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에 감성을 접목한 '감성 ICT'의 모든 것

늦은 밤, 한적한 골목을 혼자 걸어가고 있는 한 여자. 그리고 낯선 발자국이 그녀의 뒤를 바짝 쫓는다. 여성은 수상한 인기척을 느꼈지만 아무런 방도가 없다. 섣불리 움직였다간 해코지를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여성은 최대한 차분히 발걸음을 옮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순찰차가 그녀 앞에 나타났다. 여성의 행동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지만, 경찰이 나타나서 그녀를 구한 것이다.

이 여성은 어떻게 경찰에 자신의 상황을 알릴 수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바로 여성의 불안한 감정을 통해 위험상태를 인지하고 경찰에 그녀의 위치를 알려주는 속옷형 보디가드장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개발 중인 이 장치는 머지않아 상용화돼 사람들의 안전을 증진시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람의 마음을 읽어 자동으로 채널이 바뀌는 TV 등 사람의 마음을 읽는 기술이 현실화될 예정이다. 이러한 기술은 ‘감성 ICT(Information & Communication Technology)’라고 하는데, 감성 ICT가 무엇이며 전망이 어떠한지 자세히 알아보자.


감성 ICT, 누구세요?

 

ICT에 감성을 접목한 감성 ICT는 인간의 감성을 기계가 자동으로 인지하고, 사용자의 감성과 환경에 적합하도록 감성정보를 처리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술이다. 즉, 감성 ICT란 일상생활에서 인간이 느끼는 생리적 반응이나 환경, 공간 정보 등을 센서가 자동으로 인지하고, 이 정보를 바탕으로 개인의 감정 상태를 개선하거나 개인에게 유용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감성 ICT 기술과 이를 융합한 산업들은 최근 전세계적으로 정부와 기업들 사이에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신현순 박사는 “수많은 정보와 새로운 첨단제품이 쏟아져 나오는 지금 우수한 기능을 가진 상품은 당연한 것이 됐고, 감성을 만족시키는 제품과 서비스 개발에 대한 요구가 커졌다”며 “감성 ICT는 인간중심의 기술로 이러한 시대적, 산업적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서 필수기술로 이용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감성 ICT의 핵심기술은 어떤 것이 있을까? 신 박사는 “감성 ICT의 핵심기술로는 크게 감성신호센서기술, 감성인지기술, 감성교감통신기술, 감성서비스/UI 기술 등이 있다”며 “이러한 기술들이 서로 연계해 하나의 흐름을 이룰 때 사람의 마음을 읽는 제품으로 탄생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감성 ICT는 ‘감성신호센서기술’이 인간의 감성변화에 따른 자율신경계의 생리적 반응을 초정밀 센서로 감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감성이 장치에 감지되면 ‘감성신호센서기술’이 인간의 감성과 주변 환경에 대한 신호를 처리하고, 이를 기반으로 감성을 규격화하고 정보화하게 된다. 그 다음 ‘감성교감통신기술’이 처리된 정보를 바탕으로 인간이 서로 교감할 수 있게 처리하는 네트워크 작용을 한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감성에 자동으로 반응해 인간의 행동을 최소화할 수 있게 하는 ‘감성서비스/UI 기술*’이 인간의 오감을 자극하는 생활 제품 및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이와 같은 하나의 흐름 속에서 사람의 마음을 읽는 감성 ICT가 되는 것이다.

 

감성 ICT의 국내·외 현황

 

