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천주교, 개신교, 불교 모두 시국선언을 하는 심상치 않은 행보가 펼쳐지고 있다. 이에 대해 ‘종교가 불의한 권력에 맞서 정의를 외침으로서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라고 말하면서 그들의 행동을 칭찬하고 힘내라 박수쳐주는 반면, 한편에서는 ‘종교가 정치색을 띠는 것이 말이 되냐?’며 조용히 기도나 하라고 한다.

그렇다면 ‘종교가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대체 누가 한 말일까? 성경의 한 구절에 나오는 말씀인가? 아니면 가톨릭교회교리와 같은 종교문헌에 나오는 말인가? 그렇지도 않다. 전 세계 국가 중에 종교가 정치에 절대로 개입할 수 없는 나라는 딱 한 군데 있다. 바로 북한이다. 북한에도 역시나 다양한 종교는 존재하겠지만, 절대로 정치에 개입할 수는 없다. 레닌이 소련을 만들면서 ‘종교와 정치는 철저히 분리되어야 한다’고 말한 것처럼, 북한 외에도 종교가 정치에 개입할 수 없는 나라들은 대부분 공산국가다. 종교의 정치참여에 반대하는 이들은 정교분리의 원칙을 내세우며 종교인들의 행동과 발언을 정치적 행위와 선동으로 폄훼하며 ‘종교가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들이 말하는 정교분리, 즉 정치와 종교의 분리는 무엇을 의미하고, 그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일까? 또한 정교분리는 무조건적으로 종교의 정치적 참여를 부인하는 것일까?

정답은 아니다. 헌법 제20조 1항은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이며, 2항은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로 한국은 정교분리를 헌법에 규정하고 있다. 정교분리는 종교와 정치의 고유한 영역을 인정하고 국가가 종교적 중립을 지키며 종교가 국가권력에 직접 개입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이 둘 사이의 상호작용이나 상호개입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해석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사회적으로도 옳지 않다. 정치적 선을 추구하기 위해 막강한 사회적 영향력을 지닌 종교계가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당연하다. 시국선언과 같은 종교인들의 정치참여에 대해 ‘빨갱이다’, ‘종북이다’ 와 같이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종교인들이 시국 선언을 할 수 없는 나라가 바로 그들이 말하는 빨갱이, 즉 북한이다.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로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있는 나라다. 이렇게 종교의 정치참여에 대해 원색적으로 비판하고 억압하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위기가 아닐까?
 
우리는 먼저 종교의 정치참여가 바람직한지의 여부를 따지기 전에 종교가 정치참여를 하지 않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먼저 인지해야 한다. 그렇다면 종교의 정치참여는 무엇을 의미하고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 문제는 어떤 형태의 정치참여인가에 대한 것이다. 올바른 명분과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정치참여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민주화, 인권, 환경 등 종교적 선과 관련하여 자신의 종교에 대한 믿음을 가진 채 정치와 사회에 참여하여 자신보다 어렵고 연약한 자를 돕고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오히려 격려해야 할 일이다. 종교는 인간 삶의 모든 영역을 다룬다. 사후의 문제뿐 아니라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도 말하기에 정치뿐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적인 모든 문제에 대해서 답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이런 사회구조의 문제들이 인간의 삶을 억압하거나 비인간화하거나 사회적인 약자들이 자기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상황이라면, 종교지도자들이 먼저 나서서 '예'와 '아니오'를 분명하게 해야 한다. 그것이 정치적인 문제라서가 아니라, 인간 삶 전반의 문제가 정치적인 것과 관련이 있기에 그런 소신들은 정치적으로 내비쳐질 수밖에 없다. 포괄적으로 종교의 정치참여는 궁극적으로 종교에서 지향하는 선한 세계를 이 땅에 실현함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평화와 인권 신장과 사람다운 삶의 보장에 기여해야 한다. 이는 종교의 원래 목적 또는 고유한 기능 중 하나이다. 정치적 외도가 아니다. 그들 역시 하나의 신앙을 가진 종교인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국민이고, 한 국가의 사회구성원으로서 정치에의 참여는 당연하게 주어져야할 권리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틀 내에서 누구나 공평한 발언권을 가지고 정치에 참여할 권리는 있다.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편적인 가치, 즉 공공선을 추구하며 그것과 괴리되는 부정․부패와 사회 부조리에 대한 비판 정도에 머물러야지, 직접적으로 특정 개인에 대한 옹호나 폄하와 같이 민주주의 가치에 어긋나는 행동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따라서 특정종교를 기반으로 한 모임이나 단체의 이름을 빌어 정치적 목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지만, 특정 종교에 대한 믿음을 가진 하나의 종교인으로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하고 칭찬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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