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8일 실시된 스코틀랜드의 분리 독립 투표가 부결되면서 영국 언론은 데이비드 캐머론 영국 총리가 스코틀랜드 의회에게 기존의 보유 자치권 외에 건강보험 예산액 결정 등 새로운 권한을 부여하고 영국에서 생산되는 모든 자원을 고르게 분배하겠다고 약속한 것을 두고 영국 정부의 차후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서약의 충실한 이행이야말로 스코틀랜드의 분리 독립이라는 사태만큼은 막아준 스코틀랜드 유권자들에 대한 보답이자 의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캐머런이 약속한 사항들은 결국 스코틀랜드의 자치정부 체제가 시간이 지날수록 안정되고 심화되면서 어차피 언젠가는 넘겨줘야하는 권한들이다. 이번 공개 서약으로 인하여 이 필연적인 권한 이양 과정의 속도가 다소 빨라졌다고는 할 수 있겠으나, 공개 서약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어떤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다고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스코틀랜드 의회의 독립성이 강해지면서 잉글랜드에서만 선출된 의원들로 구성되고 잉글랜드의 정무만을 책임지는 ‘잉글랜드 의회’의 설립 주장이 상당한 탄력을 받는 상황에는 눈길이 가지만, 이는 40년 가까이 논의되었던 단골 쟁점으로 ‘잉글랜드 의회’라는 새로운 헌법 기관이 창설되기보다는 현존 영국 의회 시스템에서 스코틀랜드 지역구 의원들을 배제한 채 투표를 실시하는 간소한 방식이 채택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 역시 영국 헌법 체계의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결국 영국인들에게 있어 스코틀랜드 투표 부결은 현존 질서의 대체적인 유지를 뜻한다.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2014년 9월 18일을 조금 더 특별한 이벤트로 치장하고자 하는 정치인들의 속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스코틀랜드의 독립 투표가 부결됐다는 소식보다는 스코틀랜드 독립 투표가 실시됐다는 사실 그 자체가 더 의미가 있고 그 파장이 크다고 하겠다. 오랫동안 스페인으로부터의 분리 독립을 주장해 온 카탈루냐 주 정부가 스코틀랜드의 투표가 부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자신들의 분리 독립에 관한 주민투표안을 시행하기로 의결했다는 점은 결국 카탈루냐 주민들이 스코틀랜드 투표의 결과를 중요하게 여긴다기보다는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했다는 사실 자체에 고무되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벨기에의 북부 지역인 플랑드르와 이탈리아 북부의 베네토 지역 등도 자신들이 속한 국가로부터 독립해 나가는 것을 오랫동안 염원해 온 만큼 이번 스코틀랜드의 독립 투표 참관인을 보낼 정도로 큰 관심을 보이며 소속 주민들의 독립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드높였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스코틀랜드의 독립 의도와 카탈루냐, 플랑드르 그리고 베네토의 독립 의도가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물론 모두 다 소속 국가의 다수를 차지하는 민족과는 별개인 소수 민족들이 사는 지역들이다. 하지만 스코틀랜드의 경우에는 그리 부유한 지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들보다 훨씬 잘 사는 잉글랜드가 북해 유전 등 스코틀랜드가 보유한 몇 안 되는 자산마저 ‘착취’한다는 피해 의식이 독립의 열망을 키운 반면, 나머지 지역의 경우에는 자신들이 속한 국가의 다른 지역보다 부유하다는 이유로 중앙정부에서 자신들이 힘들게 번 돈을 세금으로 빼앗아서 가난한 다른 지역에 퍼주는 것이 못마땅하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경제적 이기주의가 그들이 독립을 원하는 진의이다. 즉 겉으로는 같은 민족끼리 공동체를 형성해서 살아야 한다는 역사적 당위성으로 포장이 되었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자산을 자신들이 독점하고자 하는 의도인 것이다.

문제는 카탈루냐와 플랑드르 등이 분리 독립하는 선례를 남기게 되면 특별한 민족주의적 이슈가 없는 지역들도 경제적 이득을 챙기기 위하여 독립해 나가겠다는 요구를 마구잡이로 쏟아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유럽의 많은 지역들이 민족주의 독립을 요구할 자신감을 확보하게 된 데에는 유럽의 낙후된 지역의 지방 정부에게 개발원조금을 지원하는 유럽연합의 지역개발정책으로부터 기인하는 부분이 크다. 해당 지역들이 소속 국가로부터 독립해 나간 후 유럽연합에 새로운 회원국으로 가입하게 되면 유럽연합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스스로를 개발하면서 살림을 꾸려나갈 수 있고, 그 덕택으로 인해 지역이 부유해진다고 해도 그들에게 세금을 강제로 뜯어내 다른 지역에 나눠줄 예전의 중앙정부가 없으므로 자신들의 자산을 대체적으로 보유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민족주의로 인한 분란이 크게 없는 지역도 자신들의 오랜 역사를 들추어내면서 근세 시대에 인위적으로 구성된 주권 국가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할만한 충분한 동기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유럽연합이 여러 지역의 독립으로 발생하는 내부적 다양성의 존재를 환영한다고 겉으로는 말할지도 모르지만, 이러한 현상은 실제로 유럽의 안보 상황에 큰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여러 개의 신생국가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와 거대한 이웃들과 마주한 자신들의 안보를 위하여 무장을 실시하고 군비 경쟁에 돌입하게 된다면 그 과정에서 나오는 위험 요소에 대해서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또한 이런 신생국가에 아직 경찰이나 기타 보안 조직이 제대로 구성되지 못한 상황에서 헌법 제정 등 예민한 정치적 이슈로 인하여 민중 폭동이 발생할 경우 그 질서 유지는 어떻게 이루어 질 것인가? 자신의 초국가적인 성격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서는 소속 회원국들의 주권 약화를 필연적으로 필요로 하는 유럽연합이 국가 차원이 아닌 지역 차원의 부흥 정책을 밀어붙임으로써 발생하게 되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대책을 과연 준비해 놓고는 있는 것일까?

이번 스코틀랜드의 분리 독립 투표 부결의 의의를 굳이 찾으라고 한다면 유럽의 여러 분리 독립 움직임들을 일시적으로 주춤하게 함으로써 유럽연합과 그 소속 회원국들에게 생각할 시간적 여유를 줬다는 것에 있다고 하겠다. 유럽연합은 이 여유를 헛되이 보낼 것이 아니라 과연 자신이 추진하고 있는 지금의 정책들이 유럽의 장기적인 이익을 위한 것인가를 곰곰이 따져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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