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의 증세와 복지정책을 진단하다

“한 번도 ‘증세 없는 복지’ 말한 적이 없다”

지난 2월 10일, 박근혜 대통령이 여당 지도부와의 회동에서 말했다고 알려진 내용이다. 그러나 여러 여당 지도자들이 대통령은 이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증언하면서 이 발언의 진위와 현 정책 기조의 진정성에 대한 논란이 한 차례 가열됐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민감한 사안이다.
 

‘증세’ 없는 복지?


증세 없는 복지 실현은 현 정부의 태동 당시부터 핵심 정책 기조였다. 18대 대선 TV 토론회에서 박 대통령은 다른 두 후보의 질의에 대한 답변과 질문에서 여러 차례 증세 없는 복지를 언급했다. 증세 대신 지하경제 양성화와 비과세 감면 정비를 통해 재원을 확보한다는 골자였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13년 8월에 열린 국무회의를 비롯해 여러 공식 석상에서 역시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해 약속했다. 증세 없이 복지를 확대하겠다는 공약은 서민에게 매력적인 제안이다. 박태규 명예교수(상경대·재정학)는 “대선 당시 여당이 야당의 담론인 경제민주화를 역이용하여 성공한 경우”라고 평했다. 결국, 증세 없는 복지라는 기조는 현 정부의 탄생에 큰 공헌을 한 셈이다. 그러나 지난 2014년과 2015년 들어 정부는 두 가지 홍역을 치렀다. 담뱃값 인상을 통한 증세 논란과 연말 정산 시스템 변경에 따른 증세 논란이었다. 이 두 정책으로 인해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라는 기조가 대선 승리를 위한 복지 포퓰리즘적 공약이 아니냐는 논란에 휩싸이게 된다. 
 

담뱃값 인상, 정말 증세가 아닌가?

 
지난 2015년 1월 1일 자로 국내에 유통되는 모든 담뱃값이 2천 원씩 인상됐다. 이에 대해 정부는 담뱃값 인상은 세수 확보의 목적이 아니며, 국민건강 증진을 위함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한 축에서는 담뱃값을 인상함으로써 정부의 세입이 증가했기 때문에 이는 곧 세수확보를 위한 정책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담뱃값은 일정하고, 담배에 붙는 세금은 간접세*이기에 세율은 역진적일 수밖에 없다. 소득과 상관없이 구매자 누구에게나 같은 세금이 부과되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저소득층이 더 많은 세금을 낸다는 것이다. 정재원(철학·14)씨는 “담뱃값이 두 배 가까이 올라 부담스럽다”며 “학생입장에서 생활에 상당한 지장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담뱃값 인상이 증세는 맞지만 그 목적이 세수 확보가 아닌, 국민 건강 증진에 있다는 주장도 있다. 박 교수는 “담뱃값이 인상된 시점부터 증세가 됐음을 부정할 순 없지만 담배는 대표적인 비가치재**로 국민건강을 크게 해치므로 가격 인상의 필요성은 있었다”고 의견을 표했다. 담뱃값 인상의 목적이 세수 확보는 아니었지만, 세수 확보가 필요한 시점에 담뱃값을 인상하면서 국민건강 증진이라는 정책의 본래 취지가 빛이 바랬다는 것이다. 결국, 양측 모두 ‘담뱃값 인상은 증세’라는 점에는 동의하나 그 목적성에 대해 견해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연말정산 파동과 서민 증세


