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태양이 떠오르는 정동진으로 ‘젊은 그대, 잠깨어 오라’

연말이 되면 사람들은 여러 방법으로 지난해를 보내고 새롭게 오는 해를 맞이한다. 새롭게 쓸 다이어리를 하나씩 구매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살펴볼 수 있다. 또한 TV에서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다양한 분야의 시상식이 열리고, 몇몇 사람들은 제야의 종소리를 듣기 위해 보신각에 모인다. 그런데 새해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으니 바로 해돋이 여행이다. 연말이면 늘 집에서 TV만 봤던 기자도 올해는 특별하게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해돋이 여행을 계획해봤으니…. 해돋이 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곳! 해돋이의 고유명사, 정동진으로 떠나봤다.

설렘이 가득한 정동진행 야간기차

지난 2010년 MBC 『우리 결혼했어요』라는 프로그램에서 정용화·서현 커플이 해돋이를 보기 위해 야간기차를 타고 정동진으로 떠나는 것을 본 이후부터, 정동진 해돋이는 기자의 오랜 로망 중 하나였다. 프로그램과는 다르게 남자친구가 아닌 사진기자와 취재를 위해 가는 것이 안타깝긴 했지만 어느덧 반 쉰(?) 살이 되는 특별한 한해를 맞는 만큼 나름의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청량리역에 도착해 밤 10시 10분에 출발하는 정동진행 기차를 탔다. 정동진까지 예상 도착 시각은 새벽 3시 7분. 거의 5시간을 기차 안에서 보내야 하는 만큼 대부분의 사람은 기차에 타자마자 잠을 청했다. 하지만 방학이 시작하고 밤낮이 바뀌어 올빼미가 돼버린 기자들은 가는 내내 잠들지 못했다. 서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기차는 정동진에 도착해있었다.
정동진에 도착해서 내리니 가장 먼저 기자들을 반겨준 것은 차가운 바닷바람이었다. 정동진으로 여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 ‘동해의 새벽 추위를 무시하지 마’라던 강원도 출신 친구의 조언을 떠올리며 미리 준비한 담요를 뒤집어쓰고 해돋이를 기다리기 위해 근처 카페로 향했다.

▲새벽 3시의 정동진역. 관광객들을 위해 새벽에도 불을 켜두고 있다.

새해 소망 담은 ‘해~야 떠라’

정동진이 해돋이 명소인 만큼, 정동진 근처 카페들은 밤새 기차를 타고 온 여행객들을 위해 새벽 3시부터 문을 연다. 야간기차에서 내린 사람들로 새벽 3시의 카페는 어느새 2층까지 가득 찼다. 기자들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이수지(22)씨는 “친구와 함께 해돋이를 보러 왔다”며 “새해에는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연인끼리 온 사람들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는데, 곧 남자친구와 500일이 된다는 강윤경(23)씨는 “2015년에도 별일 없이 잘 지냈으면 좋겠다”고 새해 바람을 이야기했다.
예상 일출 시각은 아침 7시 40분. 기자들은 해를 보기 위한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아침 7시쯤 바닷가로 향했다. 훨씬 차가워진 바닷바람에 핫팩을 손에 쥔 채 바닷가에서 기다리기를 30분. 하늘은 해가 뜬 것처럼 눈에 띄게 밝아졌는데도 해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정동진에서 해를 볼 수 있는 확률은 65% 정도로 해가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뉴스를 본 터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막상 해를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기다리기 시작한 지 40분이 지나도 해가 보이지 않자 기자들은 해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라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사람들이 모인 바위 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아침 7시 48분쯤 갑자기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혹시나 해서 뒤를 돌아보니 빨갛고 영롱하게 빛나는 해가 바다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것도 구름에 가려진 것 없이 선명하고, 깔끔하게! 순간 말을 잃은 채 멍하게 해만 바라보던 기자들은 해돋이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정신없이 해가 뜬 방향으로 다시 뛰어갔다. 하지만 아무리 사진을 찍어도 그 아름다움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해 아쉬웠다. 밝게 빛을 내며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지난 2014년에 힘들었던 부분을 털어내고, 오는 2015년은 희망차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좋은 예감이 들었다.

▲아침 7시 48분. 정동진 해변에서 조금씩 해가 떠오르고 있다.

