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사회와 한국적 해법

“아직도 아홉 명의 아이들은 바닷물에 잠겨 부모의 곁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조남성(53)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 조은화양을 마음에 품은 채로 그는 외로운 농성을 이어가고 있었다. 조양은 세월호 1주기가 돌아오는 이 시점에도 아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오는 4월 16일이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된다.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살펴보면 세월호 참사처럼 국민 전체에게 아픔을 준 사건이 종종 일어났다. 지난 1994년 일어난 성수대교 붕괴사고나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그 이후에도 크고 작은 사건들이 일어나 국민들을 충격에 빠트려왔다. 이런 사건들은 국민들에게 근대화된 사회의 잠재된 ‘위험’을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했다.
 

근대화된 그리고 더욱 위험해진


독일의 사회학자 율리히 벡은 1986년 그의 저서 『위험사회』에서 산업화된 사회가 내재하고 있는 ‘위험’을 이야기하며 위험사회론을 주장했다. 무분별한 개발과 기술의 발전 등 성찰 없이 이뤄진 근대화가 현대사회에서 개인이 ‘위험’에 처할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자연재해와 같이 인간에게 불가항력적인 위험은 근대화 이전에도 존재했으나, 근대화 이후에는 이에 더해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에서 기인한 인공적 위험이 증가했다. 근대화는 사람들에게 물질적 풍요를 선사했지만 동시에 근대화로 인해 새로운 위험의 가능성 역시 생겨났다. 이를 예방하기 위한 비용도 추가로 발생하게 됐다. 서울대 사회학과 이재열 교수는 “산업화 이후에 나타난 인공적 위험들로 인해 인류 전체의 목숨에 치명적인 재난들이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근대에 들어서 새로 생겨난 위험으로는 건물 붕괴, 원자력 발전소 방사능 유출, 스모그, 교통사고, 지능형 범죄 등을 꼽을 수 있겠다.


위험사회, 어떤 사회인가?


벡은 위험을 ‘우리를 위협하며 발생 가능성이 있는 미래의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또한, 위험사회의 특징을 6가지로 구분해 제시하기도 했다. 첫째로 위험은 구체적인 사건이 아직 발생하지 않았으므로 사회의 전문가 집단에 의해 그 범위가 규정될 가능성이 있다. 경북대 사회학과 노진철 교수는 “근대 사회의 위험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전문화된 지식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사회 지위집단은 전문화된 정보를 가진 지식인들의 의견만을 수렴하여 위험에 대한 정책을 설계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지진 등 자연재해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것이 전문가 집단의 몫이 된 것은 이제 당연시 여겨진다. 둘째로 현대사회의 위험은 국경선과 빈부의 격차를 넘어 모든 인간에게 평등하다. 부유한 미국인이나 가난한 아프가니스탄 사람이나 전 지구적으로 진행된 스모그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셋째로 위험의 원인 제공자는 위험의 영향을 돌려받게 된다. 화학 비료를 많이 사용한 농부의 땅은 산성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는 이치다.
넷째로 현대사회에서 위험은 하나의 시장으로서 자리매김하기도 한다. 경영학에서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은 지속적으로 부각되고 있으며, 보험시장의 규모 역시 커지고 있다. 다섯째로 현대 사회의 위험은 사회적으로 인식되는 수준에서만 대비될 수 있다. 지난 2014년부터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한 지식이 없어 퇴치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 것이 그 예다. 마지막으로 오늘날의 위험은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 인공적 위험은 사회적, 문화적 배경에서 발생하는 것이기에 정치적 중요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에 조씨는 “세월호 사건은 정치인들에 의해 국민의 안전이 악용된 사례”라며 “더 이상 국민의 안전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찰이 답이다


위험사회의 극복 방안으로 벡은 ‘새로운 근대’로 나아가야 함을 주장한다. 새로운 근대란 ‘성찰도’가 높은 개인이 더욱 많아진 사회를 의미한다. 경희대 사회학과 송창렬 교수는 “새로운 근대에서 성찰적 개인들은 사회를 모니터링하고 그 내용을 근거로 성찰해 사회 내에서 스스로 시민적 덕목을 발휘한다”고 설명했다.
혹자는 우리나라에 유독 안전불감증이 만연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대형 참사가 매번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지난 2014년 8월 29일 열린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거리 행진에 참여했던 서지호(철학·14)씨는 “세월호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은 안전불감증과 그에 따른 안전 관리의 부재”라고 이야기했다. 이에 대해 송 교수는 “우리나라 국민은 예민한 안전의식을 갖추고 있다”며 “오히려 집단에 속해있을 때 그 예민함이 둔감해지는 것이 문제”라고 다른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봤다. 개인적으로 안전에 예민한 국민들이 집단으로 모여 있을 때, 개인이 알고 있는 안전과 불안전에 대한 의식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결국, 유사 가족주의적 경향성*의 영향으로, 안전에 대해 선명한 의식을 가진 이들조차 집단의 압력 안에서 제대로 된 개인주의적 시민성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의견이다. 송 교수는 “양육 단계부터 개인적인 시민의식에 대해 교육해야 한다”고 해법을 제시했다. 지나친 집단주의에서 벗어나 진정한 의미의 개인주의를 받아들일 때 우리나라가 새로운 근대에 다가설 수 있다는 말이다.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세월호 참사 등의 사건은 우리 사회 안전의식에 경종을 울렸다. 특히 세월호 사건은 앞의 두 사건을 겪고도 우리 사회가 위험에 제대로 대처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음을 드러냈다. 위험사회에서 인공적 위험은 예상 가능한 범주의 것도 있기 때문에 예방을 위한 제반 조치를 잘 구성한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이러한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국가적 성찰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세월호 국민대책회의 캐치프레이즈인 ‘안전한 대한민국’을 이루고, 1주기를 맞는 피해자와 가족들의 눈물을 닦기 위해 국민 전체의 안전에 대한 의식전환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가족주의적 경향성: 가족 구성원 개인보다 가족 집단을 중시하며, 이를 사회관계에까지 적용하려는 경향성을 말한다. 글의 내용에서 가족주의적 경향성이란 혼자보다는 함께 행동하기를 장려하는 한국 사회의 경향성을 의미한다.

 

 

글 이승학 기자
minor158@yonsei.ac.kr
그림 오지혜 기자
dolmengemail@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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