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6연강을 견디고 나니 어느새 저녁 시간이 됐다. 배가 고파서인지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이 평소보다 훨씬 더 길게 느껴진다. 맛있는 걸 먹고 싶은데 같이 식당에 갈 사람은 없고, 편의점 음식은 죽어도 먹기 싫어 결국 밥버거 가게로 향한다. 치즈제육 밥버거에 계란 후라이까지 얹었건만 밥버거를 들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그 어느 때보다도 무겁다.

위의 이야기는 다른 누구도 아닌 기자 본인의 경험이다. 지난 2014년 기준 우리나라 1인 가구 수는 488만여 명. 위와 같은 씁쓸한 ‘혼밥’의 경험은 이제 누군가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됐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렇게 외롭게 대충 끼니를 때울 수는 없는 법! 혼자이지만 혼밥은 싫은 사람들 사이에 최근 ‘소셜다이닝’이 인기다. 소셜다이닝이란 낯선 사람과 식사시간을 공유하는 문화로, 고대 그리스의 심포지온(Symposion)*에 그 유래를 두고 있다. 해외에선 이미 파티 문화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는 소셜다이닝. 기자가 직접 체험해 봤다.

도전! 소셜다이닝!

우리나라에서 소셜다이닝이 시작된 지는 불과 2~3년. 하지만 각종 소셜다이닝 사이트들을 통해 그 인기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기자 역시 소셜다이닝 사이트를 통해 소셜다이닝에 참여했다. 기자가 이용한 사이트는 ‘집밥’(www.zipbop.net)으로 우리나라 최초이자 누적 참가자가 2만 명인 국내 최대 규모의 소셜다이닝 사이트다. 누구든지 집밥을 통해서 날짜별로 혹은 관심사별로 다양한 소셜다이닝 모임에 참여할 수 있고 주최할 수도 있다. 낯선 사람들과 밥을 먹는다는 것은 어쩌면 두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참가자들의 앵콜**을 통해 이어지고 있는 성공적인 모임에 참여하거나 해당 모임에 참여한 이들의 후기를 꼼꼼히 살펴보자. 어느새 걱정은 사라지고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설렘이 그 자리를 채울 것이다. 단순히 함께 밥 먹을 사람을 찾는 소셜다이닝 본연의 목적을 경험해 보기 위해 기자는 ‘지식/배움’, ‘문화/예술’등의 다양한 카테고리 중 ‘대화/일상’이라는 카테고리를 클릭했다. 검색 결과로 나온 다양한 모임 이름 중에서 기자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같이 드실래요?”라는 한마디. 음식점이 아닌 주최자의 집에서 단란한 한 끼를 먹을 수 있다는 말에 망설임 없이 신청 버튼을 눌렀다.

▲ 기자가 소셜다이닝을 통해 맛본 푸짐한 한상.

