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역체제하에서 각 나라는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매진하기 때문에 분업이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국내에서 팔리는 많은 공산품이 중국산인데 만약 그 제품들을 수입하는 대신 국내에서 만들려고 한다면 많은 수의 공장과 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일자리가 늘지 모르나 젊은 사람들이 기피하는 저임금 생산직이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은 중국의 공산품을 수입해 쓰고 그 대신 스마트폰과 같은 고부가가치 상품에 전념하고 있다.
그런데 자유무역의 혜택을 전 세계적으로 확대하기 위해 그동안 10년 넘게 세계무역기구(WTO)가 추진해온 다자간 무역협정이 의견수렴 실패로 지지부진한 상태이다. 그 대신 양자 간 혹은 소규모 지역별 자유무역협정이 대세이다. 우리나라도 2000년대 중반 이후 이런 추세에 동참하고 있다.
최근 TPP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가 화두로 부상했다. 원래는 2005년에 뉴질랜드, 칠레 등 4개국이 체결한 전략적 경제동반자협정이라는 소박한 밥상이었는데 2008년 미국이 참여를 선언하고 높은 수준의 개방을 주창하면서 연회용 대형 식탁으로 변모시켰다. 그 이후 캐나다, 말레시아 등 여러 나라들이 참여하기 시작했고, 2013년 봄 일본이 TPP 참여를 선언하며 협상참여국 수가 12개로 늘었다.
일본의 참여로 두 가지 주안점이 부각되었다. 첫 번째, 협정의 경제적 중요도이다. 세계 최대 경제인 미국과 3위의 일본이 참여하면 TPP 경제규모가 세계 GDP의 약 40%에 달하게 된다. 두 번째, 태평양 서쪽의 일본과 태평양 동쪽의 미국이 두 축을 이루어 명실상부한 환태평양 지역경제협력체가 탄생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는 또한 오바마 대통령이 천명해온 전략적 관심의 아시아로의 이동 (Asia pivot) 구상의 성과도 된다.
우리나라 정부는 뒤늦게 작년 말 협상참여에 관심을 표명했다. 미국이 협상타결을 서두르고 있고, 협상에 참여하려면 모든 참여국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그동안 공격적으로 FTA 체결을 추진해온 한국이 왜 소극적이었을까. 우선 TPP협상 참여국이 확산되는 시기에 한국은 미국 및 EU와의 양자간 FTA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었다. 아울러 2003년 이후 우리의 제일 큰 수출시장으로 자리 잡은 중국과의 관계도 고려 사항으로 작용했는데, TPP가 미국의 "Asia pivot"의 일환으로 중국을 고립시키려는 시도라는 국제정치학적 해석 때문에 과연 여기에 한국이 참여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될지 고민이 있었다.
또 다른 이슈는 일본이다. TPP에 참여하면 다른 참여국들과 자유무역협정을 맺는 효과가 있는데 국내에서는 일본과의 FTA에 부정적 의견이 드물지 않다. 한국이 경쟁력 열위인 산업들이 많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일본문제에 농업분야의 피해가 또다시 거론된다. FTA관련 농업피해는 그동안 자주 제기되어 새로울 것이 없을 것 같은데 TPP가입 조건으로 농업부문의 개방 확대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그 동안 반복되는 FTA의 사회적 문제화로 인한 피로증(FTA fatigue)이 크기 때문에 조기 타결 전망이 불투명한 TPP 참여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TPP참여가 바람직한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성사된 FTA의 효과를 보는 것이 한 방법인데 긍정적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과의 교역에서 지난 2년 동안 한국의 무역흑자가 크게 늘어 미국 의회나 업계에서는 한미 FTA가 문제라는 의견이 있어 오바마 행정부가 곤혹스러운 처지라고 한다. 그리고 중국도 TPP 참여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어 중국과의 관계 때문에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오히려 초기에 참여하여 각종 규범(rule) 제정의 기회를 갖는 것이 변화무쌍한 향후 세계경제 여건에서 교역대국으로 자리매김하려는 한국의 이익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바람직한 대외 경제정책이 어떠해야 하는지는 그 나라 경제의 근본적 성격에 의해 결정된다. 한국경제의 2000년대 큰 특징은 경제 전체에서 내수보다 대외거래의 중요도가 계속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런 추세의 반전이 없는 한 우리나라는 가능한 모든 경제협력체에 참여하는 것이 불가피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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