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을 여행하다 우리나라의 청와대라 할 수 있는 총통부에 간적이 있다. 건물 안 전시실에는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조선 총독부와 타이완 총통부를 비교하는 모형과 도면이 있었다. 두 건물의 건축양식은 쌍둥이라 해도 믿을 만큼 흡사했고, 하늘에서 볼 때 일제를 상징하는 日 모양으로 지어진 것마저 똑같았다. 일제강점기라는 치욕의 역사를 상징하는 건물. 그런데 이 건물이 2차 세계대전 말엽에 폭격으로 무너지자 새로이 복구하고, 심지어 지금은 국가최고통치자인 총통의 집무실로 사용하고 있다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나는 가이드에게 “타이완은 왜 일제강점기의 잔재를 청산하지 않나요?”라고 물어봤다. 그러자 총통부 가이드는 나의 질문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오히려 이렇게 반문했다. “우리는 건물 내부만 새로이 디자인해 日 모양을 타이완을 상징하는 국기 모양으로 바꿨습니다. 조선 총독부 건물은 타이완 총독부 건물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튼튼하게 지어졌는데 왜 허문건가요?” 멀쩡한 건물을 그저 없애며 화풀이한다고 해서 치욕의 역사가 사라지진 않는다는 것이었다.

광복 50주년을 맞이하던 지난 1995년, 김영삼 정부는 일제의 잔재를 청산해 민족의 정기와 역사를 바로잡겠다며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던 조선 총독부 건물을 철거했다. 우리민족에게 가장 치욕스러웠던 일제강점기라는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건물이 우리나라의 중심부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였다. 그런데 단지 일제와 관련된 네거티브 문화재 하나를 없앤다고 해서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고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울 수 있을까? 역사라는 것이 과연 기억하기 싫다고 해서 기억하지 않을 수 있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문제일까?
네거티브 문화재라고 불리는 건물 몇몇을 부순다고 해서 그 속에 담긴 아픈 역사가 사라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일제와 관련된 네거티브 문화재들을 섣불리 파괴하는 것은 오히려 그 속에서 우리가 찾을 수도 있었던 해방과 독립의 의미마저 고스란히 없애버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민족은 일제에게서는 ‘해방’되었지만 남북으로 분단돼 아직 진정한 ‘독립’은 이뤄내지 못했다. 거기다 독립운동가들과 그 후손들은 우리사회에서 잊혀진 채 외면 받고 있고, 친일파 후손들은 조상들이 친일행위로 얻은 땅을 돌려달라는 몰염치한 소송을 걸며 떵떵거리면서 살고 있다. 우리는 과거의 뼈아픈 역사를 아직도 극복하지 못한 채 여전히 일제강점기의 연장선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일제잔재냐 문화유산이냐를 놓고 최근 불거진 부산 송정역 철거문제를 두고, 일각에서 민족적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는 네거티브 문화재는 모두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왔다. 하지만 네거티브 문화재들을 철거해 과거의 치욕을 그저 덮고 숨긴다고 해서 과연 민족적 자존심이 지켜질까? 오히려 네거티브 문화재들을 통해 아픈 역사를 되새기고 기억하고 극복하며, 우리에게 남은 역사적 책무를 다하는 데에 온 역량을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일본총리가 직접 나서 위안부 강제동원 증거가 없다며 일제의 만행을 부정하는 이때. 역사를 바로 잡은 후에 언제든 철거 가능한 네거티브 문화재를 두고 우리 내부에서 불필요한 논쟁을 벌이기보다, 아픈 과거도 엄연히 우리 역사의 한부분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반성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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