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이기 싫었던 기자의 홀로서기 체험

우리나라는 유독 ‘혼자’라는 것에 민감하다. 대학교 새내기 때부터 짝을 찾기 위해 소개팅에 나가고,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는 시선들이 있을까 혼자 음식점에 들어가길 꺼려한다. 시간표를 짜기 무섭게 공강이 맞는 친구들을 찾아 같이 밥을 먹을 ‘밥메이트’를 찾아다니기도 한다. 그러나 1인 세대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는 오늘날에 모두가 쌍쌍이 다닐 수는 없는 법. 원래 '혼자'가 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던 기자는 이렇게 혼자가 된 현대인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나홀로족'이 돼보기로 했다. 설 연휴를 앞둔 시점에 쌍쌍이 연휴를 즐기는 사람들 틈에서 겪은 기자의 나 홀로 체험 현장은 무척이나 파란만장했다.

누가 연극을 데이트코스일 뿐이라고 말했던가?

▲ 관객들이 모두 빠져나간 극장.

기자는 처음부터 ‘혼자 생활하기’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도전을 해보기로 했다. 연인들의 필수 데이트 코스라고 일컬어지는 연극을 혼자 보기로 한 것! 국민연극 「라이어」를 보기로 하고 코엑스 아트홀까지 가는 기자의 발걸음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때는 설 연휴의 첫날. 민족대명절인 만큼 연인 단위의 관객은 얼마 없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와는 달리, 서울시의 연인들은 모두 연극장에 모인 듯했다. 좋은 자리를 얻기 위해 50분을 앞서 매표소에 도착했지만 이미 매표소에는 티켓 교환을 위해 온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 10여 분간의 기다림 속에서 기자와 얘기를 나눌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렇게 티켓 교환을 하고 나니 연극의 시작까지 또다시 30분 정도가 남아있었다. 알콩달콩하며 시간을 보내는 연인들 사이에서 기자는 벤치에 앉아 핸드폰을 붙잡고 있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기자는 혼자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실감했다. 남자친구가 슬픔에 젖은 여자친구를 위로해주는 모습을 보고 옆구리가 시리지 않기 위해 일부러 코믹한 연극을 골랐건만, 웃음을 나누며 재밌는 순간을 공유하는 커플들의 모습 또한 그렇게 달달해보일 수 없었다. 그 틈에서 기자는 ‘나만의 추억을 만든다’는 것에 의의를 두자며 그 커플들보다 더 큰 소리로, 마음껏 웃기로 작정했다. 오히려 마음을 놓기 시작하니 무대에 더 집중할 수 있었고 혼자 연극을 보는 것이 생각만큼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에 도달했다.

나만을 위한 고기 굽기

▲ 고깃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기자.

연극을 보고 난 후 기자는 입이 심심해졌다. 늘 혼자 밥을 먹는 ‘혼밥족’이길 거부했던 기자였기에 그날따라 고픈 배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혼자 연극도 봤겠다, 못할 것이 뭐가 있겠나. ‘이왕 혼자 밥도 먹을 거 화끈하게 고기를 먹어보자!’는 생각에 이르러 평소에 자주 가던 신촌의 고깃집으로 향했다. 당찬 걸음으로 입구까지 갔으나 막상 그 앞에 다다르니 차마 들어가지 못해 몇 번이고 그 좁은 골목길을 돌아다녔다. 문까지 가는 10m가 왜 그렇게 멀어 보이던지.
다시 마음을 추스린 후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뿔싸. 하필이면 아르바이트생이 기자 뒤에 있던 사람을 일행으로 착각해 친절한 웃음과 함께 “두 명이세요?”라며 자리를 안내하려 했다. 뒷사람 역시 혼자였다면 친해져서 함께 먹기라도 했을 텐데 일행이 있어 기자가 혼자 왔음을 두 번이나 강조해서 말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당황하는 아르바이트생의 얼굴에서 기자는 또다시 민망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 사람은 무슨 사연이 있길래 고기를 혼자 먹으러 오지?’라고 말하는 눈빛이란!
원하는 곳으로 가서 앉으라는 직원의 말에 민망함을 덜어보려 재빨리 구석 자리로 갔다. 조금이라도 덜 트인 장소로 가야 ‘혼자 왔네?’와 같은 시선을 덜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메뉴판에서 가장 싼 5900원짜리 갈매기살을 골라 1인분 주문을 하니, “죄송한데 저희 가게는 2인분부터 주문이 됩니다”라는 아르바이트생의 말에 2인분을 시켜야했다. 평소 같았으면 몰랐을 이 가게의 정책이 무척이나 무정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친구와 왔으면 2인분도 적어보였을 텐데 그날따라 고기의 양이 훨씬 많아 보였다. 열심히 고기를 굽느라 함께 시킨 청하를 마실 틈도 없었다. 간신히 술 한 잔을 들이키니 씁쓸함이 목을 타고 내려왔다. 이른바 ‘혼밥’ 중에서도 고기 먹기가 괜히 높은 난이도가 아니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쉼 없이 고기를 굽고 드디어 고기를 입에 넣는 순간, 앞선 모든 고난들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오직 자신만을 위한 고기를 구워 먹으니 ‘스스로를 위한 보상’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앞에 누군가가 있었으면 대화를 하느라 정신없을 텐데, 고기의 맛을 그렇게 찬찬히 음미할 수 있는 순간이 언제 또 있겠는가. 혼자 기울이는 청하 한 잔 한 잔에 문득 ‘그동안 내가 정말 나만을 위해 보낸 시간이 언제 있었나’라는 질문을 던지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은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한 뼘짜리 스티커사진 속, 기자의 모습

