 “보통 샤워기나 다른 도구를 이용해 욕구를 해결한다”고 말했다.
지적 장애를 가진 장애인도 성적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심지어는 가장 가까운 가족조차 장애인의 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실정이었다. 자폐성 장애를 가진 딸의 어머니인 B씨는 “우리 아이는 성에 관심이 없는 줄 알았다”며 “성적인 부분에 신경 쓰지 않아 온 가족이 딸 앞에서 옷을 걸치지 않고 돌아다니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이 자위하는 모습을 우연히 목격한 B씨는 “딸이 자위하는 모습을 보고 그제야 딸이 가진 성적 욕구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래서 장애인들은 성 봉사자를 원한다

위와 같이 많은 장애인은 성적 욕구를 해소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점은 장애인 성 봉사자의 필요성에 가장 큰 근거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지난 2007년 한국장애인문화 부산협회가 장애인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성(性) 도우미 제도가 필요한가?’라는 설문에 찬성이 57%, 반대가 18%, 무관심이 25%로 성 봉사자 제도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장애인이 전체 응답자의 절반을 넘었다. 또한 ‘성도우미제도가 시행된다면 이용할 것인가’라는 설문에는 전체 응답자의 49%가 ‘제도가 생긴다면 이용하겠다’는 의견을 보였다.


한편 같은 해 발간된 한국 장애인 성문화 네트워크의 『중증장애인 성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문제로 인해 자신의 장애에 대한 괴로움을 겪은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중증장애인 60명 중 40명이 ‘많이 경험했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또한, 성 봉사자 제도의 필요성에 대한 질문에는 중증장애인 60명 중 41명이 ‘필요하다’고 응답했으며, 성 도우미 제도가 생긴다면 이용할 지에 대한 질문에는 60명 중 22명이 이용하겠다는 의향을 보였다.
이처럼 성 문제에 대해 괴로움을 겪는 몸이 불편한 중증장애인을 비롯해 다수의 장애인이 장애인 성 봉사자에 대한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성 봉사자, 근본적인 장애인 성문제를 해결해주나

대부분의 사람에게 성 봉사자라는 개념은 생소하지만, 주요 포털 사이트에는 이러한 성 봉사자 카페가 많이 있다. 카페에서는 장애인들이 도움을 구하거나 비장애인들이 도움을 준다는 글들을 쉽게 볼 수 있다. A씨는 “카페를 통해 여성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성적인 본능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해 성 봉사자를 구하려고 한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성 봉사자들은 스스로 성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존재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 봉사자가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이 행위가 불법일 뿐만 아니라, 봉사와 성매매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성 봉사자를 가장해 연락하고 만나면서 장애인들에게 금전적인 요구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게 발생한다. A씨 역시 “카페에 글을 보고 몇몇 사람들이 봉사하겠다며 연락을 해왔지만, 지역적인 제한과 금전적인 요구도 있어 실제로 구하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또한, 성 봉사자가 의도가 순수한 것인지에 대해 모호하다는 것도 문제다. 성 봉사자 카페에 올라온 글들을 살펴보면 여성보다는 의도가 불분명한 비장애인 남성들의 성 봉사자를 자청하는 글들이 훨씬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들이 연락처와 ‘여성분들의 성적 욕구를 풀어드립니다’, ‘무슨 일이든 도와드립니다’ 등의 말을 남겨놓은 글 중에서 장애인을 위해 순수한 봉사를 하려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지는 파악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의 이광원 경영본부장은 “인터넷 카페를 통해 성 봉사가 이뤄진다고 하지만 봉사 희망자의 대다수가 남성이고 순수한 봉사의 의도인지 불순한 의도에서 출발한 것인지 알 수 없다”며 “음지에서 행해지기 때문에 성 봉사자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추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성 봉사자를 구하는 카페에는 이런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해외의 경우, 성 봉사자 제도를 합법화한 나라도 있다. 대표적으로 독일에는 장애인과 성 봉사자를 연결해주는 ‘섹시빌리티즈 베를린(Sexybilities Berlin)’라는 비정부기구가 존재해 장애인들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 또한, 성매매가 합법화된 네덜란드의 경우 ‘플렉조그(FLECK ZORG)’라는 장애인 성 서비스 제공 기관이 있어 장애인들에게 유료로 이른바 ‘섹스 파트너’를 제공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 봉사자 제도에 대해 전문가들은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김경미 교수는 “성 봉사자는 대개 남성들의 수요가 많아 성 봉사라는 말 자체에는 남성의 성적 욕구를 풀어줘야 한다는 가부장적 사고가 실려 있다고 생각한다”며 “사랑 없이 육체적인 관계만 있는 성 봉사는 옳은 해결 방안이 아니다”고 말했다. 서울특별시 중구장애인복지관 정진옥 관장 역시 “장애인들의 성적 욕구를 반드시 풀어내야 한다고만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성욕을 해소시킨다며 장애인들을 아무나와 성관계 맺게 하는 것은 인간다운 삶이 아니다”고 말했다. 또한, 정 관장은 “성 봉사자를 요구하는 것은 나의 욕구를 위해 결국 타인을 수단화시키는 것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장애인이 성(性)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해