함께하는 저녁에 꽃피는 즐거운 이야기들

소셜다이닝을 신청하고 3일 뒤, 기자는 사이트를 통해 알게 된 주최자 이선미(36)씨의 집으로 향했다. 10분 정도 먼저 도착했지만 쑥스러움에 결국 시간에 맞춰 현관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리고 주최자인 이씨와 박준영(33)씨가 기자를 반겼다. 박씨는 소셜다이닝을 통해 이씨와 알게 돼 지금은 막역한 사이가 됐다. 이날의 모임에 따로 신청하진 않았지만 “이씨와 다른 사람들이 보고 싶어 왔다”는 박씨는 한눈에도 ‘사람 만나길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티가 났다. 박씨와 기자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나머지 모임 회원들이 하나둘 도착해 총 7명의 회원이 모두 모였다. 이날의 메뉴는 이씨가 만든 닭백숙과 닭죽, 잡채, 그리고 미나리 달래전이었다. 소셜다이닝의 모든 주최자가 이씨처럼 손수 음식을 준비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씨는 “자신이 좋아하는 요리로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 만큼 이씨의 요리엔 엄마가 해주는 집밥 못지않은 정성이 들어간다. 국제캠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는 기자는 좀처럼 먹어볼 수 없는 메뉴였기에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또한 경쾌한 음악도 함께하니 입맛을 살리기에 이보다 완벽한 환경은 없을 것 같았다.
식사를 하며 회원들은 서로가 이전에 참여했던 소셜다이닝 모임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했다. 이전엔 유자청 만들기 등의 체험 위주로 활동했다는 정승한(30)씨는 “요즘엔 소셜다이닝이 조금 변질돼 스터디 그룹을 만들거나 단순히 체험만 하는 곳이 많은데 이렇게 밥만 먹는 모임은 처음”이라며 “단순히 체험을 할 때보다 대화를 많이 해 느낌이 색다르다”고 말했다. 참고로 이날 모임에 참여한 회원들은 모두 30대 직장인들이었다. 때문에 학교에선 벌써 헌내기 취급을 받는 기자도 모처럼 어린애 취급을 받을 수 있었다. 나이 차이가 크게 나 대화에 낄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이내 불필요한 걱정임을 깨닫고 신나게 먹고 마시며 이야기를 했다. 공통의 관심사를 찾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기자는 다양한 아이돌을 좋아하는 박진수(31)씨와 그룹 ‘동방신기’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다. 또한 우리에게도 친숙한 애플리케이션(아래 앱) ‘도서관 좌석정보’를 개발한 앱 개발자인 윤현국(31)씨와는 그의 앱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엔 모두가 영화 「어벤져스」로 대동단결해 각자가 좋아하는 캐릭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소셜다이닝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는 오랜만에 만난 친척 언니 오빠들과의 대화와 다를 바 없이 유쾌하고 정겨웠다.

당신에게 소셜다이닝이란?

신나게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드는 시간이 흐른 뒤 기자를 포함한 회원들은 오늘의 모임을 이어 가자며 단체 카톡방을 만들었다. 헤어질 때까지 각자의 일과 관련된 고민을 이야기하며 진지한 대화가 오갔다. 특히 기자가 학보사 일에 대한 고충을 털어놓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선 하기 싫은 일도 참고 해야 한다”며 “힘들고 귀찮은 일들도 상쇄할 만큼 스스로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한다”는 정씨와 윤씨의 말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이날 모인 모든 이들에게 소셜다이닝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상경해서 생활한 지 6년째 되는 박준영씨는 “소셜다이닝을 통해 서울에서 선미 누나 같은 친구를 만들었다”며 “나와 같이 타향살이를 하는 사람들에겐 의미가 더 큰 것 같다”고 말했다. 그에게 소셜다이닝은 타향살이로 인해 외롭고 지친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집밥 한 끼인 것이다. 더불어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친구 사귀기를 좋아하는 박진수씨에게 소셜다이닝은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기회다. 마지막으로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주변의 사람들을 가려 만나기 시작했다”는 정씨는 “소셜다이닝을 통해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모든 사람이 참 고마운 사람들이란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정씨의 말처럼 우리는 언제부턴가 다른 이들을 나에게 득이 될 사람과 그렇지 않을 사람으로 구분하며 누군가에게 더 공을 들이고 누군가에겐 공을 덜 들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런 인간관계를 이어가다 보면 결국 진심으로 내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줄 사람은 몇 남지 않는다. 그런데 소셜다이닝을 통해 기자는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함께 밥을 먹으며 사람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의 이야기를 성심성의껏 들어준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인 자리이고, 맛있는 음식도 가득해 이야기를 나누기에 더없이 즐거운 자리이니 못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러니 오늘 이 기사를 읽는 지금도 편의점 음식으로 끼니를 대충 때우고 있는 당신이라면, 혹은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이 고픈 당신이라면 망설이지 말고 소셜다이닝을 신청해보자. 맛있고 따뜻한 한 끼 식사와 밥보다 더 따뜻한 사람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심포지온(Symposion) : 그리스어로 ‘함께 마신다’는 의미로 우리나라 말로는 특별히 손님을 융숭하게 대접하는 행사인 ‘향연’으로 번역된다.
**앵콜 : 특정 소셜다이닝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해당 소셜다이닝의 재오픈을 요청하는 것.
 

글·사진 김예린 기자
yerinee@yonsei.ac.kr

그림 황주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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