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문창극 총리후보자의 교회 강연 중 발언이 논란이 되면서 한동안 언론이 시끄러웠던 적이 있다. 발언의 적절성에 대한 가치판단을 떠나 사회적으로 논쟁이 되었던 논점 중 하나가 바로 ‘총리 후보자의 발언을 평가함에 있어 종교적 특수성을 고려할 수 있는가?’였다. 헌법 제20조에 명시되어있듯이 정교분리가 규정된 우리 사회에서 이에 대한 논쟁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이번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그 적정선에 대한 의견충돌은 현재까지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자주 이슈가 되는 쟁점 중 하나가 바로 종교인의 정치참여이다. 정치인의 종교 활동 참여는 사실상 특별한 제약 없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종교인의 정치 활동 참여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통일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정교분리는 프랑스혁명과 미국의 독립혁명을 통해 역사 속에 등장했다. 그후 많은 근대 국가들에 의해 정교분리가 법으로 제정되었고, 이에 영향을 받은 대한민국의 제헌헌법 역시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규정하였다(제헌헌법 제12조). 하지만 엄격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미국 역시 성경 위에 손을 올린 채 대통령 취임 선서를 진행하며, 우리 제헌국회 역시 목사 출신인 이윤영 의원의 기도로 시작되었다. 이처럼 정교분리라는 것이 칼로 자르듯이 정확히 쪼갤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 선을 어디까지로 해야 할지에 대한 논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인간은 본래 정치적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욕구를 갖고 있다. 종교인 역시 마찬가지이다. 멀리 교황의 평화기원 기도에서부터 가까이로는 얼마 전 4대 종단 종교인들의 시국선언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에서 종교인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진정으로 이 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기원하는 종교인들의 외침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메시지의 역할을 해왔다. 과거 독재정권에 맞서 목소리를 냈던 우리 종교인들, 인종 차별 철폐를 위해 싸웠던 세계의 많은 종교인들이 그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내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와 같은 발언이 평화와 인권존중의 메시지를 넘어 ‘정치 간섭’으로 이어지는 경우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 소속 신부들의 ‘불법선거 규탄과 대통령 사퇴를 촉구하는 시국미사’에서 한 신부가 북한의 연평도 포격을 두둔하는 발언을 해 논란을 빚었던 적이 있다. 이러한 메시지는 전 인류를 위한 사랑의 메시지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사회 갈등을 조장하곤 한다. 이는 평화의 메시지가 아닌 개인적 정치입장에 기반을 둔 정치 간섭의 측면이 크다.
 
결국 핵심은 메시지의 진실성이다. 개인 또는 단체의 정치적 성향을 나타내는 발언은 지양하되 사회 전체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용기 있는 발언은 지속되어야 한다. ‘정치 참여’가 아닌 ‘사회 참여’가 되어야 한다.
 
종교인들의 발언이 사람들로부터 믿음과 신뢰를 얻는 건 그들의 메시지의 진실성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그 메시지가 진실성을 잃는다면 그들의 발언 역시 힘을 잃게 된다. 반면 그 진실성이 신뢰를 얻는다면 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종교인들이 정치 간섭이 아닌 진실된 메시지를 전해야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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