그렇다면 어떻게해야 장애인의 성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는 사회가 될 수 있을까? 먼저 장애인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가정과 거주시설 안에서의 변화가 중요하다. 김 교수는 “장애인들이 사춘기를 겪고, 이에 따라 성적 욕구가 발달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것”이라며 “부모가 이를 인정하고 성에 대해서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살아가면서 여러 사회적 관계들을 형성하고, 자연스럽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기회를 가진다. 장애인에게도 똑같이 사회적 관계를 맺을 기회가 보장돼야만 성과 사랑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현재 우리 사회엔 장애인을 똑같은 사회구성원으로 생각하는 인식이 필요하다. 장애인푸른아우성 조윤경 대표는 “장애인들의 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본질적으로 장애인들이 사회에 나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며 “장애인들의 사회진출을 위해 정부가 제반을 마련해야 하고 장애인들 또한 사회에 진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애인들의 성 문제를 다룬 영화 『핑크팰리스』의 서동일 감독은 “장애인들에게도 사회적 활동의 기회가 비장애인과 똑같이 보장되는 것이 우선”이라며 “이를 위해서 어디든 다닐 수 있는 이동의 불편함이 없어야 하고, 균등한 교육의 기회를 줌으로써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비장애인과 장애인을 구별하는 일은 있어선 안 된다”고 전했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인식 개선을 위한 노력이 계속 이어지고 있긴 하지만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인식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조한진 교수는 “인식 개선 캠페인과 같은 방법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며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무성적 존재로 생각하는 근본적인 인식을 파헤치는 것이 먼저”라고 말했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바라보는 고정관념 자체를 분석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장애인 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꿔나갈 길이 생긴다는 것이다.

▲ 영화 『섹스 볼룬티어』 속 장애인이 성 봉사자와 성관계를 맺고 있다.

 

그간 비장애인 중심의 성에 대한 담론은 활발히 이뤄졌지만, 장애인들의 성을 위한 자유로운 논의는 지지부진했던 것이 사실이다. 인간의 성욕은 가장 기본적인 욕구 중 하나다. 장애인들의 성욕 역시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장애인의 성에 대한 논의를 금기시하고 무시하는 우리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억압이다. 성 문제는 단지 섹스라는 행위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젠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의 구분에서 벗어나 인간으로서 건강한 성 담론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양성을 아울러 성에 대한 문제를 함께 공감하고 다양한 의견을 포괄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장이 마련돼야 할 시점이다.

 

*중증장애인 : 통상적으로 장애등급 1~3등급에 해당하는 장애인, 장애로 인해 일상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는 정도
**뇌병변장애 : 뇌성마비, 외상성 뇌손상, 뇌졸중 등 뇌의 기질적 병변으로 인하여 발생한 신체적 장애.
 

 

글 송진영 기자
sjy0815@yonsei.ac.kr
강수련 기자
training@yonsei.ac.kr
문세린 기자
peace.maker@yonsei.ac.kr
 글·그림 신준혁 기자
jhshin0930@yonsei.ac.kr

그림 김혜빈

<자료사진 : 영화 『섹스 볼룬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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