시간을 간직한 정동진

기분 좋게 해돋이를 보고 나서 기자들은 바로 옆에 위치한 모래시계 공원으로 향했다. 사실 정동진은 지난 1995년 방영된 SBS 드라마 『모래시계』 덕분에 유명해진 여행지다. 이 공원에서는 거대한 모래시계와 해시계, 시간 박물관을 볼 수 있다.
이 공원의 거대한 모래시계 속 모래가 다 떨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정확히 1년. 그래서 정동진에서는 새해 1월 1일 0시에 모래시계를 반 바퀴씩 돌려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한다. 모래시계를 구경하던 기자들에게 공원 직원은 “날씨 좋은 날에만 해시계를 볼 수 있으니 한번 보고 가라”며 해시계 방향을 알려주었다. 해시계는 인류 최초의 시계로 그림자를 보고 시간을 추측하는 원리이다. 해시계 앞에 서서 그림자를 참고해 시간을 추측해보니 아침 9시 43분이었다. 추측한 시간이 맞았는지 휴대전화를 켜서 확인하니 아침 9시 44분. 너무 정확해서 ‘올ㅋ!’ 절로 감탄이 흘러나왔다.
모래시계 공원 옆에는 기차를 고쳐 만든 시간박물관이 있는데 알록달록한 외관은 어릴 때 즐겨보던 만화 『토마스와 친구들』의 기차 친구들을 떠오르게 했다. 시간박물관은 기차 칸마다 시간의 역사, 과학, 예술, 추억, 열정 등의 주제로 이뤄져 있는데 다양한 시계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 중 유난히 기자의 눈을 사로잡았던 것은 타이타닉호 침몰 당시 배와 함께 가라앉으며 멈춰선 회중시계*였다. 2시 20분에 멈춰선 시계를 바라보고 있자니 그때의 시간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것이 화석 같기도 해 묘한 느낌이 들었다. 이외에도 고대의 시계부터 현대의 시계까지 다양하게 전시돼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정동진 해변 옆 모래시계공원에 위치한 시간박물관.

이득을 보거든 옳은 일인가를 생각하라

정동진을 돌아본 기자들은 강릉 안목해변에서 식사를 한 뒤 오죽헌으로 향했다. 오죽헌은 5만원권의 주인공인 ‘어머니’ 신사임당과 그 아들이자 5천원권의 주인공인 율곡 이이가 태어난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에 가면 율곡 이이가 태어난 오죽헌뿐만 아니라 영정을 모신 사당, 생활하는 곳, 기념관, 박물관, 동상들을 볼 수 있다.
3천 원을 내고 입장해서 오죽헌으로 들어가는 계단을 올라가니 사람들이 어느 한 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궁금해서 다가가 보니 5천 원권 촬영지라는 발판 위에 서서 너도나도 오죽헌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촬영한 오죽헌 사진은 구권 뒷면에 들어가 있으니 신권에 사진이 없더라도 당황하지 말자. 다른 사람들을 따라 그곳에서 사진을 찍은 뒤에 율곡 이이의 영정을 모신 사당인 ‘문성사’에서 가볍게 인사를 하고 오죽헌을 쭉 둘러봤다.
오죽헌을 둘러보는 동안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바로 오죽(烏竹)**. 오죽헌 주위를 감싸듯 서 있는 까만 대나무들은 왠지 모르게 더 고고한 느낌을 줬다. 오죽헌 입구에 있는 율곡 이이 동상에는 ‘견득사의(見得思義)’라는 사자성어가 적혀 있었는데 이는 ‘이득을 보거든 옳은 일인가를 생각하라’라는 의미다. 새해를 맞이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며 곱씹는 기자를 보며 함께 간 사진 기자는 “게임을 할 때 이유 없이 이득을 보면 다시 생각해 봐야겠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오죽헌 내부의 대나무 숲.

장장 18시간의 여정을 마치고 강릉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한 기자들은 버스에서 부족했던 잠을 몰아 잔 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비록 오랜 시간 꿈꿔왔던 로맨틱한 해돋이 여행은 아니었지만 운 좋게 해도 볼 수 있었고,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던 여행이었다. 새롭게 떠오르는 해와 모래시계공원까지 정동진의 ‘시간’들은 사람들에게 지나간 시간들과 앞으로의 시간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기자는 올해로 지난 20대보다 앞으로의 20대가 더 적다는 스물다섯이 됐다. 앞으로의 20대는 지난 20대보다 행복하길 바라며 새해를 맞이해 행복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해돋이 여행을 권하고 싶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정동진행 기차에 몸을 실어보자.

* 회중시계 : 양복의 포켓 등 품속에 넣고 휴대하는 소형의 시계로 손목시계보다는 조금 더 큰 편이다.
** 오죽(烏竹) : 일반 대나무와 비슷하지만 줄기가 까만색이라 관상가치가 높다. 우리나라에서는 강릉 오죽헌에 많이 심어져 있다.

 

 


글 민선희 기자
godssun_@yonsei.ac.kr
사진 손준영 기자
son113@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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