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49호에 이어 이번에도 십계명을 쓰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갑작스럽게 쓰게 된 부장으로서의 ‘벌써’ 두 번째 십계명은 어떠한 글을 써야 할지 나를 망설이게 했다. 한참을 생각한 후에 나는 글을 써내려갔다. 이번 십계명에서는 나의 아날로그적인 성향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나는 정말 아날로그적인 인간이다. 디지털 음이 가득하고 베이스가 빵빵하게 울리는 노래도 나쁘지는 않지만 서정적인 가사에 기타 연주가 섞인 노래가 좋고 아직도 다이어리에 쓰는 일기가 좋고 예쁜 편지지에 펜으로 적어 내려가는 편지가 좋다. 나는 그렇다. 나는 누구를 만나는 일에도 아날로그적이다. 잠시 만나고 헤어지는 연애도 나쁘지 않지만 나에게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고리타분하고 오래돼 보여도 그게 나다.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면 오래도록 함께할 수 있고 진지하게 교감할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란다. 가벼워도 좋지만 가볍지만은 않았으면. 느린 것은 좋으나 빠르지는 않았으면. 적어도 그것이 필요한 어느 순간에는 두 사람이 만들어낸 작은 섬에 스마트폰도, TV도, 시계도, 사람들도 다 버려두고 기꺼이 들어가 마주할 수 있었으면. 그리고 그 조용함을, 때로는 지루함이라 느껴지는 그 순간을 풍요롭게 즐길 수 있었으면. 하지만 나, 그리고 우리에게 그러한 모든 것들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스마트폰에는 카카오톡 알림이 쉴 새 없이 울리고 간단한 손가락의 움직임만으로 일기를 쓸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이 즐비하고 정성을 다해 꾹꾹 눌러 쓰던 손편지는 성가시고 귀찮은 옛날의 것이 되었다. 아니, 우리는 그러한 것들에 공들일 시간이 없다. 주변엔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고 남들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도, 해야 할 것도 많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도 그렇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역시도 그럴 것이다. 인터넷도, TV도, 시계도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들을 끊임없이 떠든다. 내 안의 조용함은 사라지기 쉽고 우리의 교감은 더욱 그러하다. 참 슬픈 일이다. 어쩔 수 없다고 말하기엔 그 잃어가는 것들이 너무 소중하다. 
이렇게 아날로그적인 것을 좋아하는 나는 가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에 시달린다는 느낌을 받는다. 가끔은 있어도 없었으면 좋겠고 들려도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고 떠올라도 말로 꺼내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가끔은 혼자 있고 싶다. 반면에 또 어느 때는 목이 타도록 사람이 그립다. 인간관계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는 것은 우리와 같은 사람들에게 항상 숙제다. 그런데 평화롭던 삶이 왁자지껄 시끌벅적해졌다. 나 혼자 보던 풍경에 사람이 있는 그림. 한 명이 웃으면 한 명이 따라 웃는다. 시끌벅적해지면 무엇 때문에 웃는지도 모른 채 다 같이 웃고 있는 바보 같은 장면이 꽤 즐겁다고 생각한다. ‘이 시간은 기억에 남겠구나’ 그런 기분이 든다. 밝고 좋은 마음들로 가득 차 있는 시간은 분명 남을 것이다. 이 시간, 장소, 우리들. 무엇이 변하든, 어떻게 흐르든 말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곳과 이 사람들이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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