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뉴스를 보면 탈북자 단체가 북한에 주민들을 선동하는 삐라를 날려보낸 사건으로 떠들썩하다. 남북간 갈등뿐 아니라 남한 내에서의 갈등도 유발하고 있으니 가히 삐라 전쟁이라 일컬을 만하다.  논란의 주인공인 삐라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현대적인 의미로는 세계 2차대전 이후이다. 즉 한반도에서는 한국전쟁에서 삐라전쟁이 시작된 셈이다. 삐라전은 방송과 더불어 대표적인 심리전에 속한다. 전장에는 나왔지만 춥고, 배고프고, 억울한 심정을 가진 병사들을 선동하여 전투력을 상실하게 하는 전략이다. 휴전상태인 지금까지 남북은 수시로 서로에게 삐라를 살포해 왔다.

그렇다면 이렇게 오랜 역사를 지닌 삐라전이 왜 지금 와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인가? 사실 과학적으로 풍향을 측정해 보면 북한이 삐라를 띄우기가 더 유리하다. 그래서 북한은 삐라살포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이후 경제력이 월등히 우세해진 남한의 삐라를 당해낼 수 없게 된 북한은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 실무대표회담에서 심리전 중단을 요구 · 관철시켰다. 즉 더 이상 군부간의 심리전을 중단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남북한은 민간 차원의 심리전 중단까지 합의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남한 정부는 민간 단체의 삐라 살포를 막을 수 없다. 이에 대해 북한은 남한 정부의 ‘방관적 태도’를 지적하며 제지를 요구했고 갈등이 커진 것이다.

북한은 왜 이렇게까지 삐라 살포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가? 바로 그들이 가장 숨기고 싶어하는 정보, 3대 독재체제에 대한 비판을 삐라가 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북한의 극심한 식량난, 경제적 낙후성은 전세계가 아는 사실이다. 민심이 흉흉하지 않을 수가 없다. 탈북자 2만 명 시대에 이제는 북한 주민들도 아무것도 모르진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남한을 찬양하며 유혹하는 삐라를 이들이 본다면 선동될 가능성은 절대 낮지 않다.

대북 삐라 살포에 대해 반대하는 이들은 삐라로 인해 북한 정부를 자극해서는 안되며 우리는 북한 정부를, 체제를 인정하여 대화 상대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찬성하는 이들은 이들의 독재 체제를 스스로 무너지게 하고 더 민주화된 정부를 대화 상대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느 쪽이 옳고 그른지는 우리 사회가 민주적인 방식으로 합의하여 결정할 일이다. 하지만 누구의 주장도 함부로 억눌러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는 개인의 인격발현과 민주주의의 신장에 필수불가결한 자유로 다른 기본권에 대하여 우월한 지위를 가지는 자유로 인식돼 왔다. 특히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표현의 자유의 보호범위 내에서도 매우 강한 보호를 받아야 할 자유로 인식돼 왔다.

어떤 이들은 탈북자 단체에서 북한에 보낸 삐라의 내용이 이념상 극단적인 보수주의의 주장이기 때문에 삐라 살포를 중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앞서 밝혔듯이 민주주의 국가의 근간은 표현의 자유로 인한 사회의 다원성 구축과 인간과 공동체의 본질에 대한 성찰이다. 표현의 내용의 정당성을 가지고 표현을 막는 것은 명백히 이에 반한다. 국가의 강제력은 아무 때나 동원된다고 바람직한 것이 아니며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특수한 경우에 한하여 제한할 수 있다. 대북삐라 살포도 정부가 아닌 사회 전체가 결정해야 한다. 과거사가 아닌, 앞으로의 결정이 더 중요해지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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