▲ 혼자 노는 데 익숙해진 기자의 전리품.

이제 배도 채웠으니 혼자 보낸 하루를 사진으로 남길 차례였다. 바로, 평소에는 쑥스러워 잘 찍어보지 못했던 스티커사진을 혼자 찍어보는 것. 좀 전에 마신 술의 힘을 빌려 당당하게 스티커사진 가게로 입성! 하려던 찰나, 가게 안에 보이는 여고생 무리는 저 멀리 갔던 이성이 돌아오게 만들었다. 소녀들이 ‘저 오빠는 대체 뭐하는 사람이지?’라는 생각을 할까봐 망설여졌지만 일단 문을 열고 들어갔다.
들어서니 산 너머 산이라고, 가게 안에 동전 교환대가 따로 없어 아르바이트생에게 직접 동전을 받아야하는 민망한 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간신히 받아든 12개의 동전을 가지고 기자는 후다닥 사진 찍는 박스 안으로 들어갔다. 막상 박스 안으로 들어오니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서 그런지 편안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평소에 사진 찍을 때 아무 에너지 없던 기자의 모습이 무색하게 나름대로 다양한 포즈를 해보기도 했다. 문제는 가장 큰 관문이었던 스티커사진 꾸미기! 스티커사진이, 더군다나 평소 ‘아기자기’의 ‘아’ 자에도 익숙하지 않은 남자였기에 글자의 색을 고르는 데도 혼란스러웠다. 설상가상으로 기계가 말을 듣지 않는데다 사방의 시선을 받는 자리에서 작업을 해야 했기 때문에 기자의 마음은 자꾸만 초조해졌다.
다 꾸며진 스티커사진이 나올 때까지 기계 옆에 얌전히 서서 기다려야하는 민망한 1분이 지나고 이젠 결과물을 코팅할 차례. 아르바이트생에게 맡기러 가자 가게 안에서 계속 느꼈던 초조함은 아예 사라져버렸다. 예상외로 이런 일이 익숙하다는 듯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응대해주는 아르바이트생의 태도 덕분이었다. 기자가 그동안 느낀 시선들이 외부의 시선들이 아닌, 스스로가 만들어낸 시선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혼자’라는 것에 너무 민감해 다른 사람들을 너무 신경 썼던 것은 아니었는지. 깔끔하게 코팅된 전리품(스티커사진)을 들고 나온 기자는 이제 어느 공간, 어느 순간에서든 당당하게 혼자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기자에게 나홀로 체험은 혼자 무언가를 하는 것을 피하기만 했던 기자 스스로를 돌아보게 해주는 계기였다. 기자가 홀로 연극을 보고, 고깃집에서 술 마시고, 스티커사진을 찍는다고 했을 때, 친구들은 “아니, 어떻게 그걸 혼자해?!”라는 말과 함께 “체험할 때 구경하게 불러달라”며 기자를 놀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막상 기자가 걱정했던 이상한 시선들은 느낄 수 없었다. 혼자 무언가를 하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민망함은 결국 우리들 스스로가 만들어낸 틀이자 편견이었을 지도 모른다. 이렇게 타인의 시선에 사로잡히지 않는다면 우리는 좀 더 편하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혼자’하기가 꺼려져서 무언가를 하지 않았다면 그 틀을 내려놓고 기자처럼 도전해보는 것도 세상을 더 넓게 사는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글·사진 김민호 기자
kimin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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