지난 2014년 연말정산 방식이 소득과 지출을 기준으로 공제액을 정하던 소득공제방식에서 공제액이 고정된 세액공제방식으로 변경되면서 많은 국민이 혼란을 겪었다. 소득공제방식 하에서는 세금을 환급 받는 사람이 대다수였으나, 세액공제방식이 적용된 2014년 연말정산에서는 도리어 세금을 추가로 낸 사람이 많아져 ‘13월의 세금’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이에 연말정산 방식 변경 역시 복지 포퓰리즘에서 파생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평소에 세금을 적게 걷어 증세를 지양한다는 기조를 지키려다 세수가 부족해지자 이를 확보하기 위해 서민들에게 연말에 세금폭탄이 떨어지게 됐다는 주장이다. 소득공제 방식에서는 소득에 대해서 보험료, 의료비, 교육비 등을 납세자에 적용되는 세율에 따라 차등적으로 공제했으나, 세액 공제 방식에서는 세율에 상관없이 공제받는 금액이 똑같아 형평성 문제가 발생했다. 세율이 높은 사업소득자에게는 이 변화가 큰 차이가 되지 않으나, 서민들이 주로 속하는 근로소득자 중에서는 이 변화로 인해 연말에 공제받는 금액이 줄어들거나 세금을 더 내게 되는 경우가 생겼다. 김진수 교수(사과대·사회복지정책)는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전환하는 것은 결국 공제의 양을 줄이는 것”이라며 “사업소득자와 근로소득자의 개념이 모호해진 지금, 세액공제방식이 기업보다 개인에게 부담이 되는 방식은 맞다”고 말했다. 이어 박 교수는 “결국 정부가 소득 파악이 어려운 조세의 불성실신고자보다 성실신고자에게 세금을 걷고자 한 것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성공회대 장길완(사회과학부·13)씨는 “박근혜 정부가 과연 복지국가의 초석을 다지는 조세 제도를 확립하려는지 의문”이라며 “정부가 임금노동자에 대한 조세부담을 늘리고 부자증세를 하지 않는 조세 방식이 이런 의문을 심화 시킨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복지 예산 확충만이 능사가 아니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15년 우리나라 복지예산 총액은 115조 7천억 원이다. 이는 전체 국가 예산 375조 6천억 원의 30%에 해당하는 액수로, 전년 대비 9조 1천억 원 증가한 것이다. 이렇듯 복지 예산은 이미 국가 예산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무작정 복지예산을 확대하기 보다는 예산 운용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정책적 정교함을 높여 예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박 교수는 “예산 집행 과정에 있어 여러 변수가 있기에 복지 수요 예측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며 “경제학을 공부한 전문가들이 복지 정책 수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진정한 의미의 ‘증세 없는 복지’는 예산확보보다 정책 연구에 초점을 맞춰야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공공복지가 아닌 자원봉사자단체 등 민간 복지 분야에 대한 지원 역시 하나의 복지 효율성 제고의 방식으로 고려될 수 있다.
 

진정한 복지 실현을 위한 논의가 필요해


현 정부가 들어선 지도 어느덧 2년이 지났다. 5년이라는 제한된 임기는 국가 인프라 확충 및 재건을 이룩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 그러므로 현 정부의 복지 정책 전체에 대한 성공·실패 여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 그러나 복지 포퓰리즘 논쟁을 불러일으킨 ‘증세 없는 복지’ 기조는 이미 한풀 꺾인 것으로 보인다. 박 교수는 “국가 예산은 경직성을 띠고 있어 증세 없이 다른 목적의 예산을 끌어와 복지 예산을 확충한다는 것은 어렵다”며 “차라리 일자리 창출, 집값 안정 등 근본적인 문제를 짚어보는 것이 오히려 현명한 복지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고령화, 저출산, 고용불안으로 인해 우리 사회의 복지 수요는 점점 더 증가할 것이다. 정부는 담뱃값 인상 논쟁으로 정책의 시의성 문제에 대한 역풍을 맞았고, 연말정산 파동을 겪으며 정부와 국민 양측은 ‘낮은 세금의 꿈’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됐다. 현재의 추이를 봤을 때 궁극적으로 증세는 이루어질 것이고 매년 복지예산도 증가될 것이다. 늘어난 복지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지금 시점에서 필요한 정책이 아닐까.

*간접세 : 납세의무자와 조세부담자가 다른 조세. 대표적으로 부가가치세·개별소비세·주세·인지세·증권거래세가 해당된다.
**비가치재 : 재화나 서비스 가운데 일부는 그것을 소비함으로써 얻어지는 효용 또는 쾌락은 과대평가돼 있는 데 반하여, 소비로 인한 비효용 또는 고통은 과소평가돼 있는 재화나 서비스를 말한다. 술 이외에 마약,담배 등이 대표적인 비가치재다.

 


이승학 기자
minor158@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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