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대학교 취준생 동행기

 

이 세상에 ‘취준생’만큼 씁쓸한 단어가 또 있을까? 언제부턴가 우리는 어떤 꿈을 향해 달려가든, 어떤 미래를 그리며 살아가든, 학교의 문턱을 나와 사회로 나아가는 사람들을 무조건 ‘취준생’이라는 단어로 명명하기 시작했다. ‘취준생’이란 취업준비생의 줄임말로 취업을 목표로 공부하거나 스펙을 쌓는 사람들을 뜻한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취준생이라는 단어가 단지 사회의 한 집단을 일컫는 중립적인 단어로만 사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단어는 이게 ‘학벌, 외모, 스펙 싸움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들’ 혹은 ‘취업이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힘든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는 부정적 단어로서 인식되고 있다. 어느덧 취준생은 ‘고3’이라는 단어만큼이나 안쓰럽고 씁쓸한 우리의 현실이 투영된 단어가 된 것이다. 취준생. 과연 그들은 누구이며,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일까?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취준생 박다혜 씨의 하루

“언젠가는 부모님께 용돈을 드릴 수 있는 날이 오겠죠?”

박다혜(신학/아동·09)씨는 지난 8월부터 본격적인 취업준비에 돌입했다. 2개월밖에 안된 ‘취준생’생활이지만 이미 산전수전 겪을 것은 다 겪었다는 박씨. 박씨는 이른 아침부터 도서관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오늘 저녁 때 스터디가 있어서 벌금을 안 내려면 빨리 가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박씨의 눈가에는 아직도 피곤의 기색이 역력했다.

스터디를 하고 있는 박씨와 다른 학생들

박씨는 가까스로 스터디 과제를 끝내고 학생식당으로 향했다. 점심시간이 됐지만 수업 때문에 식사할 시간이 없던 박씨는 김밥 한 줄과 음료를 구매했다. 박씨는 “취업준비와 학업을 병행하다 보니 부쩍 바빠졌다”며 “김밥으로 점심을 때우는 것은 굉장히 익숙한 일”이라고 이야기했다. 
수업이 모두 끝나고 박씨는 다시 도서관으로 향한다. 한국수자원공사에 취업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박씨에게 경제학 공부는 필수가 됐다. 그렇기 때문에 박씨는 얼마 전부터 일주일에 2번, 3시간씩 경제학 스터디에 참여하고 있다. 박씨는 “나는 경제학과 출신이 아니라서 경제학을 혼자 공부하는 데에 무리가 있다”며 “공부뿐 아니라 스터디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서 취업과 관련된 유용한 정보를 많이 얻는다”고 전했다.
이런 박씨에게 요즘 최대의 고민은 바로 돈이다. 조금이라도 더 높은 점수를 확보하기 위해 매달 토익과 토익 스피킹 시험을 신청하는 돈만 10만 원이 넘는다. 취업 준비에 여념이 없는 박씨가 이러한 비용들을 혼자 힘으로 충당하는 것은 무리다. 그렇기 때문에 박씨는 부모님에게 금전적으로 많은 지원을 받고 있다. 이에 박씨는 “시험 접수부터 수업료까지 취업준비에 상당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부모님께 죄송하다”며 “빨리 취업해서 더 이상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는 날이 왔으면 한다”고 전했다.

박씨가 지난 2개월간 취업준비를 위해 지불한 내역

다가올 졸업에 대한 부담감과 경제적 사정 등 어렵고 힘든 상황들이 많지만 박씨는 멈추지 않는다.  묵묵히 자신의 꿈을 향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박씨.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무턱대고 취업이 어려운 현실을 비판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라며 “차라리 그 시간에 좀 더 경쟁력 있는 스펙을 하나라도 더 쌓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응원의 말을 전하는 기자에게 박씨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 의지를 다졌다.
 

취준생 길아무개씨의 면접날

“나는 지금 면접 보러 간다.”