‘감성’과 관련된 기술은 그동안 실생활에 적용되기에 기술적 한계가 있어 저평가 받아왔다. 특히 ICT 분야에서는 성능개선과 속도 경쟁이 우선시 됐기에 감성 관련 연구와 기술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기술격차가 좁아진 지금, 감성을 기술에 결합시켜야만 시장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신 박사는 “국외 선진국들은 감성 ICT를 미래를 이끌 기술로 규정하고 정부 및 기업에서 중점 투자 및 육성을 하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미래창조과학부를 중심으로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국, 일본, EU 등 각국 정부는 감성 ICT와 이를 융합한 분야를 차세대를 이끌 융합기술로 개발하고 있다. 또한 MIT, 마이크로소프트(MS)와 같은 세계의 주요 연구기관과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기술개발을 이어가는 중이다. 국내의 경우 SKT와 LG 등 대기업의 모바일 산업을 중심으로 감성과 기술을 융합하려는 노력들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은 아직 기초 단계로 기반이 취약한 상태며 정부 차원에서도 지원체계는 미흡한 실정이다. 바른ICT연구소장 김범수 교수(정보대학원·정보보호)는 “우리나라에는 감성 ICT에 필요한 기술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인력의 수가 매우 부족하다”며 “정부차원에서도 감성 ICT 협회를 만드는 등 노력을 기울였지만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신 박사는 “단기적인 결과물 위주의 응용기술 R&D** 투자 정책으로 인해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감성기술과 같은 원천기술의 연구 분야는 인내심 있는 R&D 지원과 이와 연계된 응용 기술 개발 및 상품화 전략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독자적인 원천기술이 아니라 외국에서 수입해 온 것을 응용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 기반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감성 ICT의 미래와 우려

 

감성 ICT 기술과 융합 산업의 전망은 어떨까? 김 교수는 “감성 ICT는 전기공학, 제어공학 등의 기술뿐만 아니라 심리학, 마케팅, 기계관리 등 다양한 전공이 융합되는 분야”라며 “아직 우리나라는 기술 개발의 기초 단계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에 블루오션으로서 많은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덴마크 출신의 미래학자 룰프 옌센은 ‘정보화 시대가 지나면 소비자에게 꿈과 감성을 제공하는 ‘드림 소사이어티’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 현재의 기술이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지만 다가오는 미래에는 단순한 감성 자극을 넘어, 인간의 감성을 자동 인지하고 다양한 개인들의 상황에 부합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술로 발전한다는 뜻이다.
감성 ICT는 모바일, 자동차, 선박, TV, 의료, 보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적용될 전망이다. 그 예로 감성 ICT 기술이 휴대폰에 적용될 경우 사용자의 감성 변화에 따라 휴대폰의 색깔이나 모형, 소리 등이 변환되는 ‘감성 비주얼 폰’이 가능할 것이다. 더불어 감성 ICT가 학교 등에 설치되는 폐쇄회로에 적용될 경우 영상에 비친 인물의 감성이나 분위기에 따라 수상한 사람인지 아닌지 여부를 파악해 범죄 예방에 사용될 수도 있고, 자동차에 적용될 경우 운전자의 피로, 흥분, 위험상태 등을 파악해 안전운행을 유도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감성 ICT 기술은 모바일 분야에서 가장 빠르게 적용될 전망이다. 신 박사는 “개인의 감성을 다루는 기술은 이미 사용 중인 개인화된 휴대폰에 먼저 적용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라며 “감성 ICT가 모바일 산업에 접목되면 금융·교통·서비스 등의 여러 산업과 융합돼 그 확산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모바일 분야뿐만 아니라 감성스마트TV 및 리모컨 등 감성 ICT가 적용될 수 있는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위와 같은 감성 ICT의 긍정적인 측면과 함께 감성 ICT 확산을 둘러싼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기술이 아무리 좋은 의도로 개발되고 상용화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악용할 가능성은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신 박사는 “감성 ICT는 인간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기술로서 연구·개발되고 있지만, 인간의 상태를 알아내는 기술인만큼 추후 악용되는 부분들이 발생할 수 있다”며 “악용을 방지하기 위한 기술 개발도 함께 고려돼야한다”고 전했다.

인간의 감성을 자동으로 인식해 인간을 위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감성 ICT. 이는 분명 인간을 위한 기술이지만 그만큼 악용의 가능성이 높은 기술이기도 하다. 하지만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그 취지와 기능을 살린다면 우리의 삶의 질을 높여줄 고마운 기술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UI : User Interface의 약자로, 휴대폰·컴퓨터·내비게이션 등 디지털 기기를 작동시키는 명령어나 기법을 포함하는 사용자 환경을 뜻한다.
**R&D : Research and Development의 약자로, 우리말로 ‘연구 개발’이라고 한다.

 


글 고석현 기자
shk920211@yonsei.ac.kr
그림 황주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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