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사회 속 불교와 쇼펜하우어의 사상

최근 한 남자의 투신자살이 이슈가 됐다. 의대 졸업생인 그는 강남 도곡동의 한 주상복합 아파트에 거주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제적 풍요와 의사라는 약속된 미래를 가진 그의 외적 환경만 보면 그는 사회적으로 부러움을 살만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두 차례 연속 의사국가시험에 낙방한 자신을 비관했고 우울증을 앓았다고 한다. 그의 마음을 채울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이다.
현대는 흔히 ‘무한 경쟁사회’라 불린다. 경쟁은 상대적이기에 승자와 패자의 구분은 필연적으로 발생하며, 승자의 기쁨은 언제나 패자의 고통을 동반한다. 이것은 어쩌면 태초부터 시작된 인류의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고통’에 주목하는 철학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해왔다. 그중에서도 동양의 불교사상과 서양의 쇼펜하우어, 이 둘은 삶을 ‘고통’의 연속이라고 본 점에서 상당히 유사하다.

집착은 고통을 낳고

‘집착’은 불교 사상과 쇼펜하우어 철학을 잇는 중요한 연결고리다. 불교에서는 세상을 고해(苦海), 즉 고통의 바다로 이해하고, 이러한 고통은 자아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다. 자아는 전생의 업(業)*에 따라 형성되며, 모든 결과에 대한 직접 원인인 인(因)과 간접 원인인 연(緣)에 따라 바뀌게 된다. 이런 인연에 따라 만물은 변화하기에 고정된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아는 항상 변화한다는 뜻이다. 이를 불교에서는 ‘무아(無我)’라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은 자아가 고정됐다는 생각에 집착을 하게 되므로 번뇌와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이다. 이런 집착을 ‘무명(無明)의 상태’라고 말한다. 이런 고통은 윤회의 굴레 안에서 다음 생에까지 이어지며, 자신의 무명을 깨달아 해탈의 경지에 이르러서야 끝이 나게 된다.
쇼펜하우어 역시 생에 대한 집착이 모든 고통의 근원이라고 본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쇼펜하우어 인식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쇼펜하우어는 「충족이유율의** 네 가지 근거에 대하여」에서 “어떤 것도 그 자체로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는 충족이유율을 설명하는 말로써, 충족이유율이란 모든 명제의 참됨이 상호 근거함을 말하는 원리다. 쇼펜하우어는 모든 행위의 충족이유율로서 의지를 이야기한다. 행위의 근거는 의지며 인간과 동물은 의지를 갖고 태어난다. 여기에서 의지란 생에 대한 맹목적 욕망을 지칭하는데, 살고자 하는 의지는 언제나 채워질 수 없기에 인간을 포함한 존재자는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두 사상의 인식론적 공통점은 인간관까지 이어진다. 인간의 고통에 주목하며 이를 삶의 본질로 본 철학은 동·서양 양측에서 모두 독특한 것이었다. 철학과 류승주 강사는 “어머니가 살롱***을 운영하던 그의 가정배경을 살펴볼 때, 쇼펜하우어가 인도철학과 불교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고통에 대한 연민

두 사상이 고통에 대처하는 방식 역시 비슷하다. 불교에서는 고통받는 존재에 대한 자비를 윤리의 핵심적 가치로 본다. 태어나면서부터 불심을 갖고 있는 모든 중생은 자비의 대상이 된다. 그렇기에 자비에는 차별이 존재할 수 없고, 자신과 타인에 대한 구별 역시도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고통받는 존재를 사랑할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불교를 다른 종교와 구분 짓는 중요한 이념적 차이다.
쇼펜하우어 역시 고통받는 모든 존재에 대한 연민을 중요시한다. 따라서 그는 동물에 대한 인간의 우위를 말하는 기독교보다 둘을 동등한 위치에 놓는 불교를 높이 평가하기도 한다. 그에 따르면 생의 의지는 무한하며 충족될 수 없기에 존재자는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 의지는 표상****으로서 실세계에 나타나는데, 신체 역시도 의지가 표상된 것이다. 먹고자 하는 의지는 입으로, 생식하고자 하는 의지는 생식기로 표상된다. 이런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인간은 이기적인 한편, 동시에 타인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품게 된다.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고통으로 말미암아, 타인 역시 고통에 차있음을 확인할 수 있기에 이런 고통을 타인에게 주지 않으려는 열망을 갖게 된다. 쇼펜하우어는 이것을 ‘사랑’이라고 말한다. 류 강사는 “불교의 자비와 쇼펜하우어의 연민 개념은 학술적으로 분석하자면 차이점을 찾을 수 있으나, 일반적인 의미에서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경쟁을 강요하는 현대사회에서 인생은 고통 속에 있을 수밖에 없다. 겉으로 봤을 때 행복해 보이는 이들도 나름의 고통이 있고,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며 불행에 빠지기도 한다. 이러한 고통의 바닷속에서 고통을 외면하기보다는 이를 직시하는 철학을 접해보는 건 어떨까? 스스로의 고통을 직시하고 다른 사람의 고통까지도 가엾이 여기는 것은 삶의 새로운 방식일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정윤호(철학·석사3학기)씨의 말마따나, “욕망의 과잉, 열등감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업 : 중생이 몸, 입, 뜻을 통해 짓는 모든 소행을 의미하는 불교의 개념.
**충족이유율 : 모든 대상에 대해서 명확한 이유 없이는 참과 거짓 혹은 존재에 대한 판단이 불가능하다는 원리
***살롱 : 근대 유럽에서 유행하던 상류 가정의 객실에서 열리는 사교적 집회
****표상 : 감각에 근거하여 의식하게 된 관념을 의미

 


이승학 기자
minor158@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