지난 2013학년도 1학기를 마치자마자 본격적으로 취준생의 길로 뛰어든 길아무개(신방·11)씨. 기자가 길씨를 만났을 때는 마침 한 항공사의 2차 면접이 있던 날이었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서류전형과 1차 면접을 통과했지만 길씨는 오늘 본 면접을 제외하고도 앞으로 2번의 관문을 더 뛰어넘어야 한다. “오늘 본 면접은 영어면접이었기 때문에 상당히 부담스러웠다”는 길씨는 “영어권 국가에서 오랜 기간 체류했던 경쟁자들을 이길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며 고민을 토로했다.

면접을 마치고 길씨는 친한 친구들과 함께 동네 고깃집에서 술자리를 가졌다. 유난히 경쟁률이 높은 항공사 취업을 목표로 하는 길씨는 “예전보다 경쟁이 훨씬 더 치열해진 것 같다”며 친구들에게 막막한 심경을 드러냈다. 하지만 술자리에 함께 있던 길씨의 친구들은 서류전형을 통과하고 면접 기회라도 얻은 길씨가 부럽기만 하다. 어떤 곳을 목표로 하든지 까다로운 관문들을 통과하고 취업에 성공하기가 녹록치 않은 것이다.

길씨는 “학생들을 배려하지 않은 기업들 때문에 더 힘들다”고도 했다. 사실 길씨는 오늘 면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업에 결석을 해야 했다. 길씨는 “취업면접 결석계를 인정해주시는 분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교수님들도 많다”며 “기업들이 학업과 취업준비를 병행하는 학생들의 상황을 배려해서 전형 일정을 잡아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취준생에 대한 기업들의 배려가 필요한 부분은 또 있다. 몇 번 떨어져 본 경험이 있는 길씨는 “스스로의 역량과 준비가 부족했기에 떨어진 것이라 마음을 추슬러 보지만 간혹 서류전형에서 탈락할 때에는 허무함에서 헤어나오기 힘들 때가 있다”고 밝혔다. 기업들이 탈락 이유에 대한 정확한 평가 기준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취준생들은 영문도 모른 채 그저 답답할 뿐이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급격히 몰려오는 피로감 때문에 길씨는 술자리를 일찍 끝내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열심히 준비한 면접을 끝내고 드디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지만 길씨의 발걸음은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 이제부터 그에게 남은 것은 초조함과 막연한 기대뿐이기 때문이다. 길씨는 “사실 취업을 준비하면서 가장 힘든 순간이 바로 지금과 같이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라며 “이 시기에는 내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나이가 있는 편이기에 길씨의 주변에는 취업한 친구들이 많다. 길씨의 입장에서는 마냥 부러운 직장인들이지만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아 또 다시 취업 준비를 시작하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길씨는 “아무리 힘든 길이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이 일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 다시 한 번 다짐했다.

늦지 않은 밤, 집으로 향하고 있는 취준생

오늘도 취준생들은 취업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취업이 사회로 나가기 위한 관문인 현실 속에서, 취준생은 대학생과 사회인 사이에서 하나의 새로운 ‘계급’이 되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이 취준생을 거쳐 갔고 또 다른 사람들이 취준생이 될 것이다. 그중에는 무엇을 위해서인지도 모른 채 주위에 등 떠밀리듯이 취준생이 된 친구들도 있을 것이다.
냉혹한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자신을 보호할 또 다른 울타리를 찾는 그들은 조금이라도 좋은 스펙으로 자신을 감싸려고 애쓰고 있다. 아무리 화려한 스펙으로 무장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속마음은 여전히 불안하기만 하다. 갈 곳 없는 곳에서 갈 길을 찾아야만 하는 취준생. 그들이 걷는 길에는 쉼표도 마침표도 보이지 않았다.


강달해 기자
dalhae7070@yonsei.ac.kr
박성종 기자
seongjong@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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