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전국 지방선거가 성큼 다가온 가운데,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4년 전에 그러셨듯이 학부모들은 지방 선거 보다는 교육감 선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속한 선거구의 교육 체계를 쥐락펴락하는 교육감을 선출하는 중요한 일이니 긴장의 고삐를 늦출 수도 없다.

역설적인 점은, 교육감 선거에 투표하는 유권자들은 막상 교육감 선거에 영향을 덜 받는 성인들이라는 점이다. 오히려 당장 내일 학교에서 공부할 우리 아이들은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상황이 이러니만큼, 유권자인 성인들은 올바른 결정을 내려 아이들이 후일 성숙한 유권자로 성장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책임을 진다.
교육감의 임기는 4년으로, 재임한다면 총 3기까지 가능하다. 의무교육 9년과 고등교육 3년을 합쳐 도합 12년의 학창시절을 결정짓는 사람이 바로 교육감이다. 이 결정적인 12년 동안 학교는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필수적인 일과이니 학교와 교육은 새싹들의 자양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이 자양분은 영양이 흠뻑 베어있어야 하고, 견고해야 하며, 향기로워야 한다. 오롯이 아이들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향한 소망을 간직해야 한다. 그릇된 야망으로 오염되지 아니하고, 이기적인 욕심으로 말라서는 아니한다. 그러므로 이 자양분을 가꾸는 교육감을 선출하는 과정은 현실적인 전망과 장기적인 계획의 경합이어야지, 표면적인 전략과 단기적인 정책의 경합이어서는 해만 될 뿐이다. 
직선제가 아닌 선거는 후보들을 개별적으로 평가할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선거제에서 후보들은 이념과 붕당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이점과 정치에 휨쓸리지 않고 유권자들이 믿어준 자신의 신념을 관철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염려해야 할 점은, 과연 이러한 점들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가이다. 당장 동네에 붙어 있는 선거 포스터와 슬로건을 보더라도 교육감 후보들은 자신이 누구와 친분을 맺었고 어떤 이념을 대변하는지를 열거하느라 급급하다. 여느 선거가 그렇듯, 교육감 선거 또한 포퓰리즘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런데 우리 학생들이 자신의 미래가 가시적인 성과에 좌지우지 되는 모습을 보고서도 의식 있는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또 실제로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감 선거만 보더라도 교육과 학생들의 미래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보다는 비리, 이념 대립과 같은 소모적인 논쟁에 중점을 둔 경우가 많다. 물론 학생들이 자라나고 있는 화분에서 해충이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그렇지만 채 싹을 움트기도 전에 살충제를 뿌리면 꽃은 봉오리도 지기 어려운 법이다.
교육감은 대한민국 학생, 교사, 교육인들의 선봉으로서 남들보다 멀리 오래 내다보아야 한다. 학생들에게 조화와 화합의 빛을 안겨주어야지 대립과 분열의 그림자를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 그런 만큼 교육감은 여타 행정 부처 및 정치인들과 공조하여 백년대계를 설계하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내각과 달리 독자 노선으로 선출된 교육감이 과연 온전히 힘을 합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양측 모두 국민의 힘으로 부여한 책임감과 권한을 지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지지율에 급해 건설적인 견제가 권력 다툼으로 변질되지는 않을지 염려되는 형국이다.
만일 교육감의 자리가 이념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면 그 대안은 선거가 아닌 직선제에 가깝다. 국민의 지지를 받은 내각이 있고, 그 내각에 의해 임명된 교육감이라면 내각과 국민의 지지를 고루 업고 안정적으로 교육이라는 백년대계를 수립할 수 있을 터이다. 그래야만 교육감이 포퓰리즘에 휩쓸리지 않고, 불필요한 권력과 이념 경쟁에 힘을 소모하는 대신 대한민국 학생들의 미래를 염려하는 본인의 본분에 충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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